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수 오래된 노래, 버추얼 가수 '원'의 숨으로 피어나다 [인터뷰]

기사등록 2026/11/08 08:00:00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2000년대 발라드 시대 풍미한 작곡가, 첫 가상 아티스트 8일 론칭

"AI가 99점이면 나머지 1%는 사람 몫"

"하고 싶던 음악 이제 마음껏"…목표는 빌보드 1위

[서울=뉴시스] 조영수.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영수.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어떤 노래는 번역을 기다리지 않는다.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선율이 먼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바다 건너에서 온 낯선 언어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던 소년이 있었다. 노랫말을 다 옮기지 못해도 그는 이미 그 노래를 다 알아들었다. 귀보다 마음이 먼저 듣는 법을, 그는 그렇게 배웠다. 훗날 한국 발라드의 한 시절을 써 내려간 작곡가가 된 그 소년이, 이제 언어와 국경을 건너갈 노래를 부를 목소리를 직접 빚어냈다. 사람이 아닌 목소리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 조영수가 첫 버추얼 아티스트 '원(WON)'을 세상에 내보낸다. 원은 8일 오후 6시 첫 싱글 '마마 송(Mama Song)'을 발표하고 정식 데뷔한다. 조영수가 기획부터 제작까지 직접 지휘한 프로젝트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그는 "저는 멜로디가 지닌 원초적인 힘을 확고하게 믿는다"고 했다. 원은 그 믿음을 시험하는 가장 대담한 방식이다.

'저작권료 1위' 히트메이커의 오래된 목마름

조영수라는 이름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절과 포개져 있다. 출발은 음악과 거리가 멀었다. 집안의 반대로 음대 시험조차 치르지 못한 그는 연세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음대 강의실을 몰래 드나들던 공대생은 1996년 MBC 대학가요제에 친구들과 꾸린 팀 '열두 번째 테마'로 출전했고, 자작곡 '새로나기'로 대상을 받았다. 군 제대 후 작곡가 박근태를 만나 본격적으로 직업 작곡가의 길에 들어섰고, 2003년 쥬얼리 '바보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신화 '브랜드 뉴'를 거쳐 SG워너비 '내 사람'·'라라라', 씨야 '여인의 향기', 이승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다비치 '사랑과 전쟁'을 잇달아 써냈다. 2000년대 중후반 미디엄 템포 발라드의 시대는 상당 부분 그의 선율로 기록됐다.

숫자는 그 시절을 건조하게, 그래서 더 정확하게 증언한다. 그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 저작권료 수입 1위를 지켰다. 2009년 공개된 한 해 저작권료만 11억 원을 넘었다. 2011년 처음 열린 한국음악저작권대상에서는 대상의 주인공이 됐고, 2016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 저작권대상에서는 작곡가상과 편곡가상을 함께 받았다. 이후 홍진영 '사랑의 배터리'로 트로트까지 영역을 넓혔다. TV조선 '미스트롯'·’미스터트롯' 마스터로 활약하면서는 임영웅의 우승 특전곡 '이제 나만 믿어요'를 지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시상식 음악감독도 맡았다.

그러나 정점에 섰다고 해서 충만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털어놨다. "감사하게도 대중 작곡가로서 일찍부터 큰 사랑을 받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음악보다는 제작자나 가수, 대중이 원하는 히트곡 위주로 곡을 써야 했습니다. 작곡가로서 행복하면서도 음악적 목마름과 갈증은 항상 컸죠."
[서울=뉴시스] 원(WON).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원(WON).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남의 몸에 맞춰 옷을 짓는 재단사는 정작 자신의 치수를 잴 일이 없다. 그가 오래 품어 온 것은 '역순의 길'이었다. 가수나 제작자가 원하는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원하는 음악을 만들고, 그것을 온전히 소화해 줄 목소리를 나중에 만나는 길이다.

