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주대병원 예술공간 이아…노거수·신화·굿, 동시대미술로 변용
김영화 ‘날과 씨’부터 김상돈 ‘3무동’까지…‘1만8000 신의 섬’ 다시 읽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18일 김영화 작가가 제주 예술공간 이아의 녹나무를 감싸 제작한 ‘날과 씨’(2026) 앞에 서 있다. 철사와 색색의 털실로 엮은 작품은 오래된 녹나무를 신목이자 하늘과 이어지는 ‘우주목’으로 바라본다. 2026.09.18.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18/NISI20260918_0002243348_web.jpg?rnd=20260918133111)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18일 김영화 작가가 제주 예술공간 이아의 녹나무를 감싸 제작한 ‘날과 씨’(2026) 앞에 서 있다. 철사와 색색의 털실로 엮은 작품은 오래된 녹나무를 신목이자 하늘과 이어지는 ‘우주목’으로 바라본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끼까지 품은 오래된 녹나무의 신령스러움 위로 붉고 푸른 색실이 뻗어나간다. 제주 작가 김영화의 ‘날과 씨’(2026)는 제주 원도심의 노거수를 철사와 털실로 감싸 과거의 신목을 미래적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제주 신화와 동시대 미술이 겹쳐진 모습이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낯설고 생경하다.
제주 원도심 한복판, 오래된 건물 앞뒤로 두 그루의 거대한 녹나무가 서 있다. 1976년 제주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노거수다. 건물의 주인이 바뀌고 도시의 풍경이 변하는 동안에도 나무는 한자리를 지켰다.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예술공간 이아에서 이 나무가 작품이 됐다. 제주에서 녹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자 당굿이 열리는 신목(神木)으로 여겨져 왔다.
18일 현장에서 만난 김영화는 “두 녹나무를 하늘까지 이어지는 ‘우주목’으로 상상했다”며 “여름 내내 가족들과 함께 하나하나 직접 엮어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김영화는 시각예술가이자 동화작가다.
작가는 나무를 베거나 옮기지 않았다. 철사와 털실을 엮어 만든 붉고 파랗고 보랏빛의 물색을 오래된 가지와 몸통에 감았다. 곳곳에는 작은 요령을 달았다. 장식용으로 새로 만든 것이 아니다. 전날 도립미술관에서 초감제를 연 서순실 심방의 제자가 실제 사용하던 요령이다. 바람이 불면 맑은 소리가 난다.
실제 굿의 소리가 오래된 신목에 더해졌다. 신화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는 제주의 삶과 의례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제주 예술공간 이아의 오래된 녹나무에 설치된 김영화의 ‘날과 씨’(2026). 철사와 색색의 털실이 이끼 낀 노거수와 얽히며 신목을 미래적인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2026.09.18.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18/NISI20260918_0002243354_web.jpg?rnd=20260918133221)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제주 예술공간 이아의 오래된 녹나무에 설치된 김영화의 ‘날과 씨’(2026). 철사와 색색의 털실이 이끼 낀 노거수와 얽히며 신목을 미래적인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 제목 ‘날과 씨’는 직조의 날실과 씨실에서 가져왔다. 색색의 실이 나무를 감싸며 사람과 자연, 과거와 현재를 엮는다. 작가는 그 앞에 작은 ‘비념’을 올린다. 제주에서 이어져 온 기도의 행위를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다시 풀어냈다.
예술공간 이아는 옛 제주대학교병원 건물의 골조를 살려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병원이 떠난 자리에는 예술이 들어왔지만 녹나무는 남았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장소의 기억은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진다. 병원 시절 영안실로 사용됐던 공간도 남아 있다. 제주4·3의 비극적인 역사와도 맞닿아 있는 장소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8일 옛 제주대학교병원을 리모델링한 예술공간 이아 입구의 녹나무에 설치된 김영화의 ‘날과 씨’(2026). 작가는 건물 앞뒤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두 그루의 녹나무를 철사와 색색의 털실로 감싸 신목이자 ‘우주목’으로 변용했다. 2026.09.18.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18/NISI20260918_0002243404_web.jpg?rnd=20260918135903)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8일 옛 제주대학교병원을 리모델링한 예술공간 이아 입구의 녹나무에 설치된 김영화의 ‘날과 씨’(2026). 작가는 건물 앞뒤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두 그루의 녹나무를 철사와 색색의 털실로 감싸 신목이자 ‘우주목’으로 변용했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삶을 치료하던 병원과 죽은 이를 머물게 했던 영안실. 그 경계에 지금 예술이 들어섰다.
