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경에 비트 덧입힌 日승려 야쿠시지 "도피처였던 음악, 내 자신과 마주한 출발선"

기사등록 2026/09/17 08:30:39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10월30일 예스24 원더로크홀서 첫 내한공연

"무수한 연결 느낀 경험…반야심경 뮤직 노래 원동력"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무거운 운명에서 도망치려 음악을 택했다. 그러나 세속의 방패로 삼았던 음악은 결국 그를 가장 깊은 내면의 도량으로 되돌려놓는 정직한 나침반이 됐다. 전자음악의 무한한 비트 위에 고대의 불교 경전을 얹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일본의 '음악 승려' 간호 야쿠시지(Kanho Yakushiji·칸호 야쿠시지)의 궤적은, 그 자체로 삶의 역설이 빚어낸 한 편의 구도(求道)다.

오는 10월30일 서울 신촌 예스24 원더로크홀에서 열리는 야쿠시지 첫 내한공연의 부제는 '서클 오브 하모니(Circle of Harmony)'다. 궤도를 이탈했던 마음이 치열한 방황을 거쳐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온전한 회귀를 뜻한다.

일본 가이젠지의 부주지이자 선승인 그는, 유튜브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긴 자신의 '반야심경'을 단순한 종교적 퍼포먼스가 아닌 '관계와 공명'의 미학으로 벼려냈다. 겹겹이 쌓아 올린 독경 소리가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요동치는 번뇌가 끝내 텅 빈 고요로 수렴되는 과정은 경전이 말하는 공(空)의 세계를 청각적으로 증명한다.

세속의 한가운데서 깨달음을 노래하고, 엄격한 사찰의 적막 속에서 타인의 상실을 듣는 야쿠시지에게 음악과 기도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가지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타인의 기억을 어루만지고, 기어코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법을 묻는 이 치열한 수행자와의 대화를 아래에 전한다. 다음은 재즈브릿지컴퍼니를 통해 야쿠시지와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이번 첫 단독 내한공연의 부제가 '서클 오브 하모니(Circle of Harmony)'입니다. 경전을 노래한 지 10년이 되는 해에 한국 관객을 처음 마주하게 됐는데, 야쿠시지 님이 생각하는 '원(圓)'은 시작했던 자리로 다시 온전하게 돌아오는 마음을 뜻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이번 투어 타이틀인 '원(圓)'은 출발점으로 아무 변화 없이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같은 장소로 돌아온 것처럼 보여도, 지금의 저는 10년 전의 저와는 다릅니다.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이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갈등 속에서도 이 음악을 만드는 의미를 찾아온 10년의 끝에서 새로운 길의 문을 여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수행 중에 느꼈던 목소리의 겹침을 재현해 보고 싶다는 하나의 호기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호기심에서 태어난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을 가다듬어 주는 음악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10년에도, 더 큰 원, 더 큰 인연의 고리를 그릴 수 있도록 이 음악을 계속 만들어 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청소년 시절 아버지의 사찰(가이젠지)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운명이 무거워, 음악을 일종의 '탈출구'로 삼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때의 음악은 야쿠시지 님에게 세상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였습니까?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젊은 시절의 제게 음악은 분명 도피처였습니다. 절에서 태어나 외아들로서 언젠가는 절을 이어가야 한다는 운명을 조금 무겁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음악에 관심을 갖고 몰두하며, 스스로 표현하는 일을 통해 그 운명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싶었고,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단순한 방패만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것 역시 신기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 기쁨을 처음 알게 되었고, 프로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던 그 시절의 기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음악이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위한 소중한 출발선이 됐습니다."

-스물일곱에 밴드 킷사코(Kissaquo)로 메이저 데뷔를 이뤘지만, 대중의 취향과 음반 판매에 쫓기며 정작 '노래하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워졌다'고 회상하셨습니다. 도망치기 위해 만든 탈출구가 또 다른 감옥이 됐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디셨습니까?