갈증의 뿌리는 깊다. 아홉 살에 클래식 피아노를 시작한 소년은 중학생 무렵 퀸시 존스와 스티비 원더를 듣고 흑인 음악 특유의 솔(soul)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이어 데이비드 포스터의 웅장한 화성과 스탠더드 팝 편곡을 몸에 익혔고, 성인이 된 뒤에는 미니멀하면서도 거친 브리티시 팝에 빠져들었다. 영어로 노래하는 해외 아티스트와 작업하고 싶다는 바람은 그렇게 자라났지만, 늘 현실의 제약에 부딪혔다. 음대 문턱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청년의 우회가, 히트메이커가 된 뒤에도 다른 모양으로 되풀이된 셈이다. 그가 다다른 결론은 이랬다. "내가 원하는 음악을 온전히 불러줄 캐릭터 가수를 직접 만들어서, 영어 노래든 다양한 장르든 제한 없이 표현해 보자."

가상의 몸, 사람의 노래

확신은 바깥에서 왔다.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가 서울 고척스카이돔과 인천 문학경기장을 채웠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속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HUNTR/X)는 두터운 팬덤을 모았다. 몸이 가상이라고 해서 마음까지 가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대중은 먼저 알고 있었다. 조영수는 이 흐름을 보며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1998년 '한국 사이버 가수 1호' 아담이 넘지 못한 벽은 렌더링의 지체와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였다. 지금의 모션 캡처 기술은 표정의 미세한 떨림과 시선 처리, 눈가 주름까지 담아낸다. 그래도 그는 과장하지 않았다. "실제 인간이 아니기에 오는 미세한 이질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그 간극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혀졌어요."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는 데서 오히려 신뢰가 생긴다.
[서울=뉴시스] 조영수.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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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프로필은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지만 노래로 마음을 전하는 20세 소년'이다. 나이를 지우면 창작자의 얼굴이 겹친다. 조영수는 "MBTI 중 INFP 성향이 강해 말주변도 없고 낯가림과 수줍음이 많다"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전곡을 직접 작업하다 보니 자신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고 했다. 말이 서툰 사람이 노래를 택하는 것은 도피가 아니다. 말로는 닿지 않는 곳에 닿기 위한 선택이다.

회사 이름 브이토피안(VTOPIAN)은 가상(Virtual)과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Utopian)을 엮었다. 이상향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꿈꾸는 사람을 이름에 새겼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영수에게 유토피아는 "하고 싶었던 음악을 온전히 현실화하는 공간"이다. 원이 대중과 맺으려는 관계도 거창하지 않다. 팬들이 보내온 일상의 사연과 고민으로 노래를 지어 위로를 건네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데, 그는 이를 "실시간에 가깝게 화답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청취자의 엽서를 읽고 말없이 노래를 틀어주던 심야 라디오의 온기를 닮았다.

'엄마'라는 가장 오래된 노래

데뷔곡 '마마 송'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감사를 담은 팝 발라드다. 담백한 기타 선율로 문을 열고, 후렴에서 현악이 더해지며 감정의 진폭이 넓어진다. 가사는 전부 영어다. 넘어질 때마다 엄마의 사랑을 딛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다짐이 곡의 중심에 놓였다.

왜 하필 엄마였을까. 그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 '원이 세상에 태어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결국 '엄마'라는 존재로 귀결됐다"고 했다. 국적과 인종, 세대와 성별을 넘어 조건 없이 통하는 보편의 언어라는 판단이다. 태어난 적 없는 존재가 처음 부르는 노래가 자신의 근원에 대한 노래라는 것은, 기술의 이야기라기보다 존재의 이야기에 가깝다.
[서울=뉴시스] 원(WON).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원(WON).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영어 가사를 택한 이유도 분명하다. 그는 "국내 시장은 트렌드의 순환 주기가 빠르고 유행 장르의 폭이 다소 좁은 반면, 글로벌 팝 시장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음악이 꾸준히 사랑받는 토양"이라고 했다. 첫 곡에는 한국적 서정이 배어 있지만, 앞으로 정통 팝 사운드로 영역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낯선 언어의 노래에 먼저 마음을 열었던 그에게 가사의 언어는 장벽이 아니다. 선율이 먼저 건너가고, 뜻은 그 뒤를 따른다.

