[임현규 인터뷰①]"최순실·정윤회, 결혼 7년 전부터 부동산 공동명의"

기사등록 2017/01/09 15:52:10

최순실·정윤회 수입업체 '얀슨' 설립 후 1995년부터 8번 독일 왕래
 8번 중 2번은 박근혜 대통령과 동행…2번 중 한번은 국회의원 당시
 정윤회, 최순실과 결혼하기 7년 전 이미 등기부등본상 공동명의자로 등장
 정윤회 80년대 중반부터 최태민 일가에 상당히 깊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
 최순실 85~88년 한양아파트 16건 거래에 등기부등본상 이름 올라…돈세탁 의혹  

【서울=뉴시스】이현미 기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 발생 후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한 보고서가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MB) 후보 캠프에서 작성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관련 검증 요청서'가 그것이다.

 문제의 그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이가 임현규(53) 와칭 인사이트 대표다. 그는 당시 MB캠프 정책홍보 특보로 있으면서 1년 반 정도 자신이 찾아낸 자료와 캠프 내 소위 '블랙팀'에서 취합해온 정보를 분석·정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가 이제서야 주목받는 이유는 10년 전에 이미 지금과 같은 사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보고서를 쓰기 위해 정보 등을 취합하면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박 대통령의 주변에는 항상 최태민의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언제나 측근 비리를 일으켰지만 박 대통령은 항상 똑같이 그 같은 문제에 엄정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도덕성과 청렴성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임 대표는 2007년 당시 박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의 관계 등을 가장 내밀하게 들여다본 사람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등 혐의로 5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했으며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임 대표는 이번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진 후 당시 제기했던 의혹의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면서 지난해 11월 23일 재심을 청구했다.

 임 대표 측이 수집했던 자료와 조사 내용 등에 주목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임 대표 재심 청구 사건의 변호인인 전종원(46·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를 최근 특검팀에 합류시켜 눈길을 끌었다. 최씨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을 낱낱히 밝혀내려는 특검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한 게 아니라 국민의 선택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검증이 이뤄지기를 바랐던 것"이라며 "10년 전에만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어도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에 이어 올해 1월 4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세차례에 걸쳐 8시간 동안 진행됐다. 뉴시스는 임 대표와는 인터뷰를 9일부터 3일 동안 시리즈로 보도할 예정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캠프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2005년 말인가, 2006년 초인가부터 결합했다. MB가 서울시장 그만두기 한 1년 전부터 대통령 선거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이냐 하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나왔나 보더라. 강만수 전 장관을 중심으로 어떻게 대통령을 만들 것인가를 정책홍보 차원에서 고민하는 팀이 만들어 질테니깐 강 전 장관이 나한테 들어와서 실무적인 역할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좋다고 했다. 그러다가 MB가 서울시장 그만두자마자 안국포럼 사무실을 냈다. 공식적으로는 2007년 8월 2일 내가 긴급체포 되기 전까지 했다. 주로 언론보도나 여론 분석, 정책 등을 담당했다. 강 전 장관께서 정책 총괄 책임자였고, 나는 그 밑에서 분야별로 정책들이 들어오면 그것을 취사·선택하고 검증해서 정책·홍보로 소화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면 안국포럼 원년 멤버 아닌가.  

 "안국포럼 원년멤버라는 게 참 말하기가 애매한데 원래 원년멤버들은 MB를 10년 이상 따라다닌 수행비서 등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대선준비단이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대선 캠프내에서 직책은.

 "정책홍보 특보였다."  

 -검증보고서에도 최태민 얘기가 나온다. 

