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馬이야기] 국난마다 전마 보탠 제주…김만일에서 레클리스까지

기사등록 2026/10/06 09: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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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뒤 군마 부족…김만일 사마목장 주요 조달처로

후손들 230여 년 산마장 운영…일가가 공급한 말 2만여 필 추산

한국전쟁선 제주마 혈통 레클리스, 고지 오르며 탄약 4.1t 날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9월27일 찾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 묘역. 헌마공신 김만일은 국난 때 전마를 공급했고, 후손들도 산마장을 운영하며 국가의 말 수요를 이어서 감당했다. 2026.10.06.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9월27일 찾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 묘역. 헌마공신 김만일은 국난 때 전마를 공급했고, 후손들도 산마장을 운영하며 국가의 말 수요를 이어서 감당했다. 2026.10.06. [email protected]

제주는 오랜 세월 '말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제주마는 섬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제주인의 삶과 함께해 왔다. 농경과 운송, 군사와 교통의 수단이었던 말은 마을 공동체의 생활문화와 풍속, 지명과 언어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시대가 바뀌면서 말의 역할과 사육 환경이 달라졌다. 제주마는 이제 역사적 유산을 넘어 생물자원과 문화콘텐츠, 승마·관광·교육산업을 연결하는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인의 삶 속에 이어져 온 말문화와 제주마의 생태적·산업적 가치를 조명하면서 보존과 활용 현장을 찾아 제주마와 말문화 유산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편집자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가을은 말의 계절이다. 5일 서귀포시 남원읍 옷귀마테마타운에서 제9회 제주의귀 말축제가 열렸고, 9일부터 11일까지 제주시 고마로 일대와 신산공원 북측 광장에서 '제11회 고마로 마문화축제', 10일부터 11일까지 제11회 헌마공신 김만일배 전도승마대회가 이어진다.

 24일 렛츠런파크 제주에서는 '2026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문화 미래포럼'이 예정돼 있으며, 같은 주말인 24~25일 제주마축제에서는 '레클리스 트레일런'과 '레클리스 콘서트' 등이 열린다.

이 시기에 자연스레 떠올리는 사자성어는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풍요로운 가을을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그 뿌리에는 전쟁의 긴장이 배어 있다. 

중국 한서(漢書)에는 "가을이 되어 말이 살찌면 변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변방의 군사를 미리 살펴 대비하도록 한 기록이 나온다. 중국 변방의 유목·기마 세력에게 여름 내내 풀을 먹고 체력을 키운 말은 이동과 전투의 핵심 전력이었다. 말이 살찌는 가을은 중국 변방에서는 침입에 대비해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제주에서 자주 불리는 두 이름도 전쟁과 연결된다. 조선시대 나라에 말을 내놓은 '헌마공신' 김만일(1550~1632)과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와 함께 전장을 누빈 군마 레클리스(Reckless)다.

두 존재는 이미 지난 6월24일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한자리에서 조명됐다. 제주도는 당시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제주 군마 레클리스와 헌마공신 김만일이 전하는 글로벌 협력의 메시지' 특별세션을 마련했다. 레클리스 연구자인 로빈 허튼과 한국마사회, 제주 말문화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300년 넘는 시차를 둔 김만일과 레클리스를 잇는 공통점은 전쟁과 말이다. 기병과 군수 수송을 말에 의존하던 시대에는 충분한 마필을 확보하는 일이 군사력 유지와 직결됐다. 제주에서 생산한 말도 국난 때마다 전마로 공급됐다.

위기 때 중요해진 제주 말, 국난마다 전마 공급

제주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말 생산지였다. 한라산 중산간을 중심으로 국영·민간 목축이 발달했고, 여기에서 기른 말은 전마와 진상마 등으로 중앙에 보내졌다. 세종실록에도 제주를 "본래 좋은 말을 산출하는 땅"이라고 기록했다.

임진왜란은 제주 말의 군사적 중요성을 더욱 키웠다. 전란으로 육지의 국영목장이 황폐해지고 마필이 크게 줄면서 1594년에는 전쟁터에 나갈 군사와 왕을 호위하는 금군까지 말을 구하지 못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의병장 고경명과 아들 고종후가 제주목사에게 전마를 요청한 기록도 있어 당시 제주가 주요 군마 조달처로 주목받았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제주에서 대규모 사마목장을 운영하며 조정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 김만일(1550~1632)이다.

정의현 의귀리에서 태어난 김만일은 젊은 시절 정병을 지냈고 1582년 방답진 첨절제사를 지낸 뒤 제주로 돌아와 말의 개량과 번식에 힘썼다고 전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그가 기르던 말은 부족한 전마를 공급하는 주요 기반으로 떠올랐다.

당시 김만일 목장의 정확한 마필 수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광해군일기에는 수천 필에서 1만여마리까지 등장하지만 실제 규모를 이보다 적게 보는 연구도 있다. 다만 당시 국영목장을 웃도는 대규모 사마목장이었던 사실은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제주=뉴시스] 1702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의 '공마봉진(貢馬封進)'. 제주에서 생산한 말을 선발해 중앙에 올려보내는 과정을 그린 장면으로, 조선시대 제주가 전마와 진상마 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말을 공급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주도 홈페이지에서 추출)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1702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의 '공마봉진(貢馬封進)'. 제주에서 생산한 말을 선발해 중앙에 올려보내는 과정을 그린 장면으로, 조선시대 제주가 전마와 진상마 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말을 공급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주도 홈페이지에서 추출) [email protected]

1620년에는 김만일이 양마 500마리를 바친 사실이 광해군일기에 기록돼 있다. 광해군은 헌마의 공로를 인정해 고위 관직을 내렸고, 김만일은 지중추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거쳐 1628년 종1품 숭정대부에 올랐다.

