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철학이 뜬다?…대학 입시도 서점도 ‘철학 열풍’ [출동!인턴]

기사등록 2026/10/14 07:00:00

최종수정 2026/10/14 08:40:17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철학책 베스트셀러 진입…대학 입시도 관심

AI 시대, 비판적 사고·질문 능력 주목

전문가 "명언 소비 넘어 스스로 생각해야"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철학 코너.2026.10.12.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철학 코너.2026.10.12.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이수진 인턴기자, 정승혜 인턴기자 = "AI도 내 삶의 답은 못 주잖아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모(24)씨는 철학책을 집어 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AI를 활용해 면접을 준비하면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AI가 면접 답변을 다듬어주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정작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는 "철학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꼭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서점의 철학 서가에는 김씨처럼 삶의 방향을 고민하거나 사고의 폭을 넓히려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종합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 등 철학자의 저서가 자리 잡았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철학자의 명언과 인생 조언을 담은 짧은 영상이 소비되고 있다.

이 같은 관심은 대학 입시에서도 나타났다. 올해 주요 15개 대학의 철학과 논술전형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어섰고, 연세대 철학과 논술전형 경쟁률은 78대 1, 한양대는 270대 1을 기록했다. 한양대의 경우 전년보다 37.5% 상승했다.

철학은 오랫동안 취업과 거리가 먼 추상적인 학문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AI가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고 글쓰기와 문제 해결까지 돕는 시대에 오히려 철학의 핵심인 사고력과 질문하는 능력이 주목받고 있다.

AI가 답을 내놓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다시 철학을 찾을까. 철학은 실제로 AI 시대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

"AI에 고민 털어놔도 허무"…삶의 답 찾아 철학책 펼치는 사람들

같은 날 교보문고 철학 서가에서 20여 분째 책을 살펴보던 서울문화예술대 모델학과 교수 이은미(35)씨는 AI 시대에 철학을 읽는 이유로 사고의 확장을 꼽았다.

이씨는 "AI를 도구로서 실무와 교육에 더 잘 활용하고 싶다"며 "그러려면 철학책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소신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철학·인문학 코너에서 책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2026.10.13.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철학·인문학 코너에서 책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2026.10.13.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점을 찾은 직장인 양모(26)씨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양씨는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철학으로 마음을 다스려보고 싶다"며 "아무리 고민을 챗GPT에 얘기해도 어딘가 허무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내면을 채우는 문제는 내 힘으로 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의 관심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AI가 정보를 찾고 답변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도,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까지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철학은 정답을 빠르게 찾기보다 질문 자체를 검토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문이다. AI가 제시한 답이 타당한지 판단하고, 그 답을 자신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능력이 필요하다.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종합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자리잡은 철학책들.2026.10.12.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종합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자리잡은 철학책들.2026.10.12.

"철학의 핵심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전공생들이 말하는 변화

그렇다면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AI 시대에 철학이 주목받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대학 철학과 학생들에게 AI 시대의 철학은 새로운 유행이라기보다 전공에서 꾸준히 훈련해 온 사고방식에 가깝다.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문과대학을 찾았다. 형이상학 수업 강의실에서는 수업 시작을 앞두고 학생들이 철학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철학과 4학년 졸업반 이모(22)씨는 "토론형 수업이 많아 미리 읽어 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년간 15개가 넘는 철학 수업을 들었다는 이씨는 철학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뒤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는 과정이 전공 공부의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주목받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은 이미 익숙한 공부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철학과 신입생 김모(20)씨는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을 갖는 배경으로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이 커진 점을 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 비판하고 사유하는 철학의 중요성을 새롭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오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형이상학 수업강의실에서 철학과 학생들이 수업 원전을 읽고 있다.2026.10.12.
[서울=뉴시스] 이수진·정승혜 인턴기자= 12일 오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형이상학 수업강의실에서 철학과 학생들이 수업 원전을 읽고 있다.2026.10.12.

같은 대학 학생 박모(21)씨는 AI를 활용할 때도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AI가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무엇을 물을지 정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철학을 공부하며 익힌 질문법과 비판적 사고가 취업 준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철학은 철학과 학생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박씨에 따르면 간호학과와 물리학과, 경영학과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넓은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해 철학을 복수전공하기도 한다.

AI와 관련한 문제를 철학 수업에서 다루는 사례도 있다. 박씨는 "과학철학 수업에서 과학철학자의 이론을 학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의 문제점을 분석하거나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확장되고 있다"고 전했다.

주재형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AI 시대에 철학이 주목받는 이유를 인간의 판단과 사고에서 찾았다.

주 교수는 "AI는 평균적인 사고를 추구하기 때문에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며 "무엇을 질문하고 어디서 판단을 내릴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라고 말했다. 철학의 본질 역시 기존 이론을 익히는 데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는 방식을 배우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철학책 많이 읽으면 사고력도 깊어질까…“소비와 사유는 달라”

다만 철학에 대한 관심이 곧 깊이 있는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 교수는 최근의 철학 열풍에 상업적인 의도가 일부 작용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철학이 명언이나 인생 조언을 소비하는 데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하지만 사실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대중은 철학을 일시적인 흥밋거리로 소비하고, 학계 역시 세부적인 텍스트 분석에 치중하면서 ‘사고하는 활동’이라는 철학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철학책을 읽거나 철학자의 말을 접하는 것만으로 사고력이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고 자신의 경험과 현실에 비춰 질문을 이어갈 때 비로소 철학은 생각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AI 시대에 철학이 뜬다?…대학 입시도 서점도 ‘철학 열풍’ [출동!인턴]

기사등록 2026/10/14 07:00:00 최초수정 2026/10/14 08:40:17

이시간 핫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