 "정책홍보를 하다보니깐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고, 우리 쪽도 뭔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박 후보의 기존 정책과 인터뷰를 정리했다. 어떤 인터뷰에서 무슨 정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지 등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작업을 하다 보니 박근혜 후보의 영애 시절 행적이나 말 등을 정리해서 공격할 부분이 있는가를 찾아보게 됐다. 거기서 최태민이 나왔다. 그리고 캠프 내 정두언 전 의원을 중심으로 박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이른바 '블랙팀'이 운영됐고, 그곳에 박 후보와 관련된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 그 제보들을 넘겨주면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드는 일을 내가 했다. 박 후보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해서 정리하는 일을 나한테 맡긴 거였다."   

 -영애 시절을 스크린 한 이유는.   

 "일단은 그 당시에 영애로서 행사나 공식적으로 한 역할들이 있었다. 75년부터 5년간이었다. 요즘 같으면 기가 찰 노릇이지만 새마을운동 같은 류의 국민을 동원하는데 박 대통령이 얼마나 역할을 했느냐를 처음에는 공격하고 싶었다. 유신의 잔재와 정신, 박 후보의 철학이나 국가관의 근거가 바로 거거에 있다는 포인트를 잡고 접근했던 것이다. 그 당시 말이나 원고, 연설문 등의 자료를 확인하면서 사진 속에서 최태민을 봤다. 최태민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그때 처음 보고 너무 놀랐다."  

 -왜 놀랐나.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을까 싶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 거지. 대통령의 공식 행사인데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래서 최태민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박근혜와 최태민을 합성어로 기사를 검색했더니 여성지 등에서 두 사람에 대한 기획기사를 많이 냈더라. 초기에는 그 부분을 정리했고, 여성지들이 당시 현장을 사진으로 찍고,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들을 나열해놓은 것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것을 시대별, 사건별, 사람별로 정리를 했다. 2007년 검증보고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근거가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검증보고서를 질문형식으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에 초점을 맞췄다. 그 당시 가장 많이 우려됐던 게 박근혜 후보의 무능력 부분이었다. 하지만 무능력은 핸디캡에 해당하니깐 그 부분에 대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질과 도덕성 부분은 경계가 없다는 게 그 때 판단이었다. 그래서 도덕성과 관련해 주로 질문을 한 게 최태민의 돈을 서로 받아쓴 부분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근거가 뭐냐고 물은 거다. 심지어 경남기업 회장이 집을 지어줘서 박 대통령이 그냥 받았다고 하는데도 아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게 너무 답답했다. 누가 지어줘서 받았다고 하는 건 너무나도 도덕적으로 말이 안되는 소리 아닌가."  

 -그래서 포인트를 잡은 게 자질과 도덕성이었나. 

 "그렇지. 국민의 선택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이 사람의 도덕적인 문제와 자질에 대해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그 사람의 개인적 사생활이 좀 피해를 보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 그것에 의해 국가나 국민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힘을 무상으로 가져가는 거다. 심지어 돈과 총까지 주는 건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박근혜 후보측 유영하 변호사가 이번에 ‘여자의 사생활’ 운운한 것은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방아쇠를 가져가는 사람이다. 꼭 총으로 쏴 죽여야 죽이는 게 아니다. 대통령은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죽일 수 있다.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제대로 검증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MB 캠프 최태민 관련 1년 반 동안 스크린"  

 -검증 작업은 얼마나 진행됐나.

 "한 1년 정도 본격적으로 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제가 2007년 8월 2일에 긴급체포 됐고, 체포 되기 전까지는 검증작업을 한데다 그 전부터 작업한 게 있으니깐 박근혜와 최태민을 두고 한다 그러면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로 보면 되지 않겠나 싶다."  

 -긴급체포 되기 직전부터 했다.

 "2006년 7월에 MB가 서울시장을 그만뒀을 거다. 그 전부터 했으니깐 그 정도 되겠지."  

 -검증 내용은 캠프에서 공유했나.

 "안했다. 선거캠프는 피아 구분이 힘들다. 그래서 정책적인 부분들은 공유를 했지만 네거티브 부분은 MB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공유하지 말라고 했다. 그냥 정리만해서 나중에 검증보고서를 생산하라고 하더라."  

