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경기대 교수 "처벌이 오히려 앙심 키워"
법조계 "형사법 체계, 예방적 조치는 미흡"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역삼동 빌딩 2곳 방화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 70대 남성이 20일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2026.10.20. mangusta@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10/20/NISI20261020_0021497396_web.jpg?rnd=20261020182659)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역삼동 빌딩 2곳 방화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 70대 남성이 20일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2026.10.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신항섭 기자, 이은서 인턴기자 = 2022년 특허법인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휘발유로 위협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70대 남성이 3년10개월 만에 같은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에는 위협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건물 두 곳에 실제로 불을 질러 19명이 다쳤다.
풀리지 않은 원한이 처벌 이후에도 이어져 더 큰 범죄로 번진 가운데, 출소 이후 재범 위험을 관리하고 잠재적 피해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역삼동 연쇄 방화 혐의로 긴급체포된 70대 이모씨는 2019년 4월 자신이 개발한 운동기구의 디자인 등록과 특허 출원을 특허법인에 맡겼다. 그러나 종이 등록증을 받지 못한 데다 추가 비용까지 요구받자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해 앙심을 품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2022년 12월 29일 강남구의 한 건물에 있는 특허법인과 특허법률사무소 두 곳을 잇따라 찾아가 직원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켜는 동작으로 위협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2023년 4월 14일 특수협박 혐의로 이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지적하면서도 이씨가 반성하고 다시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같은 해 8월 18일 항소심은 이씨와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나 이씨의 원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20일 오전 11시54분께 신명빌딩 3층, 낮 12시1분께 한양빌딩에 잇따라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다. 두 건물 모두 특허법인이 입주해 있었고, 두 화재로 부상자 19명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범행에 앞서 지난 16일 주거지 인근에서 플라스틱 말통 2개와 라이터, 인화물질을 구입하는 등 범행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후 도주했다가 같은 날 오후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 인근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특허법인 두 곳이 허위의 특허등록증을 발급하는 등 나를 속였다고 생각했다"며 "이들에게 겁을 주고 이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처벌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은 원한이 보복성 범죄로 이어진 사례로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처벌받는 게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킨 사유가 된 것"이라며 "일종의 보복 범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은 억울한데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을 처벌받게 하고 감방에 보냈다는 심리였을 것"이라며 "이런 심리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출소했고, 계속 위험 행위를 할 만한 동기가 있는 사람을 교화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범행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언론 보도처럼) 엘리베이터 앞에 불을 붙인 것이 사실이라면 여러 번 가보고 구조를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즉흥적일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재판 당시 반성하며 다시 찾아가지 않겠다고 한 다짐에 대해서는 "형을 줄이려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재범을 막으려면 출소 이후 위험 요인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기 출소자라면 보호관찰관이 인지하고 피해자 접근 금지를 관리해야 하고, 가석방을 활용해 보호관찰을 집행하는 방식의 개별화된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호관찰관 한 명이 전자발찌 착용자 20명, 일반 대상자 100명 넘게 관리하는 상황에서는 구현이 어렵다"며 인력 확충과 관리 체계 개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경찰의 우범자 관리 제도 역시 업무 과중으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온다. 박경수 법무법인 지름길 변호사는 "우리 형사사법 체계는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고, 치료나 보호관찰 같은 예방적 조치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밝힌 재범 방지 약속만으로는 이후 행동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 사업장이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수단에도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접근금지 명령은 스토킹처벌법, 가정폭력, 아동학대 특례법에만 있고 그 외 형사법령에는 없다"며 "민사로 접근금지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위반해도 금전적 제재에 그쳐 실효성이 낮다"고 했다. 이어 "결국 사업장들이 각자 보안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과거 위협에 그쳤던 범행이 실제 방화로 이어지면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인화성 액체를 이용한 방화는 불길을 빠르게 확산해 다수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신나를 뿌리면 유증기가 발생하고, 여기에 점화원이 닿으면 '퍽' 소리와 함께 폭발적으로 연소한다"며 "그 압력에 창문이 깨질 수 있고, 유독가스가 포함된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고 호흡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 내 여러 곳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소방 대응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채 교수는 "7분 간격으로 두 곳에서 불이 나면 한 곳으로 출동하던 중 다른 곳의 신고가 들어와, 주소가 잘못된 것인지 실제로 두 곳에서 불이 난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부터 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씨를 상대로 2차 조사를 진행 중이며 이날 중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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