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과학에서 영원한 진리란 없다. 의심의 여지가 없던 내용도 새 증거가 제시되면 재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이처럼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의 권위가 확보된다.
신간 '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흐름출판)은 이런 과학의 정신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태도에 주목하는 책이다. '과학철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수상한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의 첫 산문집으로, 과학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의 필요성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면서 과학의 본질과 그 의미를 한 번쯤 고민해볼 수 있도록 이끈다.
"보수와 진보를 겸비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적 태도는 겸허함이다.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귀중한 지식과 관습들을 주제넘게 툭 배척해서도 안 되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식의 오만에 빠져 새로운 것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중략) 19세기 말 서양의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제 물리학에서 새로운 발견은 대강 다 끝났으며 앞으로의 진보는 그저 세세히 더욱 정밀한 결과를 얻는 일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불과 몇 년 후에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혁명적 변화를 맞으면서 겸허함을 배웠다." (38~39쪽)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태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과학자들을 일단 신뢰하고 들어가지만, 그들이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그 신뢰는 철회된다. (중략) 한때 신봉하다시피 했던 이론들도 새로운 관측 결과와 어긋나는 등 자꾸 문제가 생기면 과학자들은 거기에 대한 신뢰를 결국 철회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여겼던 내용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재평가를 받는다. 과학에서 영원한 진리란 없다." (52쪽)
저자는 과학적 탐구와 끊임없는 질문이 결코 전문가와 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부터 우주 탐사의 기원, 인공지능(AI)이 도달할 한계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호기심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을 탐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방식'을 사회 구성원 다수가 갖출 때 비로소 맹신과 편견을 벗어나 합리적 판단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고 짚는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적인 역사적 장면들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해부한다. 특히 위대한 발견 이면에 가려져 있던 우연과 끈질긴 인고의 시간을 조명하며, 남성 중심의 시대적 한계를 딛고 진리를 추구했던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에 적지 않은 비중을 할애했다. 성별이나 지식의 격차를 뛰어넘어 다양한 시선을 포용하는 개방성과 다원주의가 과학 발전의 핵심 동력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대 사회의 난제들에 대한 냉철한 진단도 내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후 위기, AI 혁명 등 전례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저자는 맹목적인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꼭 해야만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장기적 여파를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기술 개발에는 반드시 규제와 자제가 뒤따라야 함을 지적한다.
"현대의 인간들은 가능한 일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맬러리에게 누군가가 왜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가려 하냐고 묻자 그가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중략) 그러나 장기적으로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 모르는 새로운 기술을 현실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앞뒤를 재지 않고 무조건 개발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자제는 인간 해방의 중요한 한 방법이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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