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숫자와 데이터…료지 이케다, 제주서 세계 최초 신작 공개

기사등록 2026/09/23 00:01:00

최종수정 2026/09/23 01:25:43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24일 하우스오브레퓨즈 개막…국내 개인전 사상 최다 작품

세계 최초 신작 ‘the irreducible’…25m 유전체 데이터 터널도

20년 방치 건물의 변신…숫자·코드·빛·소리로 감각 흔들어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료지 이케다 개인전의 시작을 여는 ‘the critical paths’. 약 25m 길이의 터널형 공간에서 천장의 LED 패널과 양쪽 거울을 따라 데이터가 끝없이 이어진다. 2026.09.22..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료지 이케다 개인전의 시작을 여는 ‘the critical paths’. 약 25m 길이의 터널형 공간에서 천장의 LED 패널과 양쪽 거울을 따라 데이터가 끝없이 이어진다. 2026.09.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들어서자마자 숫자와 코드가 머리 위로 쏟아진다.

수십 미터 길이의 LED 천장을 질주하는 데이터는 양쪽 거울에 부딪혀 끝없이 증식한다. 이 공간에 들어선 관객의 몸도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복제된다. 어디까지가 실제 공간이고 어디부터가 반사인지 경계가 사라진다.

수백만 자리 숫자가 거대한 LED 벽을 뒤덮고, 인간의 유전체 데이터는 25m 길이의 빛의 터널이 된다. 빠르게 움직이는 레이저 한 점은 허공에 입체를 만들어낸다. 분명 눈앞에 존재하지만 전부 볼 수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Ryoji Ikeda)가 숫자와 데이터, 코드로 인간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경계를 밀어붙인다.

22일 제주 애월 하우스오브레퓨즈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미리 공개된 개인전 ‘료지 이케다(Ryoji Ikeda)’는 숫자와 코드, 데이터를 빛과 소리, 공간으로 바꿔 인간의 감각을 압도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the critical paths’. 2026.09.22.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the critical paths’. 2026.09.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에서 열린 이케다 개인전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세계 최초 공개 신작도 내놨다. 약 1000㎡ 규모의 전시장 구성부터 작품 배치, 관람 동선까지 이케다가 직접 설계했다.

작품은 말이 많지만 작가는 말을 아꼈다. 이날 저녁 이케다는 하우스오브레퓨즈 2층에서 직접 라이브 퍼포먼스를 펼쳤다.

검은 옷에 검은 모자와 색안경을 쓴 이케다는 10대의 턴테이블 앞에 서서 소리에만 집중했다. 낮게 둥둥거리는 기계음이 공간을 울렸다. 동굴 속에서 음파가 벽을 치고 되돌아오는 듯했다. 짧게 분절된 소리는 반복되다가 어긋나고 다시 겹쳤다. 창밖의 초록 풍경과 실내의 기계음이 낯설게 공존했다.
료지 이케다 라이브퍼포먼스. 사진=하우스오브레퓨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료지 이케다 라이브퍼포먼스. 사진=하우스오브레퓨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이 끝난 뒤 이케다 스튜디오 매니저는 "이런 형태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은 나도 20년 만”이라며 박물관이나 대형 갤러리였다면 고려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이 공간과 이날 미디어데이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퍼포먼스"라고 전했다.

이케다는 이날 기자들과 별도의 인터뷰는 진행하지 않았다. 평소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게 스튜디오 측 설명이다.

이케다는 이번 퍼포먼스에 대한 뉴시스의 서면 질문에 “10대의 턴테이블에서 서로 다른 주기로 반복되는 사운드 루프들이 우연히 겹치며 끊임없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며 “반복과 우연, 미세한 시간차를 통해 정교하면서도 명상적인 사운드 공간을 만드는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료지 이케다 라이브 퍼포먼스. 사진=하우스오프레퓨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료지 이케다 라이브 퍼포먼스. 사진=하우스오프레퓨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66년 일본 기후에서 태어나 파리와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케다는 전자음악가로 출발해 사운드와 시각예술의 경계를 확장해온 작곡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다. 소리의 주파수와 수학적 구조에 대한 탐구는 숫자와 코드, 방대한 데이터를 소리와 영상, 빛으로 변환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일본의 멀티미디어 아트 그룹 ‘덤타입(Dumb Type)’에 참여했으며 런던 바비칸센터,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TIME100 AI’에 선정됐다. 올해는 제9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료지 이케다 〈the irreducible〉, 2026, LED 패널, 거울, 컴퓨터, 스피커 *재판매 및 DB 금지
료지 이케다 〈the irreducible〉, 2026, LED 패널, 거울, 컴퓨터, 스피커 *재판매 및 DB 금지