 -검증보고서는 언제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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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2007년 8월 2일에 긴급체포 되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서 제출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모든 제보와 검증 관련 자료를 받으면 검증위원회에서 검토하고 마치 수사를 하는 것처럼 하겠다고 해서 현장 방문도 하고 그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것에 대해 자기들이 검증보고서를 따로 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검증위원회는 박 대통령과 최태민 부분은 문제 없다고 결론 냈다.

 "그때는 제가 구치소에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문제가 없으니깐 당내 경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나. 한나라당은 그때 마치 대단한 뭔가를 하는 듯 검증위원회에서 나와서 발표도 하고 무슨 검증 토론회인가 하는 그런 동영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총 몇건을 받았고, 어떻게 질문을 할 거고 뭐 이런 것들 있잖아. 그런데 그 질문이라는 게 최태민이 이런 사람인데 왜 만났나, 영남대 4인방 중 조순제라는 사람은 아느냐, 이런 식의 꼭 초등학생 학예회 하듯이 질문하고 끝냈다."  

 -최태민의 결혼 전력이나 사기 전과 등도 언급하지 않았나.

 "했지. 당시 검증위원회에서 최태민에 대해서 사기 전과가 몇 범이고, 결혼을 몇 번 한 사람이라는 등 기본적인 것을 물으면서 이런 사람인지 알면서도 그랬느냐고 하니깐 박근혜 후보의 대답이 뭔지 아느냐. 그때 박근혜 후보의 황당한 대답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먼저 전제를 깔면서 최태민은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저는 누구를 만날 때 그 사람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 현재 그 사람이 하는 것에서 저는 하지 제가 그 사람이 결혼을 몇 번 했고 그런 걸 굳이 알아야 되느냐'고 대답했다."  

 -그 얘기가 왜 문제인가.

 "기본이 안 된 얘기 아니냐. 대통령이 돼서 인사를 하는데 검증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너무 무능한 발언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검증과 네거티브를 통해서 그 사람의 자질을 판단해야 한다. 결국 도덕성과 자질에 있어서 박근혜 후보는 아니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국민들이 그것을 알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때는 도덕성과 자질면에서 '택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는 게 포인트였다. 박근혜 후보가 대답을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자질 검증이고, 도덕적인 부분에서는 최태민이 모든 걸 설명한다고 봤다. 권력자에 대해선 처절하게 도덕성과 지질을 검증해야지, 그 사람의 자존심을 우리가 왜 신경을 써야 하나. 대통령이라는 게 관저에서 사는데 사생활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 관저라는 게 뭐냐. 결국 요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관저에 있는 대통령은 사생활이 다 공개된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지. 왜 그 사람이 관저에 숨어가지고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고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나.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문제가 된 게 세월호 참사 아닌가."
 

 2007년 검증 당시 "최태민 의혹 제기 천벌 받는다" 박 대통령 발언…친박계에 가이드라인 제시
 

 -박 대통령이 최태민에 대한 의혹 제기에 '천벌을 받는다'고 얘기한 게 언제부터인가.

 "2007년 6월 14일 중앙일보 인터뷰할 때 박 대통령이 상당히 본인 나름대로는 대선 국면에서 좀 세게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발언을 강하게 했다. 박 대통령은 항상 자기를 음해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그 분은 유신 때 발 벗고 나서주셨고, 자기가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말하는 문화융성 뭐 이런 워딩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그런 얘기를 하는 세력은 천벌을 받을 거다라는 워딩을 그때 사용했다. 그리고 나서 그 워딩은 친박들의 워딩이 됐지."