99점 너머의 1%

생성형 AI가 만든 음원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시대에, 조영수는 역설적인 길을 택했다. 원의 외형과 움직임에는 최신 기술을 쓰되, 작곡과 편곡, 실제 세션 연주는 사람의 손으로 채운다.

"AI가 작곡한 곡들은 방대한 빅데이터로 시대별 히트 공식을 정밀하게 학습했기에 기술적 완성도가 99점에 달해요. 하지만 나머지 1%의 '새로움'은 오직 인간만이 채울 수 있죠. 저 역시 기존 문법과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면 과감하게 버리고 전혀 새로운 길을 찾으려 고심합니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AI에게 '조영수 스타일로 작곡해 줘'라고 하면 제가 발표한 760여 곡의 패턴을 분석해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760곡에서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멜로디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죠." 복제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쓰인 것뿐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것은 복제되지 않는다.
[서울=뉴시스] 조영수.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영수. (사진 = 브이토피안 제공) 2026.11.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에게 음악은 여전히 열려 있는 순열과 조합이다. 서양음악은 한 옥타브를 '도'부터 '시'까지 12개의 반음으로 나눈다. 이 12개 음을 어떤 순서로 놓느냐(순열), 어떤 음을 동시에 울리느냐(조합)에 따라 선율과 화음이 만들어진다. 음 8개짜리 짧은 선율만 따져도 음높이 조합이 4억 개를 넘고, 리듬과 화성이 더해지면 경우의 수는 사실상 끝이 없다. 수학을 좋아한다는 그가 수십 년을 쓰고도 새 멜로디가 남아 있다고 믿는 근거다.

목소리는 기술의 몫이다. 조영수가 직접 가이드 보컬을 녹음하면, AI 변환 과정을 거쳐 원의 최종 음색으로 완성된다. 이 음색은 그가 선호하는 음역대와 이퀄라이징, 톤의 질감을 연구해 설계한 것이다. 브이토피안 측은 전문 음성 합성 기술로 구축했기 때문에 가이드를 부르는 실연자가 바뀌어도 원 고유의 목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노래를 지은 손도, 그 노래에 처음 숨을 불어넣은 목소리도 사람의 것이다. 기술은 그 숨이 머물 그릇을 빚었을 뿐이다.

빌보드라는 먼 항구

원은 시작일 뿐이다. 이미 후속 캐릭터들의 기획을 마치고 순차적으로 구현 작업에 들어갔다. 최종 목표는 팀이다. 댄스 중심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웨스트라이프, 백스트리트 보이즈, 보이즈 투 맨처럼 화음과 보컬의 힘이 살아 있는 보컬 그룹을 그린다. 언젠가는 아델 같은 정서를 대변하는 가상 아티스트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끝에 놓인 목적지는 선명하다. "이제 남은 음악 인생의 명확한 목표는 빌보드 1위 곡을 쓰는 작곡가가 되는 것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팝 아티스트들 덕분에 한국 음악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어요. 진정성 있는 팝과 R&B를 쓴다면 허황된 꿈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대중이 '이 곡을 정말 조영수가 썼다고? 내가 알던 조영수 스타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좋지?'라고 반응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 쌓아 올린 이름을 스스로 낯설게 만드는 일. 성공한 창작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모험이다.

그가 바라는 음악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한없이 슬플 때는 마음껏 울게 하고, 벅찰 때는 하늘을 날 듯한 기쁨을 주는 음악, 그의 표현으로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소리굽쇠' 같은 음악이다. 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만화나 영화 속 가상의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위로받았듯, 실재하는 인간이 아닐지라도 대중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기쁨을 주는 따뜻한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번역을 기다리지 않고 노래를 알아들었던 그 소년처럼, 우리는 노래하는 이가 사람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노래에 울 수 있을 것이다. 조영수가 원이라는 배를 띄워 향하는 곳은 기술의 첨단이 아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연약한 인간 감정의 한가운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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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수 오래된 노래, 버추얼 가수 '원'의 숨으로 피어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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