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말 탄 범선 닻 내린 나주 노항포…올가을 축제의 향연

기사등록 2026/09/26 09:00:00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말과 물자 오가던 영산강 옛 포구, 문화의 강으로

10월7일~11일 영산강정원서 닷새간 영산강축제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상류로 약 2.4㎞를 거슬러 올라가면 옛 포구 노항포(路項浦)가 있던 질목구비가 나온다. 바다를 항해하던 범선이 닻을 내리고 제주말을 비롯한 물자와 사람이 오갔던 영산강 상류의 물류 거점이었다. 2026.09.26. (옛 노항포 상상도=생성형 AI제작) lcw@newsis.com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상류로 약 2.4㎞를 거슬러 올라가면 옛 포구 노항포(路項浦)가 있던 질목구비가 나온다. 바다를 항해하던 범선이 닻을 내리고 제주말을 비롯한 물자와 사람이 오갔던 영산강 상류의 물류 거점이었다. 2026.09.26. (옛 노항포 상상도=생성형 AI제작) [email protected]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전남광주특별시 나주시 영산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옛 포구 노항포(路項浦)가 나온다. 바다를 항해하던 범선이 닻을 내리고 제주말을 비롯한 물자와 사람이 오갔던 영산강 상류의 물류 거점이었다.

한때 바다와 내륙을 잇던 물길은 이제 영산강정원을 중심으로 공연과 축제가 흐르는 문화의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영산포에서 약 2.4㎞ 상류에 자리했던 노항포는 바닷길과 내륙 수운이 만나는 곳이었다.

목포 등 서남해안에서 올라온 배에는 소금과 수산물 등 해산물을 가득 실었고 나주평야에서 생산한 쌀과 농산물은 다시 강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육로가 발달하기 전 강은 대량의 물자를 나를 수 있는 중요한 교통로였고 노항포는 바다에서 올라온 물자가 나주를 거쳐 인근 도시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영산강 운항 범선이 물길 읽던 노항포 '질목구비'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강 옛 포구 노항포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질목구비다. 현재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플라타너스 고목만이 이곳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다. 질목구비는 지명처럼 영산강의 긴 물길이 굽어 돌아가는 곳이다. 1910년대 영산포구에 나무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주로 범선들이 노항포 질목구비 기슭에 정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6.09.26. photo@newsis.com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강 옛 포구 노항포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질목구비다. 현재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플라타너스 고목만이 이곳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다. 질목구비는 지명처럼 영산강의 긴 물길이 굽어 돌아가는 곳이다. 1910년대 영산포구에 나무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주로 범선들이 노항포 질목구비 기슭에 정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6.09.26. [email protected]

노항포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질목구비다. 현재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플라타너스 고목만이 옛 포구를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다.

이곳은  지명처럼 영산강의 긴 물길이 굽어 돌아가는 곳이다. 1910년대 영산포구에 나무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주로 범선들이 노항포 질목구비 기슭에 정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질목구비라는 명칭은 '진묵구부' 또는 '진묵국'으로 잘못 전해지기도 했다. 범선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시절 배는 물살과 수심은 물론 바람과 물때까지 살펴야 했다. 굽이진 물길에서는 배의 방향을 잡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강은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었다. 물길의 굴곡 하나가 배의 항행을 좌우했고 수심의 변화는 배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갈랐다. 노항포가 바다를 오가던 해선이 닿을 수 있었던 상류의 거점이었다는 사실도 이런 지형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영산강 노항포 건너 '방목들'…그리고 제주말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상류로 약 2.4㎞를 거슬러 올라가면 옛 포구 노항포(路項浦)가 있던 질목구비가 나온다. 사진 왼쪽 들판이 '방목들'로 전해진다. 2026.09.26. lcw@newsis.com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상류로 약 2.4㎞를 거슬러 올라가면 옛 포구 노항포(路項浦)가 있던 질목구비가 나온다. 사진 왼쪽 들판이 '방목들'로 전해진다. 2026.09.26. [email protected]

영산강의 옛 물류망에서 제주말은 빼놓기 어려운 존재다. 고려·조선시대 제주에서 키운 말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물자였고 제주와 육지를 잇는 해상 운송도 이뤄졌다.

영산포 역시 제주말을 비롯한 여러 물자의 집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노항포 일대 강 건너편에 남아 있는 '방목들'(현재 나주 토계동 일대)이라는 지명이 눈길을 끈다.

