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센의 '민중의 적' 현대적 각색…문소리·이봉련·황영희 출연
진실과 이해관계 사이 첨예한 갈등…SNS 타고 뒤바뀌는 여론
![[서울=뉴시스] 서울시극단 연극 '에너미' 공연 장면.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2026.10.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7/NISI20261027_0002275050_web.jpg?rnd=20261027135246)
[서울=뉴시스] 서울시극단 연극 '에너미' 공연 장면.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2026.10.27.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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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수돗물이 오염됐어."
도시의 미래가 걸린 대형 리조트 개장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오염 사실을 공개하면 리조트 사업이 무산될 수 있지만, 이를 감추면 시민들의 건강이 위험해진다.
진실을 알리는 것이 먼저일까, 도시의 생존을 지키는 것이 우선일까.
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에너미'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1882년 발표된 헨리크 입센의 희곡 '민중의 적'을 스코틀랜드 극작가 키어런 헐리가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강훈구가 번역·윤색하고 이준우 서울시극단 단장이 연출을 맡았다.
원작의 형제는 자매 관계로 재구성됐고, 인쇄업자는 유튜버로 바뀌는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했다.
![[서울=뉴시스] 서울시극단 연극 '에너미' 공연 장면.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2026.10.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7/NISI20261027_0002275052_web.jpg?rnd=2026102713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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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산업 쇠퇴와 인구 유출을 겪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한 지역 도시다.
리조트 상임이사인 커스틴은 개장 당일 아침 주민들이 마시는 수돗물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검사 결과를 받아든다. 한때 개발 반대 활동가였던 그는 당장 오염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언니이자 시장인 보니의 입장은 다르다. 상수도 교체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독극물 리조트' 낙인과 함께 도시 경제 전체가 무너질 것을 먼저 생각한다.
시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커스틴과 도시의 생존을 지키려는 보니의 대립은 첨예하게 펼쳐진다. 어느 한쪽의 입장도 외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갈등은 더 깊어진다.
보니가 자신의 입을 막고 개장식을 강행하려 하자, 커스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오염 사실을 공개한다. 극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커스틴을 지지하며 "진실을 위하여" 싸우는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던 친구이자 기자인 베니는 보니의 압박에 입장을 바꾼다. 힘이 되어주기로 했던 유튜버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니 전파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책임과는 선을 긋는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선택한 SNS는 곧 커스틴을 공격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서울=뉴시스] 서울시극단 연극 '에너미' 공연 장면.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2026.10.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7/NISI20261027_0002275054_web.jpg?rnd=20261027135342)
[서울=뉴시스] 서울시극단 연극 '에너미' 공연 장면.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2026.10.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무대에 설치된 네 개의 스크린은 이러한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도시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듯 리조트 '빅 스플래쉬'의 화사한 광고로 채워졌던 화면은 어느새 커스틴을 비난하는 댓글과 기사로 뒤덮인다. 급기야 커스틴의 딸 페트라의 신상정보를 담은 쇼츠 영상까지 등장한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비난은 어느새 커스틴 개인을 넘어 그의 가족까지 위협한다. 시민을 위해 나섰던 그가 되려 '민중의 적'으로 추락하는 데까지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이 장면들이 더 섬뜩하게 다가온 것은 낯선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 자극적인 말로 관심을 끄는 유튜버, 누군가를 향해 쏟아내는 무차별적인 비난까지.
무대 위 모습은 공연장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휴대전화로 넘겨보던 쇼츠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이번 무대에서 커스틴 역에는 문소리·이봉련이 더블 캐스팅됐다. 보니 역은 황영희가 맡는다.
개막 공연에서 문소리와 황영희는 팽팽한 긴장감을 그려냈다. 서로 다른 신념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두 자매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갈등과 원망까지 드러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커스틴의 감정은 극의 말미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자신을 비난하는 시민들을 향해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 왜 내 인생을 걸었는지 모르겠다"며 분노하고, 오히려 그들을 '민중의 적'이라며 몰아세운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적대감이 SNS를 타고 증폭되는 모습은 오늘의 현실과도 닮아 있다.
140여 년 전 입센이 던진 질문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연 누가 '민중의 적'인가.
공연은 다음 달 14일까지.
![[서울=뉴시스] 연극 '에너미' 포스터.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2026.09.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18/NISI20260918_0002243042_web.jpg?rnd=20260918094017)
[서울=뉴시스] 연극 '에너미' 포스터.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