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경매량 1년 새 18.7% 감소
소비 위축에 원가 부담까지 '이중고'
"현금이 낫다"…실속 소비에 밀려나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안태현 인턴기자 = "예전 같았으면 스승의날 이맘때면 주문 전화가 끊이지 않았죠. 지금은 너무 조용해요."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45년째 꽃집을 운영 중인 박연례(70)씨는 한산한 시장 풍경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겹치는 5월은 화훼업계 대목으로 꼽히지만, 유가 급등과 경기 침체 속 올해 분위기는 예년과 확연히 달랐다.
시장 곳곳는에서는 카네이션이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뜸했다. 상인들은 팔리지 않은 꽃다발을 정리하며 "올해는 유독 어렵다"는 말을 반복했다.
양재동 꽃시장에서 34년째 장사 중인 김예인(62)씨는 "작년만 해도 어버이날·스승의 날 시즌에는 새벽부터 정신없이 포장했는데 올해는 매출이 절반도 안 된다"며 "예전엔 꽃 한 다발 정도는 부담 없이 사 갔는데 지금은 '꽃은 사치'라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스승의날 당일이면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벼야 하는데 예약 주문조차 거의 없다"며 "당일 손님이 얼마나 올지 걱정"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상인은 "대목을 기대하고 들여온 카네이션이 팔리지 않아 어제오늘만 해도 수백 송이를 그대로 버렸다"며 "시들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꽃들을 보면 속이 탄다"고 토로했다.
상인들을 더 울리는 건 치솟은 원가다. 소비는 줄었지만 꽃값과 포장재 가격, 난방비까지 줄줄이 오르면서 남는 게 없는 장사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박모(60대)씨는 "비닐, 쇼핑백, 리본 같은 부자재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원가는 계속 뛰는데 학생 손님이 많다 보니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양재동의 상인 최모씨도 "운송비와 난방비까지 안 오른 게 없어 도매가가 높다"며 "손님들은 1~2만 원대 저가 상품만 찾는데, 공임비를 생각하면 남는 게 없는 장사"라고 씁쓸해했다.
현장의 체감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1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유통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3일까지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경매된 카네이션(절화 기준)은 총 3만2832단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만371단) 대비 18.7% 감소한 수치다.
장기적인 감소세는 더 뚜렷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4 화훼재배현황'에 따르면 카네이션 판매량은 2005년 1억2000만본에서 지난해 1960만본으로 20년 사이 83.7%나 급감했다. 판매액 역시 같은 기간 326억원에서 72억원으로 줄어들며 시장 규모가 4분의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꽃을 선물하는 문화 자체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 젊은 층 사이에서는 카네이션 대신 현금이나 실용적인 선물을 택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26)씨는 "꽃도 고민했지만 가격이 부담돼 현금만 드렸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2)씨도 "꽃은 비싸고 오래 두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그 돈으로 부모님께 고기를 사드렸다"고 했다.
변화한 교실 풍경도 수요 감소에 한몫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학부모에게 선물 자제를 안내하고 있고, 학생들이 직접 만든 종이 카네이션 정도만 허용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경기도 소재 한 중학교 교사 김모(30)씨는 "예전처럼 교탁 위에 카네이션이 가득 놓이는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며 "학생들에게도 부담이 될까 봐 준비할거면 편지 정도만 쓰도록 미리 말해뒀다"고 전했다.
화훼업계는 꽃 소비 문화를 되살릴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범 aT 화훼사업센터 중도매인연합회장은 "꽃은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이는 품목"이라며 "단순히 한철 장사 문제를 넘어 소비 문화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꽃을 특별한 날에만 찾는 문화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농가와 상인이 버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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