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유일한 중공군 6·25 참전 전용 기념관
군우리 전투에서 빼앗은 미 2사단 깃발 전시
단둥과 항미원조기념관은 북중이 과거로 역행하는 곳
![[뉴시스DB]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에 관람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4/NISI20261024_0002272928_web.jpg?rnd=20261024232535)
[뉴시스DB]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에 관람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전격 방문한 가운데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항미원조(抗美援朝)기념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 목숨과 피로 조선(북한)을 지원한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을 추모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기념관의 항미원조기념탑에 헌화하고 기념관의 전시물을 관람하고 단둥의 자동차 공장을 시찰한 뒤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항미원조기념관, 中 유일한 중공군 6·25 참전 전용 기념관
김 위원장의 단둥 방문은 짧았으나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국에서 과거 혈맹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단둥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참관한 기념관에는 중공군이 미군을 상대로 적으로 싸웠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사전 예약으로 하루 관람인원을 제한할 정도로 많은 중국인들이 찾는 곳이다.
미국이나 미군 관계자가 이곳을 찾는다면 가장 눈길을 끌 만한 것은 6·25 전쟁에서 빼앗은 2사단 깃발일 것이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파죽지세로 북진했다.
호남 지역 잔당 토벌을 하다 북진 대열에 투입된 2사단은 1950년 11월 말 청천강변 평남 개천군 군우리의 좁은 계곡에서 중공군 제42군의 포위망에 걸려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뉴시스DB] 북한이 중공군 참전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붉은 휘장이 항미원조기념관의 한 전시실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4/NISI20261024_0002272929_web.jpg?rnd=20261024232759)
[뉴시스DB] 북한이 중공군 참전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붉은 휘장이 항미원조기념관의 한 전시실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군우리 전투에서 빼앗은 미 2사단 깃발 전시
이들 뒤로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돕고, 가족과 나라를 지킨다’는 중공이 내세운 참전 명분이 적혀 있다.
왕후닌 정협 주석이 김 위원장을 안내하면서 꼭 보라고 했을 전시물은 ‘인민지원군’ 참전에 감사를 나타내는 붉은 깃발들이 걸려 있는 곳일 것이다.
북한 각 지역과 단체 등이 감사와 함께 중조(북중) 우의를 굳게 다지자는 내용들이 벽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다.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뒤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해 ‘국군의 날’로 잡은 1950년 10월 1일, 김일성이 마오쩌둥에게 참전을 간절히 요청하는 편지도 있다.
김일성은 편지에서 “우리 자체의 힘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 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고 적었다.
이 편지는 ‘약속한 바와 같이’라는 구절에서 보듯 6·25 기습 남침이 마오쩌둥과의 사전 및 지원 약속하에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자,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뜻이 담겼다.
김일성은 박헌영과 연명으로 이 편지를 작성했으며 박헌영은 작성 당일 중국어 편지를 들고 베이징으로 가서 전달했다.
![[뉴시스DB] 중국 랴오닝성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의 김일성과 펑더화이의 대형 동상. 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4/NISI20261024_0002272930_web.jpg?rnd=20261024233051)
[뉴시스DB] 중국 랴오닝성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의 김일성과 펑더화이의 대형 동상. 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중공군 참전 감사 휘장 벽 하나 가득
1958년 처음 세워진 뒤 몇 차례 개조된 기념관은 과거에는 중공군과 미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재현한 요란한 총소리의 시청각 공간도 있었다.
북중 교역의 70% 이상이 이뤄지는 단둥은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 처음 도강하는 곳이자 주요 병참기지가 된 만 곳으로 6·25의 흔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1950년 11월 8일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뒤 북한쪽 절반은 교각만 남아있는 ‘압록강 단교’에는 중공군이 그해 10월 19일 도강했음을 대형 석조 달력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유료 관광지가 된 이 ‘단교’ 위에 중공군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병사들과 함께 도강하는 장면을 재연한 대형 집단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압록강을 따라 상류로 가면 중공군이 도강했던 지점이라며 표지석과 병사들 동상을 세워 놓았다. 압록강에는 당시 임시 다리를 세웠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 다리 위에는 6·25 전쟁에서 사망한 마오의 큰 아들 마오안잉의 흉상도 세워놓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올해만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4번을 만나 미중 관계를 관리하려고 하는 것에 비하면 단둥과 항미원조기념관은 북중이 ‘과거로 역행’하는 곳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과 포탄 지원 등으로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중공군 6·25 참전 기념일(25일)에 맞춰 북중 혈맹의 상징적인 도시와 장소를 방문했다.
중국은 권력서열 4위의 정협 주석과 왕이 외교부장 등을 변경 도시로 보내 영접했다. 북러 접근에 균형을 맞추는 것 이상의 어떤 관계 변화가 있을지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뉴시스DB]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단교'. 1950년 11월 미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채 보존되어 있다. 북한쪽 절반은 교각만 남아있다.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4/NISI20261024_0002272931_web.jpg?rnd=20261024233242)
[뉴시스DB]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단교'. 1950년 11월 미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채 보존되어 있다. 북한쪽 절반은 교각만 남아있다.2026.10.24. *재판매 및 DB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