 (당시 박 대통령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최태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달라는 질문에 "그 분은 목사님으로 나라가 어려울 적에 많이 도와줬다.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어려운 상황일 때 구국기도회 하면서 도와줬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어렵고 힘들 때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셨다.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다. 그 분이 횡령을 했느니 사기를 했느니 하는 얘기가 있던데 실체가 없는 얘기다. 그분이 횡령이 어떻다고 하는데 실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디서 횡령을 당했다는 사람도 없고 사기당한 사람도 없어 법원에서도 문제가 없는데 그런 소리 나오는 게 네거티브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느냐는 말도 있는데 지어내서 마음대로 매도하고 네거티브 하려면 무슨 말을 못 지어 내겠나. 중요한 것은 실체다. 뜬구름 갖고 지어낸 얘기 하는 거야말로 네거티브다. 이미 예전에 다 인터뷰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다"라는 발언 옆에 '이 대목에서 박 후보는 어조를 높였다'라고 적고 있다.)   

 -사실상 친박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그 이후에도 검증 인터뷰 등이 계속 줄지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인터뷰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보인다.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장할 때 '사심없는 분'이라고 했던 것처럼 최태민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그런 순수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이고, 지금으로 치면 문화융성사업을 위해 헌신을 한 그런 형태로 미화시켰다. 다른 언론 인터뷰를 보면 우리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고, 그때 당시 중앙정보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최태민을 조사해 가지고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했겠느냐는 그런 말도 했다. 그것을 하나의 법적 근거로 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으로 보였다."  

 -MB는 검증보고서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

 "아무 얘기도 안하고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 제출하라고 하더라."  

 -국가정보원 등이 작성한 최태민 관련 보고서도 봤나.

 "국정원 보고선지 뭔지 모르겠지만, 제목이 ‘최태민 보고서’라는 복사물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국정원 보고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손으로 쓴 것이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중앙정보부에서 수사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어떤 내용이었나.

 "지금 언론에 다 나온 최태민의 가족관계라든지 그런 걸 나름대로 정리해서 적어놓았더라. 여자 관계가 어떻고, 누구한테 사기를 쳤고 이런 내용들이었다. 노태우 때 만들어진 보고서도 있다는데 그것은 못 봤다. 노태우 보고서를 봤으면 상황이 달라졌겠지. 그 보고서에는 최태민의 재산들을 국세청이 추적했다니깐 그걸 봤으면 진일보했겠지. 그 외에 사람들이 손으로 쓴 쪽지나 메모 등이 좀 있었다. 캠프 내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고 와서 이름이 뭔데 이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더라 뭐 그런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중앙정보부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보고서'는 풀 텍스트는 아니었던 것 같다."  

 -풀 텍스트가 아니라는 이유는.

 "요약된 내용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태민의 가족관계, 최태민의 구국봉사단 행적들만 있겠나. 최태민의 재산이나 육영재단 관련 이런 것들도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그래서 육영재단이나 최순실 관련된 것은 그 당시 기사들이나 이런 데서 파악하고, 그 다음에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게 육영재단 등에 관련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피해자들이나 교수협의회 사람들 자료는 팩트가 많고 사실관계도 맞는 것으로 파악했었다."  

 -검증보고서를 보면 박 대통령이 재단 이사로 취임한 8년간 영남대 재단은 무려 34건의 부동산을 처분했던데.

 "맞다. 그 자료는 그 사람들이 다 갖고 있더라. 그것은 믿을 수 있지. 34건의 땅을 마음대로 팔았던 거지. 지금 그건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밝혀야 한다. 그 당시에는 금융실명제가 아니니깐 가상의 누군가 통장으로 돈을 받아서 현금 빼가지고 가버리면 찾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심부름한 사람이나 차명을 빌려준 사람을 찾으면 된다. 차명을 아무나에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사돈에 팔촌 이런 사람들이 차명을 빌려줬잖아. 그 사람들 이름들을 쭉 나열해 가지고 토지대장을 떼보면 되지 않겠나. 설마 그 돈을 집에 다가 몇 백억원을 쌓아두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그들 중에 갑자기 뭔가 산 게 있으면 어디서 돈이 나서 사들였는지를 따져 들어가면 된다."  

