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항기, 굶주림 딛고 선 '비밥바룰라' 소년…"여러분 덕분에 행복합니다"

기사등록 2026/09/30 15: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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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4일 마포아트센터서 데뷔 65주년 헌정공연 열려

조항조·최백호 등 10팀 출연

"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귀한 선물"

올해 84세…"목소리 나오는 한 은퇴는 없다"

[서울=뉴시스] 윤항기. (사진 = 라이브모먼트 제공) 2026.09.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윤항기. (사진 = 라이브모먼트 제공)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어떤 음악은 찬란한 환희가 아니라 절박한 결핍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난다. 고통을 통과해 본 자만이 건넬 수 있는 다정한 위로, 절망의 밑바닥을 딛고 서서 부르는 낙천의 찬가. 국내 그룹사운드의 개척자이자 대중음악사의 거목 윤항기(84)의 65년 음악 여정이 바로 그러한 궤적 위에 놓여 있다.

65주년 기념 헌정 콘서트 '여러분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를 앞두고 30일 서울 중구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에서 마주한 노(老) 거장의 표정은 더없이 온화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합니다." 특유의 명랑한 미소 뒤편으로, 반세기를 훌쩍 넘긴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대중음악의 격랑을 온몸으로 견뎌낸 세월의 결이 묵직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번 공연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원로 가수를 위해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올리는 헌정(Tribute) 무대다. 조항조와 최백호가 2년 전 처음 운을 뗐고, 서유석·장미화·김수희·유현상·전영록·인순이·소찬휘, 기타리스트 최희선 등 한 시대를 풍미한 10팀의 후배 아티스트들이 기꺼이 헌정의 대열에 합류했다. 작곡가 김기표가 이끄는 팝스밴드가 소리의 골격을 맡는다.

"지금까지 늘 내 노래를 내가 직접 불러왔지, 다른 가수가 부르는 내 노래를 객석에 앉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이번 공연은 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귀한 선물입니다. 후배들이 대신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지난날을 돌아볼 생각을 하니 무지무지 편안하고 설렙니다."

실제 1942년 10월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 85세가 된 그는 당초 70주년을 기약하려던 마음을 접고 이미 2년이 지난 65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무대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후배들이 '형님, 이 나이에 어떻게 내년을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더군요. 그 말이 맞았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황혼의 문턱에서 받는 헌정곡 제목도 마침 '이 나이에도'입니다."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생존이 빚어낸 미학'이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동생 윤복희와도 생이별해야 했던 유년기, 음악은 낭만적인 예술적 열망이 아니라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다. 배움을 멈추고 1959년 12월 미8군 쇼단(김희갑 악단장이 이끌던 '에이원 쇼')에 들어갔을 때, 그의 직함은 음악 연구생이 아닌 잡일을 도맡던 '쇼리(Shorty·한국 꼬마를 '쇼티 보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였다. 삼각지 미8군 클럽 무대에서 진 빈센트의 '비밥바룰라(Be-Bop-A-Lula)'를 터뜨리며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 소리는 생존을 향한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비극을 형식으로 길들일 줄 아는 재능은 그를 단순한 연예인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남들이 기피하던 해병대 군악대에 1960년 자원입대한 것은 "먹여주고 재워주며 기초 화성학과 대위법을 공짜로 가르쳐주는 유일한 음악학교"였기 때문이었다. 생존의 기술이 엄격한 음악적 문법과 결합하는 결정적 변곡점이었다.

1963년 해병대 연예대에서 만난 김홍탁, 차도균 등과 의기투합해 결성한 팀이 바로 1964년 한국 최초의 록 밴드 '키보이스'였다. 번안곡 중심의 미8군 레퍼토리를 넘어 '그녀 입술은 달콤해', '정든 배'를 발표하며 한국 대중에게 '그룹사운드'라는 미지의 영토를 열어젖혔다. 이후 1970년대 '윤항기와 키브라더스'를 거쳐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난 그는 '별이 빛나는 밤에'(1970), '장미빛 스카프', '나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누이와 시대의 민초들을 보듬어 안은 '여러분'에 이르기까지 한국 팝의 찬란한 고전들을 쏟아냈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윤항기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에서 간담회 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26.09.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윤항기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에서 간담회 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26.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상처가 많은 자만이 타인의 눈물을 알아보고, 결핍을 뼈에 새긴 자만이 가장 온전한 위로를 길어 올릴 수 있는 법이다. 그의 삶은 1980년대 이후 30년 가까이 성직자(음악 목사)의 길로 이어졌고, 2014년 28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온 뒤에도 늘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선율 곁에 머물렀다.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전쟁고아와 다문화가정을 위해 내어놓기로 한 것도, 자신의 헐벗었던 과거를 잊지 않고 세상에 온기를 돌려주려는 윤리적 응답이다.

"85년 세월을 돌아보면 너무 힘들고 아프고 후회스러운 굴곡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을 지나와 보니, 아픔이야말로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가장 큰 행복의 바탕이었습니다. '내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들어준 '여러분 덕분에' 행복하다는 고백을 이 황혼의 길목에서 나눌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합니다."

후배들이 바치는 헌사의 자리에 서지만, 그에게 '마침표'는 없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은퇴설에 대해 그는 옹골진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헌정 공연이라 해서 결코 은퇴를 뜻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제 목소리가 나오는 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숨이 붙어 있는 한 제게 은퇴는 없습니다."

한 인간의 고통이 마침내 한 시대의 위로가 되고, 그 노래가 다시 후배들의 목소리를 통해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순간. 윤항기의 65년은 무대 위에서 사라지는 과거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건너며 새롭게 태어나는 현재진행형의 유산이다. 헌정 콘서트는 오는 10월24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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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항기, 굶주림 딛고 선 '비밥바룰라' 소년…"여러분 덕분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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