김영화는 바로 이곳에 ‘이미 존재하던 시간’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제주 신화를 설명하거나 신목을 재현하는 대신 실제 나무와 작업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나무의 시간에 인간이 만든 색실을 잠시 덧댔다.
이 지점에서 이번 제주비엔날레 원도심 전시의 성격이 선명해진다.
제주에는 흔히 ‘1만8000 신의 섬’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다양한 신화와 무속신앙이 전해진다. 예술공간 이아의 ‘큰 할망의 배꼽: 신화’ 섹션은 이를 박제된 옛이야기로 불러내지 않는다. 제주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을 이해해온 세계관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다시 묻는다.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18일 제주 예술공간 이아 아고라에 설치된 김상돈의 ‘거울 속 열쇠들-3무동’과 ‘거울 속 열쇠들-4개의 씨’. 중앙의 ‘3무동’은 탐라 건국신화의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삼을나의 형상을 결합했다. 주변 네 여신은 제주 심방과 해녀의 이미지를 품으며 생명과 보호, 계승의 의미를 드러낸다. 2026.09.18.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18/NISI20260918_0002243362_web.jpg?rnd=20260918133800)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18일 제주 예술공간 이아 아고라에 설치된 김상돈의 ‘거울 속 열쇠들-3무동’과 ‘거울 속 열쇠들-4개의 씨’. 중앙의 ‘3무동’은 탐라 건국신화의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삼을나의 형상을 결합했다. 주변 네 여신은 제주 심방과 해녀의 이미지를 품으며 생명과 보호, 계승의 의미를 드러낸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아고라에는 김상돈의 네 여신과 ‘3무동’ 조각이 들어섰다. ‘3무동’은 탐라 건국신화의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삼을나의 형상을 결합했다. 주변의 네 여신은 제주 심방과 해녀의 이미지를 품으며 생명과 보호, 계승의 의미를 드러낸다.
손유진은 제주 창세신화 ‘천지왕본풀이’에서 출발한 폭 9m가 넘는 대작 ‘The Between Two Suns and Two Moons’(2026)를 펼쳤다.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존재했던 신화 속 혼돈을 낮과 밤의 경계마저 희미해진 초연결 시대의 풍경으로 바꿨다. 오래된 신화가 오늘의 혼돈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제주 예술단체 인스피어는 굿에서 사용하는 종이 무구 ‘기메’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다. ‘영겟기’와 ‘서천꽃밭’(2026)을 통해 신화 속 공간을 전시장 안으로 불러들였다. 서천꽃밭을 채운 꽃은 제주 어린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신화의 ‘뒤집힌 세계’는 동시대의 질서까지 건드린다. AES+F의 영상 ‘인베르소 문두스(Inverso Mundus)’에서는 아이들이 복싱 글러브를 끼고 어른에게 주먹을 뻗는다. 현실의 위계와 익숙한 질서가 전복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제5회 제주비엔날레 예술공간 이아에 전시된 AES+F의 영상작품 ‘인베르소 문두스(Inverso Mundus)’. 아이들이 어른을 위협하는 등 현실의 위계와 질서가 뒤집힌 장면을 통해 전복된 세계를 펼쳐 보인다. 2026.09.18.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18/NISI20260918_0002243370_web.gif?rnd=20260918134306)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제5회 제주비엔날레 예술공간 이아에 전시된 AES+F의 영상작품 ‘인베르소 문두스(Inverso Mundus)’. 아이들이 어른을 위협하는 등 현실의 위계와 질서가 뒤집힌 장면을 통해 전복된 세계를 펼쳐 보인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제5회 제주비엔날레 예술공간 이아에 설치된 제주 예술단체 인스피어의 ‘영겟기’(왼쪽)와 ‘서천꽃밭’(2026). 제주 굿에서 사용하는 종이 무구 ‘기메’를 활용해 이승과 저승을 잇는 신화적 공간을 만들었다. ‘서천꽃밭’의 꽃들은 제주 어린이들이 직접 제작했다. 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종후 예술감독은 제주를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들어와 섞이고 변용되며 만들어진 섬으로 바라봤다. 그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지리와 생태에 새겨진 변용의 흔적을 유배·신화·돌문화라는 세 축으로 조명했다”며 “인간과 자연의 공생, 연결과 융합을 통해 만들어질 미래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8월25일 개막한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을 주제로 오는 11월15일까지 열린다. 제주도립미술관장인 이종후 예술감독과 독립기획자 이병희 총괄큐레이터가 기획했다. 국내외 20개국 69팀이 참여해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돌문화공원, 제주 원도심 일대에서 전시를 펼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