 -검증 당시 최순실에 대해서도 들여다 봤나.

 "봤다. 최태민의 재산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갖고 있었으니깐. 그래서 '얀슨'을 알게 됐지. 그때는 독일이라고 특정은 안했지만 그들이 엄청난 재산을 해외에 숨겨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기 통치자금이나 비자금이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스위스 은행 얘기가 나오고 하니깐 유럽의 어느 나라가 아닐까 했다. 미국은 그렇게 못 숨기니깐. 그런 의문이 항상 머리에 있었는데 '얀슨'이라는 회사를 독일에 설립했더라. 그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커피 등을 수입하고 유통하는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는 지나치게 독일에 자주 왔다 갔다 했다."


 "독일 얀슨에 최태민 뭉칫돈 얹었을 수 있다 의심…얀슨은 수출입 내역 없어"
 

 -얀슨 설립 시점을 언제로 기억하나.

 "95년 최순실과 정윤회가 결혼했는데, 그 전후였던 것 같다. 최태민이 옛날에 가지고 있던 뭉칫돈을 최순실 등이 인수인계 받았을 것 아니냐. 그걸 거기다 얹었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얀슨이라는 회사를 조사해봐도 수입이나 수출 내역이 없었다."  

 -얀슨은 독일에도 사무실이 있었나.

 "MB캠프 내에서 몇 사람이 독일에 있는 얀슨 사무실에 갔었다. 의자와 책상 한 두 개만 달랑 있고 사람이 있는 느낌이 안 들었다고 한다. 퇴근한 시간이었지만, 넓은 사무실에 책상과 의자 한 두개만 덩그러니 있고 일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얀슨의 투자 규모는 확인했나.

 "못했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통해서 확인하다보니 그런 게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다. 얀슨의 국내 사무실이 최순실 소유의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에 있었다. 그 사무실 규모만 보면 꽤 큰 회사다. 미승빌딩 6층인가 7층에는 최순실 일가가 사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1995년 무렵부터 최순실·정윤회 8번 독일 왕래…2번은 박 대통령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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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정윤회는 얼마나 자주 독일에 왕래했나.

 "캠프내 출입국 기록을 본 사람이 얘기해 준 건 최순실과 정윤회가 1995년 무렵부터 8번을 독일에 왔다 갔다 했다고 하더라. 그 중에 2번은 박 대통령과 셋이서 같이 갔다 왔다고 들었다. 6번은 최순실과 정윤회가 같이 독일에 다녀오고, 2번은 박 대통령과 같이 갔다왔다는 거다. 횟수도 횟수지만 그 당시 가서 자기들이 직접 그걸(얀슨 관련된 일정을) 했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과도 동행했다는 말이냐.

 "그렇다. 2번 중에 한번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이고, 한번은 국회의원이 된 후에 셋이서 같이 독일에 갔다 온 사실을 출입국 기록을 통해 확인했다고 들었다."  

 -그럼 얀슨의 초기 대표는 누구였나.

 "얀슨이 처음에 보니깐 정윤회가 대표이사로 등록을 한번 했더라. 그 얀슨을 만들고 독일에 왔다 갔다 한 것 같았다. 얀슨을 통해서 그 후에 독일에 재산을 숨겨두고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순실이 혼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유학한다고 독일에 좀 있었잖아."  

 -최순실이 페이퍼컴퍼니를 수십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얀슨에만 집중했나.

