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조정인의 시집 '청색에 흘린 청색'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됐다.
'사과 얼마예요'(2019)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네번째 시집으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의 근원 등을 탐색해가는 시적 세계를 선보인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은유, 정밀한 묘사와 감각적인 이미지가 어우러진 세련된 문장이 돋보이는 시편들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꽃들의 체온은 대체로 4°C이므로/ 집에 와 곰곰 생각하다가/ 저녁 먹고 이 닦고 다시 생각하다가/ 아,/ 꽃들은 이미 구백년간 잠든 채 갓 깨어난/ 잠의 음악이거나/ 구백살인 채 태어난 어린 신들인 거라/ 신이기에 물론 슬픔 따위 몰라야 하는/ 이 깊은 슬픔" ('이렇게 고요하고 차가운 불꽃의 세계' 중)
"나는 흔적 없이 스미고 번졌다 그것은 몹시 적막한 일/ 나…… 하고 부르면 방향을 알 수 없이 나, 나, 나…… 대답하는 메아리에 에워싸이는/ 그것은 잠수부가 물의 깊이에 몰입해가는 것과 같은 일/ 나의 청색에는 겹겹 나, 나, 나, '나'들의 메아리가 있다" ('청색에 흘린 청색' 중)
르네 마그리트 'Listening Room'에 부치는 시라는 부제가 붙은 '청사과'를 비롯해 '환승역'에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감각적 인식을 볼 수 있다.
시인의 시선은 생의 공포와 소멸의 어둠 속에서 허덕이는 존재들의 현실로 향한다. "한 사람의 장례는 모든 사람의 장례"('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라는 깨달음은 개인의 상실을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확장하고, "누가, 무엇이 그를 죽게 했는지?"('타살들')라고 묻는 목소리는 한 노동자의 죽음이나 희생을 단순한 개인의 불행으로 지나치지 않고 그 불행을 야기한 배후를 살핀다.
시인은 고통과 절망의 세계를 온 힘을 다해 응시하면서도 끝내 생의 기척과 사랑의 빛을 포착한다. "손이 따듯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일을 추억이라 하고/ 잡은 손을 놓을 리 없을 거라 믿는 일을 사랑이라 한다"('백색소음')고 말하며 사랑과 애도는 결국 '기억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사랑 역시 상처가 없는 무결한 상태가 아니다. 시인은 "사랑은 그러므로 스스로 얻은 상처가 아름다울 때 발현되는 빛"('검은 곤드레나물을 삶는 밤')이라고 말하며,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강한 생명의 힘과 희망을 다시 찾아간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인간은 어디까지 아름다움을 감당할 수 있는 걸까"라고 묻고, 이렇게 결론 내린다.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일은 나를 용서하는 일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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