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 1947, 지은이 정인보. 충남 천안 병천면에 위치한 기념비로 유관순 열사가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의거한 일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유관순기념사업회가 1947년에 건립한 것으로 아우내장터가 내려다보이는 구미산에 위치해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한글 비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궁체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비석에 새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서간문과 소설 필사에 적합한 글씨여서 멀리서 읽기 어렵고, 글씨를 크게 키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서예가 일중 김충현(1921~2006)은 다른 한글 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등 옛 판본의 글자에 전서와 예서의 필획을 접목했다. 직선적인 형태와 굵고 가는 획의 변화로 멀리서도 힘 있게 읽히는 글씨. 이른바 일중의 한글 ‘고체(古體)’가 탄생했다.
김충현이 평생 써온 한글 비문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사단법인 일중선생기념사업회는 김충현 서거 20주기를 맞아 30일부터 10월19일까지 서울 백악미술관 전관에서 추모전 '빛 아래 선 한글'을 개최한다. 김충현의 대표적인 한글 비 탁본을 모아 선보이는 첫 전시다.
광복 후 첫 한글 비부터 200여 개
일제강점기부터 한글 서예 교본을 저술했던 그는 해방 후인 1947년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시작으로 1996년 절필할 때까지 200여 개의 한글 비문을 썼다.
특히 그의 한글 서예에서 중요한 변화는 1958년 ‘옥포 대승첩 기념탑명’에서 나타났다.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한글 서체인 ‘고체’를 처음 선보였다.
고체는 단순히 새로운 모양의 글씨를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비석이라는 매체가 새로운 글씨를 요구했다.
궁체는 가까이에서 읽는 편지나 책에는 적합했지만 거대한 기념비에는 한계가 있었다. 김충현은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같은 고판본의 글자에 전서·예서의 필획을 더해 직선적이고 힘 있는 서체를 만들었다.
한문 비석에서 전서·예서의 머리글자와 해서의 본문이 담당했던 역할을 한글의 고체와 궁체로 옮겨온 셈이다.

<사육신비>, 1954, 지은이 김광섭. 서울 사육신공원 내에 위치한 기념비이다. 서울시에서 건립한 것으로, 육각형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상단에는 김광섭이 짓고 김충현이 쓴 비문이 새겨져있으며, 중하단에는 각 면마다 손재형이 쓴 여섯 신하의 이름과 그들의 시가 새겨져있다. 정형화된 가로획에서 김충현 특유의 궁체 서풍을 살펴볼 수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백범 김구 선생 동상명>(일부), 1969, 지은이 박종화, 이은상. 서울 남산공원 백범광장 안에 위치한 동상명이다. 1960년 결성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가 김구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동상과 함께 건립취지문, 약전, 「나의 소원」 등이 새겨져있다. 동상은 김경승과 민복진이 제작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비석에 새겨진 현대사의 장면들
특히 이승만 정부 시기 한글 표기 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한글파동’ 속에서 제작된 ‘사육신비’ 관련 일화와 민영환 동상에 새긴 글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 등 한글 비를 둘러싼 당대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전시 제목 ‘빛 아래 선 한글’은 광복과 함께 한글이 공적인 기념비의 문자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역사를 가리킨다.
올해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기도 하다.
전시는 김충현의 한글 비를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한글이 책과 편지 속 글씨를 넘어 거리와 광장, 기념비 위에 새겨지는 공공의 문자로 확장된 과정을 보여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