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방어 수단이 없는 시장은 1~2년 만에 잠식될 수 있습니다."
최근 국회 전기차 산업 세미나에서 박정규 KAIST 초빙교수가 중국 전기차 공세를 두고 던진 경고다. 섬뜩하지만 결코 엄살이 아니다.
안방은 이미 뚫렸다. 올해 1~7월 국내에서 팔린 전기차 셋 중 한 대 이상이 중국산이었다. 2023년 12.6%였던 비중이 3년 만에 세 배 가까이로 치솟았다.
선봉은 중국 상하이산(産) 테슬라와 대표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다. 이들이 파고든 만큼 국산차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올해 8월까지 국산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7% 늘었다. 그런데도 점유율은 62.1%에서 57.3%로 오히려 떨어졌다.
더 많이 팔고도 자리를 내준 것이다. 중국산이 밀고 들어오는 속도가 그만큼 빨랐다. 8월에는 국산 비중이 51.1%까지 밀렸다. 간신히 절반이다.
휴가철과 파업 탓이라고 넘기기엔 흐름이 너무 뚜렷하다.
새로 팔리는 전기차 가운데 수입차가 국산차를 앞지르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것이란 관측까지 높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한국판 IRA',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 6개 분야에 전기차는 없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는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기로 하면서, 완성차 업계가 절박하게 요구해 온 전기차만 쏙 빠졌다.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를 보유한 주요국들은 이미 중국차의 공세에 맞서 자국 산업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최고 127.5%, 유럽연합(EU)은 45.3%의 관세 장벽을 쌓았다.
일본 역시 설비 보조금과 생산량 연동 세액공제 등으로 최대 6711억엔(약 6조3000억원)을 쏟아부으며 자국 산업을 지키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에 와서 자동차 공장을 열고 싶다면 괜찮다"며 미국인 고용을 조건으로 걸었다.
시장은 열어도 생산 만큼은 자국에서 지키겠다는 계산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역시 "영국은 무역장벽이 없어서 상위 판매 차량이 모두 중국 브랜드"라며 직설적인 경고를 날렸다.
우리나라 사정은 딴판이다. 중국산 승용차에 매기는 관세는 8%로, 중국이 한국차에 매기는 1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통상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작정 관세 장벽을 올릴 수도 없다.
관세를 통한 대응이 쉽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국내 생산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이 중요한 방어 수단이 되는데, 정부는 그 방패마저 내던진 셈이다.
정부가 전기차를 빼며 내세운 구매 보조금 중복 논리도 궁색하다. 그 보조금은 중국 상하이산 테슬라도 받는다.
게다가 소비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보조금과 달리, 생산세액공제는 국내 공장과 협력업체 등 생산 기반을 직접 겨냥할 수 있는 수단이다.
구윤철 당시 부총리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했고, 자리를 이어받은 이형일 부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검토만 하다 세법 심사를 넘기면 공염불이다.
하지만 아직 판을 뒤집을 기회는 남아 있다. 국회에는 여야가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지난달 말에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이달 초에는 이언주 민주당 의원이 전기차를 공제 대상에 넣는 법안을 각각 냈다.
연말 세법 심사는 국산 전기차 생태계를 지킬 사실상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정부안대로라면 국내생산세액공제는 무려 향후 10년간 시행된다.
국내 아스팔트 도로 위를 중국산 전기차가 잠식한 이후 움직이면 그땐 늦는다.
이번 세법 심사에서 전기차를 반드시 포함시켜 국내 생산 생태계를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높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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