눈앞에 있는데도 알 수 없는 숫자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신작 ‘the irreducible’이 있다.

수백만 자리의 숫자가 거대한 LED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바닥의 거울은 숫자를 다시 반사한다. 숫자는 끝없이 증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the irreducible’은 이번 제주 전시에서 바닥에 거울을 설치한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 거대한 화면의 숫자가 거울에 반사되면서 공간이 확장되고, 인간이 아무리 지적 능력을 갖추더라도 그 수가 실제로 어떤 성질을 갖는지 완전히 검증하기 어렵다는 개념과 연결된다.

‘irreducible’은 더 이상 줄이거나 환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작품의 핵심은 거대한 숫자 자체가 아니다. 수백만 자리의 숫자는 정확하게 존재하고 컴퓨터에 저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 모든 자리를 읽고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눈앞에 존재하지만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숫자 앞에서 인간 인식의 한계가 드러난다. 전시 측은 이를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무한성과 마주하는 ‘수학적 숭고’로 설명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가 제주에서 세계 최초 공개한 신작 ‘the irreducible [nº13]’.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가 제주에서 세계 최초 공개한 신작 ‘the irreducible [nº13]’.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세계 최초 공개 신작 ‘the irreducible [nº13]’에서는 질문이 더 극단으로 향한다.

100만 자리가 넘는 하나의 수를 35㎜ 영화 필름에 인쇄해 라이트박스 안에 설치했다. 영화 필름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정지한 필름 사이로 빛이 통과하면서 깨알 같은 숫자들이 하나의 이미지처럼 떠오른다.

가까이 다가가면 숫자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전부 읽을 수 있느냐가 아니다. 그 수가 정말 ‘기약적’인지 인간이 끝까지 판단할 수 있는가. 거대한 숫자를 눈앞에 내놓고 인간이 무엇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data.gram [nº9]〉, 2026, LCD 디스플레이 18개, 컴퓨터, 네트워크 기획, 컴포지션_ 료지 이케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래밍_ 노리미치 히라카와, 토모나가 토쿠야마, 료 시라키 *재판매 및 DB 금지
〈data.gram [nº9]〉, 2026, LCD 디스플레이 18개, 컴퓨터, 네트워크 기획, 컴포지션_ 료지 이케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래밍_ 노리미치 히라카와, 토모나가 토쿠야마, 료 시라키 *재판매 및 DB 금지


볼 수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전시의 시작에서 관객을 압도했던 ‘the critical paths’에는 에스토니아 타르투대학교 유전체학연구소와 협업한 10만명의 유전체 데이터가 사용됐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유전체 정보를 25m 길이의 빛과 움직임으로 바꿔 관객이 그 안을 직접 걷게 했다. 인간이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변화와 분기의 시간을 하나의 ‘길(path)’로 만든 작품이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개인전 전경. 단백질 분자구조 데이터가 빛과 공간으로 영상.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개인전 전경. 단백질 분자구조 데이터가 빛과 공간으로 영상.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data.gram [nº9]’에서는 18개 화면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인다. ‘code-verse [display version]’는 데이터 대신 코드 자체를 이미지로 전환한다. ‘data.tecture [nº1]’에서는 단백질 분자구조 데이터가 빛과 공간으로 바뀐다. 관객은 그 위에 서서 데이터를 몸으로 경험한다.

보이지 않던 정보가 빛을 얻고 물질이 되고 공간이 되는 현장이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내 처음 공개하는 ‘spin’.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내 처음 공개하는 ‘spin’.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로 있는 것과 우리가 보는 것은 같은가

또다른 공간에서는 레이저 한 점이 움직인다. 국내 처음 공개하는 ‘spin’이다.