지역에서는 제주에서 배에 실려 온 말들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거나 풀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제주말이 노항포에 내려 방목들에서 일정 기간 머문 뒤 한양으로 이동했다는 구체적인 과정을 입증해 줄 관련 기록 확보는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방목들이라는 지명은 의미가 있다. 영산강 수운이 쌀과 소금 같은 물자만 옮긴 길이 아니라 제주에서 키운 가축까지 움직였던 복합적인 교통망이었음을 보여주는 지역민들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바다와 내륙을 잇던 물류·군사의 중심 영산강

[니주=뉴시스] 10월7일부터 11일까지 닷새간 나주영산강축제가 펼쳐질  영산강정원 전경. (사진=나주시 제공) photo@newsis.com
[니주=뉴시스] 10월7일부터 11일까지 닷새간 나주영산강축제가 펼쳐질  영산강정원 전경. (사진=나주시 제공) [email protected]

영산포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의 물류 기능은 경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1374년 고려 때 최영 장군이 말을 키우던 몽골인을 뜻하는 목호(牧胡)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원정군을 이끌 당시 영산에서 군사를 정비하고 배를 이용해 제주로 향했다는 고려사(高麗史)기록도 있다.

영산강은 이처럼 나주평야의 생산물을 바다로 내보내는 길인 동시에 사람과 군사, 생활물자를 움직이는 통로였다.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교통망이 나주의 지리적 가치를 키웠다.

노항포에서 영산포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가면 나주평야가 펼쳐진다. 강에서 내려진 물자는 들판과 장터로 흘러갔고 들판에서 나온 생산물은 다시 배에 실렸다. 당시 포구는 물류의 공간이면서 사람이 만나고 정보가 오가는 생활의 중심이었다.

올가을 다시 부르는 '영산강축제'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강정원이 '2025 나주영산강축제'를 통해 홍수 조절지를 넘어 친수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사진은 드론으로 내려다본 축제 개막식 공연 야경. (사진=나주시 제공) photo@newsis.com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나주 영산강정원이 '2025 나주영산강축제'를 통해 홍수 조절지를 넘어 친수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사진은 드론으로 내려다본 축제 개막식 공연 야경. (사진=나주시 제공) [email protected]

과거 범선이 닻을 내렸던 영산강에는 올가을 다시 사람과 문화가 모인다.

나주시는 10월7일부터 11일까지 닷새간 영산강정원 일원에서 '2026 나주영산강축제'를 펼친다.

올해 축제는 박지현·김연자·포레스텔라 공연을 비롯해 닷새 동안 매일 다른 주제와 장르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첫날에는 나주와 왕건·장화황후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을 시작으로 드론 라이트쇼와 불꽃쇼가 펼쳐진다.

이어 뮤지컬, K-POP과 힙합, 천연염색 패션쇼, 가족 체험, 미식, 클래식 등이 날짜별로 이어진다. 마지막 날에는 현대무용극과 폐막 공연으로 닷새간의 축제가 막을 내린다.

과거 범선이 오가던 물길이 이제는 문화가 흐르는 것이다.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저류지는 평상시 정원이 되고 정원은 다시 축제장이 된다.

물을 다스리는 공간이 사람을 모으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재첩 잡고 모래찜질하던 질목구비의 변신

질목구비를 기억하는 현지 주민들에게 영산강은 역사책 속의 강이 아니다. 유년 시절 동무들과 물놀이하고, 먹거리를 구하고 여름 한때를 보냈던 생활의 강이었다.

범선이 닻을 내리던 노항포와 물살이 굽이치던 질목구비, 제주말의 기억을 간직한 방목들. 그리고 이제는 영산강정원에서 사람들이 축제를 기다린다.

노항포에서 질목구비를 지나 현재 영산강정원에 이르는 길에는 나주가 영산강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겹쳐 있다.

나주 영산포 주민 정모(82)씨는 "유년 시절 영산강 질목구비에서 멱을 감고 씨알 굵은 재첩을 잡아가면 어머님이 구수한 된장국을 끓여 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또 질목구비 일대는 유명 바다 해수욕장 못지않게 여름이면 뜨끈뜨끈한 모래찜질을 하려고 양산을 받쳐 든 부녀자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회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제주말 탄 범선 닻 내린 나주 노항포…올가을 축제의 향연

기사등록 2026/09/26 09:00:00 최초수정

이시간 핫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