 "그런 기업들은 우리가 검증한 이후에 만든 것으로 보이고, 당시 우리가 확인이 가능했던 것은 국내에 있는 기업이었다. 그게 얀슨이었다. 독일에 만든 페이퍼컴퍼니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독일 현지에서 교포를 통해서 시도해봤다면 찾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MB캠프에 있던 사람들도 이번에 페이퍼컴퍼니를 수십개씩 만들었다는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감히 그렇게 기업들을 만들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페이퍼컴퍼니를 몇십개 만들어서 돈을 빼돌리고 그럴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단지 얀슨이 수상하다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독일에 왜 갔을까. 얀슨이라는 회사는 왜 만들었을까. 사업을 하려고 했으면 어떤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노력한 흔적이 없는데 그건 왜일까 등 그런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정윤회는 차량 등록증도 주소지도 없어…오로지 할리 데이비슨 등록증만"
 

 -최순실·정윤회 관련 다른 제보들은 없었나.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첩보하는 사람들이 정윤회의 행적을 찾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정윤회 이름으로 차량 등록된 것도 없고, 타고 다니는 차도 없고, 심지어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주소지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캠프 내에 있던 어떤 사람이 제보를 받았다면서 가지고 왔는데 정윤회가 할리 데이비슨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확인해봤더니 그 당시에 유일하게 등록돼 있는 게 할리 데이비슨 등록증이었다. 할리 데이비슨 마니아인 거지. 그런데 이번에 기사 나온 거 보니깐 레인지로버 2억원짜리를 타고 다니더라. 정윤회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걸 타고 다니겠나. 더군다나 자기들은 그냥 비서였고 시골에서 농사 짓는다고 하지 않았나."  

 -정윤회가 등장하는 서류는 더 없었나.

 "더 있다. 최순실과 정윤회가 1995년도에 결혼하기 전에 정윤회가 최순실과 공동명의자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정윤회 이름이 등기부등본상에 등장한 게 1988년이다. 그래서 나는 정윤회가 오래 전부터 최태민 일가와 관련이 있었다고 의심을 했다. 최소한 1980년대 중반부터는 최태민 일가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겠지. 최순실, 정윤회, 육영재단 부역자들 이름들이 공동명의로 되어 있을 당시였다. 왜 언론 보도 중에 정윤회가 오피스텔인가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었다는 그 건물 있지 않나. 거기에 정윤회가 공동명의자로 있었다."  

 -1988년이면 결혼하기 7년 전인데.

 "공동명의로까지 올라갈 정도면 사실 최태민과 정윤회는 내밀한 어떤 관계라고 봐야겠지. 그 당시만해도 최태민이 왕성하게 활동할 때잖아. 그때 최순실에게 재산을 넘겨주고 있을 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공동명의자로 했다는 것은 최태민이나 최순실이 정윤회를 그 정도로 믿었다는 거다. 그래서 정윤회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치원 운영해서 몇 백억원 벌어 강남 땅 부자 됐다? 의문스러워"
 

 -다른 서류에 공동명의로 된 것은 없었나.

 "그것 말고는 없었다. 최순실이 그때는 그렇게 건물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2007년 검증 당시에는 신사동 미승빌딩하고 그 앞에 있는 다른 빌딩 정도 있었다. 그런데 1985~1988년 그 사이에 보면 서울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를 한창 사고 팔 때 최순실 이름 들어간 게 엄청나게 많았다. 그때가 지금 얘기 나오듯이 최태민이 최순득·최순실 자매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돈세탁을 할 그 시기였던 것 같다. 내가 그때 세어보니 한양아파트를 사고 팔 때 최순실 이름이 들어갔던 게 등기부등본상으로 확인된 것만 16건이었다."  

 -최순실은 유치원 원장도 했잖아.

 "초이 유치원 원장이었다. '최'라고 성을 따서 초이 유치원으로 한 것 같더라. 현장 탐방까지 갔었다. 가서 초이 유치원에 대해서 물어보니깐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 옛날에 유명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최태민하고 관련된 그런 부분들도 소문이 나 있더라. 그런데 이력을 한번 봐라. 대학을 제대로 나온 것 같지도 않은데 유치원 원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 운영해서 어느 순간 몇 백억원 벌어서 강남에 땅 부자가 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유치원 하면서 몇백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독일 유학 사실은 알았나

