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사건 국가 상대 손배소 파기환송심
법원 "추가 위자료 지급 인정"…강씨 측 반발
대리인단 "검찰 조작 사건, 위자료 문제 아냐"
[서울=뉴시스]이승주 기자 =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추가 위자료를 지급받게 됐다. 강씨 측은 개별 위자료 문제로 판단돼서는 안 된다며 반발했다.
서울고법 민사5-1부(부장판사 송혜정·김대현·강성훈)는 21일 강씨와 강씨 가족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미 판결 확정된 부분을 제외하고 추가 지급을 명한 금액에 해당하는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면서 개별 불법 행위인 위법한 조사, 변호인 접견권 침해, 피의사실 공표 등에 대한 위자료를 추가로 인정했다.
이에 국가가 강씨에게 5333만원, 배우자에겐 500만원, 형제·자매에게 각각 433만원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2022년 11월 대법원이 하급심이 일부 소멸시효를 도입한 부분은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원심을 깨고 돌려보낸 지 약 3년 6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강씨 측 대리인단은 선고 직후 "이 사건은 검찰이 주도한 대표적인 조작 사건이지만, 법원은 개별 인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문제로 한정해 판결을 내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의 심리적 고문이나 밤샘 조사 등을 인정하면서도 각각의 불법 행위라고만 판단했다"면서 "우연한 사정들이 겹쳐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며 검찰의 조작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개별 불법 행위에 따른 위자료만 인정된 판결로, 사건의 본질인 검찰 조작에 대해 법원이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씨 측은 "위자료는 큰 의미 없다. 검사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고 한 번도 인정이 된 적이 없다"며 "국가가 위자료 책임을 갖는 걸로 외향만 갖추고 실질적 내용은 당사자에 전혀 위로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가 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자살방조)로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김씨가 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검찰의 재항고와 대법원의 지연 등으로 강씨에 대한 재심은 2012년 10월에야 최종 결정됐다.
강씨는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후 국가와 수사 담당 강모 전 부장검사, 신모 전 주임검사, 국과수 문서감정인 김모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당시 노태우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따라 검찰총장 지시 사항으로 전달됐고, 초동수사 방향이 정해지면서 검찰권이 남용됐다고 판단했다. 당시 '분신의 배후'를 밝히라는 수사 가이드라인이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에 의해 수사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2017년 1심과 2018년 5월 2심은 강 전 부장검사와 신 전 검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의 변호인 접견권 침해 등 불법행위가 인정되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취지다. 수사 전 및 기소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 행위 주장은 증거 부족으로 배척됐다.
1심과 2심은 감정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의 배상 책임은 동일하게 인정했다. 다만 감정인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1심과 달리 2심이 배척했다.
대법원은 2심이 인정하지 않았던 국가의 배상 책임 부분을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전제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는 장기소멸시효가 배척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검사와 감정인의 장기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들 개인의 손해배상책임은 소멸시효 완성에 따라 소멸했다고 판단한 원심 판단은 확정했다.
앞서 2심은 국가가 강씨에게 8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사망)에게 1억원, 형제·자매 각 500만원 등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강씨 부모의 상속분과 형사보상금 등을 계산하면 가족들에게 총 10억여원 보상이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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