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정우영 인턴 기자 = 프랑스 문화부의 전직 고위 관료가 구직 면접을 보러 온 여성들에게 이뇨제를 먹여 공공장소에서 소변을 보게 한 성범죄 행각이 재조명됐다. 피해 여성만 240명이 넘지만, 지지부진한 사법 절차로 인해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12일(현지시각) 범유럽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피해자 중 한 명인 실비 들레젠은 "느린 사법 처리가 트라우마를 장기화시키고 있다"며 10년 전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다시금 환기했다.
들레젠은 실업급여가 끊기기 직전인 2015년, 꿈의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문화부 면접을 위해 릴에서 파리로 향했다. 당시 문화부 고위 관료였던 크리스티안 네그르는 면접 도중 그녀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넨 뒤 밖으로 나가 면접을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길을 걷던 들레젠은 갑작스럽게 참을 수 없는 요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들레젠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몸이 떨리며 땀이 비 오듯 흘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센강 다리 아래 터널에서 수치심과 고통 속에서 소변을 봐야 했다. 당시 네그르는 자신의 코트로 그녀를 가려주는 척했으며, 들레젠은 이 모든 상황이 극심한 스트레스 탓이라 생각하며 자책했다.
진실이 밝혀진 것은 4년 뒤인 2019년, 파리 사법경찰의 연락을 받으면서다. 조사실에서 수사관이 펼친 거대한 파일에는 네그르가 범행 당시 약물을 투여한 시간과 이동 경로, 들레젠의 속옷 색상을 상세히 기록한 내용과 몰래 촬영된 다리 사진 등이 담겨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네그르는 약 9년간 무려 240명이 넘는 여성 면접자들에게 치명적인 불법 이뇨제를 몰래 먹이는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덜미가 잡힌 것은 그가 2018년 또 다른 동료 관료의 다리를 몰래 촬영하려다 적발되면서다. 경찰은 그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의 약물 반응을 꼼꼼히 기록한 이른바 '실험(Experiments)'이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을 발견했다.
네그르는 2019년 공직에서 파면됐고, 약물 투여와 성추행 혐의로 정식 수사를 받게 됐다. 혐의가 인정될 경우 최대 징역 5년과 7만5000유로(약 1억3098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약물을 통해 피해자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화학적 굴복' 범죄로 일컫는다.
그러나 기소된 지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식 재판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들레젠은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구직 활동을 포기했고, 인지 장애로 언어 치료까지 받는 등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
들레젠은 자신이 '피해자 계급'의 최하단에 방치돼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었다고 해서 내가 겪은 일이 덜 심각한 것은 아니"라며 "내 몸은 동의 없이 성적 목적으로 이용됐고 내 존엄성과 건강, 사회적 지위가 모두 농락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욱이 가해자인 네그르는 현재 가명을 사용해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들레젠은 "국가 부처 안에서 240명의 피해자가 나왔는데 가해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살고 있다"며 "사법 당국이 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느낌이 든다"고 사법부의 늑장 대응을 강력히 비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wo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