 "독일 유학을 몇 년 갔다 왔다는 데 학위라든지 아웃풋(output)이 없더라. 그때 학술 검색에서 공동저자 논문을 하나 찾았다. 학술 데이터베이스(DB)를 설마하고 검색했는데 나오더라. 내가 교수 출신이라서 아는데 학교도 이력도 없는 변변찮은 사람이 갑자기 유아교육 관련해서 공동저자로 논문이 나오면 신분 세탁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논문은 딱 그거 하나 있었다. 그리고 초이 유치원 만들 시점에 '어린이 버릇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라는 책도 하나 썼다. 원장 이력에 넣을 몇 줄을 만든 거다."  

 -최순실과 정윤회는 둘다 재혼이던데. 

 "정윤회는 재혼인줄 몰랐고 최순실은 재혼인 줄 알았다. 최순실은 1980년 초에 결혼해서 이혼했다고 그때 들었다.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니깐 우리는 두 사람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안 팠다. 최태민의 과거 행적을 박 대통령의 도덕성과 연결시키는 시나리오였으니깐. 그때 최순실에게 딸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1990년대는 재산변동 없었나

 "없었다. 그 현금을 부동산화 시키는 과정이 1994년 최태민이 죽기 전까지 자식들을 통해서 한 이뤄진 거고, 그런 과정에서 최순실은 원래 최태민과 임순이 소유였던 미승빌딩을 받잖아. 결국 각자 받은 돈은 현금으로 갖고 있고, 부동산 중에 미승빌딩 같이 큰 걸 소유하면서 지내온 거지. 미승빌딩은 진짜 알짜배기다. 최순득과 최순천도 빌딩들이 있잖아. 1980년대는 국세청에 걸려서 최순천의 경우 4억~5억원 추징을 당했잖아. 지금하면 100억원은 되겠지. 그걸 현금으로 냈다. 대출 받지 않고 세금을 자신이 가진 현금으로 낼 경우 전문가들은 3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3배를 곱할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은 부동산 가격의 70~80%가 은행에 물려 있어서 그렇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순득 등은 대출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꼬박 꼬박 세금을 내면서 왔다는 것 아니냐."  

 -당시 MB 캠프는 정윤회를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윤회가 박 대통령이 북한 갈 때 따라갔다. 그래서 우리는 최태민 일가가 박 대통령을 꽉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처음에 정윤회가 키맨인 줄 알았다. 기획을 하고 어떤 총괄을 하는 능력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보 수집을 해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럴 정도로 내공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정무적으로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항공사 승무원 출신이라는 이야기, 최태민 운전기사였다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쉽게 말하면 최순실의 고영태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최태민이 죽고,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정윤회가 보좌관이나 비서관 뽑고 교육시키는 정도를 한 것으로 봤었다."  

 -최순실에 대해서는. 

 "그냥 동네 아줌마로 생각했다. 이번에 보니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느냐. 욕심만 채우는 아줌마인거지. 우리는 그때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거라는 가정을 안 했으니깐 그냥 최태민의 재산을 가지고 호의호식 하면서 박 대통령의 뒤치다꺼리를 주는 여자, 그리고 본인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박 대통령을 이용할 거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되고 난 이후로 많이 지켜줬잖아. 그 결과 어느 정권도 손을 안댔지. 박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화합한다고 하면서 말이야. 마음만 먹었으면 최순실을 가만히 뒀겠느냐.”

 -MB는 왜 알면서도 안 건드렸을까. 

 "2007년 8월 2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긴급체포 되고 5개월을 구치소 생활을 했다. 그리고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로 나온 후 주변에 있는 모든 MB 사람들에게 최순실 재산을 파야 한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정치적으로 박 대통령을 건드려서 뭐하느냐는 것이었다. MB와 친형인 이상득(SD)의 계산은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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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인터뷰①]"최순실·정윤회, 결혼 7년 전부터 부동산 공동명의"

기사등록 2017/01/09 15:52:1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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