점의 움직임이 빨라지자 선이 된다. 더 빨라지면 허공에 떠 있는 3차원의 형태처럼 보인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움직이는 빛의 점이다. 그러나 인간의 눈과 뇌는 이를 하나의 연속된 형태로 인식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

125만 자리 이상의 숫자를 알루미늄 위에 펼쳐놓은 ‘sleeping beauty (the unknowable irreducible)’도 같은 질문을 이어간다. 숫자는 분명 존재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을 돌수록 질문은 선명해진다.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과연 같은가.

이케다는 데이터를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정확하다고 믿는 숫자와 코드 앞에 인간을 세운다. 숫자는 정확하고 데이터는 방대하다. 그러나 인간의 눈과 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는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데이터는 정답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숫자와 코드가 질주하고 빛과 소리가 감각을 흔든다. 눈앞에 있는데도 다 볼 수 없고, 보면서도 다 알 수 없다. 제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한 신작들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보고,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미디어 영상 작품에 이어 평면과 설치 작업이 전시된 료지 이케다 개인전 전경. 사진=이영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디어 영상 작품에 이어 평면과 설치 작업이 전시된 료지 이케다 개인전 전경. 사진=이영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개인전이 열리는 제주 애월 하우스오브레퓨즈 전경.2026.09.22.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료지 이케다 개인전이 열리는 제주 애월 하우스오브레퓨즈 전경.2026.09.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20년 버려진 건물, 1800평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케다가 이번 전시의 공간 설계까지 직접 맡은 하우스오브레퓨즈도 눈길을 끈다.

제주 애월 숲속에서 20여 년간 방치됐던 콘크리트 건물을 되살린 약 1800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음악 레이블 BANA(Beasts And Natives Alike) 김기현 대표와 브루클린버거가 함께 조성했다. 음악과 미술, 공연, 패션, 식음료를 한 공간에 엮었다.

임대범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는 “제주에서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 숲속에 20년 동안 버려져 있던 건물을 발견했다”며 “공간이 가진 아우라가 좋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백화점처럼 처음부터 그랜드오픈하기보다 천천히 배우면서 운영하고 있다”며 “제주에도 세계적인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지는 랜드마크 같은 공간을 하나 잘 꾸려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개관 전시에서는 픽사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 오의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오페라’를 비롯한 작품을 선보이며 입소문을 탔다.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임대범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가 22일 료지 이케다 개인전이 열리는 제주 애월 복합문화공간 하우스오브레퓨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6.09.22.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임대범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가 22일 료지 이케다 개인전이 열리는 제주 애월 복합문화공간 하우스오브레퓨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6.09.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층에는 10m 길이의 대리석 바가 놓인 카페 ‘더 커미서리’가 있다. 빈티지 피규어와 의류를 판매하는 공간도 갖췄다. 건물 뒤편으로는 약 500평 규모의 소나무숲과 잔디밭이 펼쳐진다. 2층 식당에 이어 피자집과 서점도 순차적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이름 그대로 ‘하우스오브레퓨즈(House of Refuge)’는 ‘피난처’를 뜻한다. 임 CCO는 “제주에서 갈 데가 없어 마치 난민처럼 떠돌게 되면 여기로 오라는 의미도 있다”며 “우리가 하나의 쉼터가 돼주겠다는 위트를 담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하우스오브레퓨즈 뒷마당 정원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하우스오브레퓨즈 뒷마당 정원 *재판매 및 DB 금지


‘2026 제주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면 함께 둘러볼 만하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핫플’로 떠올랐다. 애월읍 산속에 호젓하게 자리한 공간은 거친 콘크리트 건물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뜻밖의 감각을 드러낸다. 임 CCO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3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았다.

전시는 24일부터 2027년 1월18일까지. 관람료 2만3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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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숫자와 데이터…료지 이케다, 제주서 세계 최초 신작 공개

기사등록 2026/09/23 00:01:00 최초수정 2026/09/23 01: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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