첫 헌마 시기와 수량은 1594년과 1600년, 200~500마리 등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2023년 제주학회가 발간한 제주도연구 제59집에 실린 김관철 연구자의 '역사인물자원으로서 김만일의 생애와 헌마 업적 연구'에 따르면 선조실록 등의 정황을 토대로 1594년부터 헌마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묘호란이 발생한 1627년에는 조정이 다시 김만일의 말을 찾았다. 비변사는 처음 1000마리를 가져다 쓰는 방안을 제시했고, 인조는 최종적으로 400~500마리 한도에서 가져다 쓰도록 했다. 전란이 닥칠 때마다 김만일의 목장이 군마 공급처로 거론됐던 셈이다.

김만일의 역할은 그의 생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셋째 아들 김대길과 손자 김여가 다시 전마를 바쳤다. 이후 김만일 후손들은 산마장 감목관을 맡아 1895년까지 약 230년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어승마와 전마, 승용마 등을 공급했다.

후손들이 산마장을 통해 공급한 말만 약 1만6240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김만일이 생전에 바친 말을 포함하면 김만일 일가가 국가에 보낸 말은 모두 2만여마리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김관철 연구자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제주에서 생산한 전마를 공급했고, 이후 후손들도 230여년 동안 산마장을 운영하며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말을 감당했던 사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최전선 누빈 군마 레클리스

김만일 시대에서 300여년이 흐른 한국전쟁에서도 말이 전장에 투입됐다.

1952년 10월 미 해병대 제1해병사단 제5연대 무반동총 소대장 에릭 페더슨 중위는 서울 경마장에서 작은 암말 한 마리를 250달러에 구입했다. 산악지역의 포진지까지 75㎜ 무반동총탄을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아침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말은 무반동총(recoilless rifle)에서 따온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미 해병대는 탄약을 등에 싣는 것뿐만 아니라 철조망을 피하고 포격이 시작되면 몸을 낮추거나 벙커로 이동하는 방법까지 훈련시켰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닉슨 타주아나 샨텔 주한미군 장교와 조슈아 T. 에이드 주한미군 목사가 25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열린 '제2회 레클리스 기념행사 및 감사패 제막식'에서 레클리스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제주마 후손 '레클리스(Staff Sergeant Reckless)'는 1948년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마 혈통의 암말로,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 소속으로 참전해 탁월한 용맹으로 퍼플하트 훈장 2개와 모범근무장, 미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7년에는 미국 라이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2025.10.25.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닉슨 타주아나 샨텔 주한미군 장교와 조슈아 T. 에이드 주한미군 목사가 25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열린 '제2회 레클리스 기념행사 및 감사패 제막식'에서 레클리스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제주마 후손 '레클리스(Staff Sergeant Reckless)'는 1948년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마 혈통의 암말로,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 소속으로 참전해 탁월한 용맹으로 퍼플하트 훈장 2개와 모범근무장, 미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7년에는 미국 라이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2025.10.25. [email protected]

레클리스의 이름을 알린 것은 1953년 3월 베가스 전초전이다. 미 해병대 기록에 따르면 레클리스는 하루 동안 탄약보급소와 포진지 사이를 51차례 오가며 75㎜ 무반동총탄 386발, 무게로 약 4.1t에 이르는 탄약 등을 날랐다.

전체 이동의 95%가량을 인솔자 없이 혼자 수행했다. 포진지로 올라갈 때는 탄약을 싣고, 내려올 때는 부상병을 후방으로 옮겼다. 전투 중 부상을 입었으며 이후 두 개의 퍼플하트를 비롯해 여러 훈장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옮겨져 1959년 중사(Staff Sergeant)까지 진급했다.

레클리스는 제주마 혈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클리스 연구자인 로빈 허튼은 미 해병대 자료에서 "우리가 아는 한 제주 조랑말 혈통이 일부 섞여 있었다"고 밝혔다.

김만일과 레클리스가 활동한 시대와 전쟁의 방식은 달랐다. 조선시대 제주에서 생산한 말은 전마 등으로 국가에 공급됐고, 300여년 뒤 한국전쟁에서는 제주마 혈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진 레클리스가 차량이 접근하기 힘든 고지를 오르며 탄약과 부상병을 실어 날랐다.

제주에서 생산한 말의 군사적 역할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졌다. 임진왜란 때부터 제주에서 전마를 찾았고, 김만일에 이어 후손들도 장기간 국가에 필요한 말을 공급했다. 국난이 닥칠 때마다 주요 말 생산지였던 제주는 전마의 조달과 보급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김만일과 그 후손, 레클리스의 기록은 시대를 달리하며 그 역사를 보여준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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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馬이야기] 국난마다 전마 보탠 제주…김만일에서 레클리스까지

기사등록 2026/10/06 09:37:16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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