"메이저 데뷔 후에는 대중의 취향과 CD 판매를 의식하는 가운데 주변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으며 '무엇을 노래하고 싶은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를 알 수 없게 됐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음악에 어느새 쫓기게 됐고, 작곡도 할 수 없게 됐으며, 노래하는 것 자체가 괴로워졌습니다. 그때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 '선(禪)'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의 중요성'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때 '아, 나는 지금까지 계속 나 자신에게서 도망쳐 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 시기는 어쩌면 제가 한 번 멈춰 서야 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대로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음악을 그만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나 자신과, 그리고 음악과 마주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의 목소리를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내가 정말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고요. 그 결과 메이저 레이블을 떠나 인디 음악으로 돌아가 활동하게 됐지만, 그 결정은 제게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방황하던 시절, 규슈 공연 후 한 노인이 다가와 '당신의 노래 덕분에 나를 키워주신 조부모님이 떠올랐다'며 눈물을 흘린 일이 인생의 분기점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타인의 기억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순간, 음악과 기도가 결국 같은 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하셨던 건가요?

"그때의 일은 정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침 고향을 주제로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분이 '그 노래를 듣고 나를 길러 주신 조부모님을 떠올렸다'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때 문득, 내가 노래를 통해 하고 있는 일이 아버지가 승려로서 법회나 제사 자리에서 '공양이란 기억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노래도 경전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기억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강하게 실감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제가 승려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종교와 음악은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위해 음악이 계기가 되는 것. 그것은 예로부터 계속되어 온 형태이며, 제 음악도 그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 만남 이후 쓴 곡 '아이 엠(I Am)'에는 흔들리고 방황하는 자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이 곡을 쓰고 난 뒤 비로소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승려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 엠(I Am)(일본어 제목: わたし)는 메이저 레이블 시절의 갈등 속에서, 선에 관한 책에서 영감을 받아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를 주제로 만든 곡입니다. 그때의 흔들림과 계속해서 방황하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모두 받아들이려 했던 곡입니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그것을 가르쳐 준 선과 불교를 더 알고 싶고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언젠가 불문 수행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아이 엠'은 결의의 노래입니다. 지금도 이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것은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서른의 나이에 모든 음악 활동과 인연을 뒤로하고 교토 덴류지(天龍寺)로 들어가 엄격한 임제종 수행을 시작하셨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의 갈채와 새벽 사찰의 적막 사이에서 찾아온 괴리감이나 절망은 없었습니까?

"물론 그런 감정은 있었습니다. 무대에서는 조명을 받고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많은 분들 속에 있었지만, 수행에 들어가면 고요한 절에서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외부의 정보와 단절된 채 오직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수행의 중심은 좌선입니다. 그 고요함 속에 앉아 자신의 과거와도 마주하는 가운데,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의 약함과 집착, 치우침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수행 생활은 매우 엄격했지만, 이 삶에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은지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수행 3개월 무렵, 밭 위에 뿌려지는 물보라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창한 교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평범한 풍경 속에서 마음의 문이 열렸던 그 순간은 어떤 체험이었습니까?

"수행을 시작한 첫 3개월은 그 엄격한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 힘들었습니다.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저 눈앞의 일과 마주하는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과 몸이 그 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해 질 무렵 밭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뿌려진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아름답다'라고 느꼈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마음 깊이 감동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평소 일상을 살다 보면 사소한 감정의 움직임을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수행 생활을 통해 마음이 정리되고, 눈앞의 풍경과 경험을 온몸으로 마주했기 때문에 '아름답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감각을 일상에서도 소중히 여기고 싶어서, 가능한 한 작은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반응을 느끼며 '지금 이 경험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됐습니다. 우리는 자꾸 답을 밖에서 찾으려 하지만, 사실 답은 모두 자기 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울=뉴시스] 간호 야쿠시지(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제공) 2026.09.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간호 야쿠시지(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제공) 2026.09.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매일 새벽 4시 반, 스무 명 남짓한 승려들과 함께 불경을 외울 때 마음이 차분하게 정돈되는 경험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질 때 '나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의 경계가 지워지는 감각이 야쿠시지 님의 음악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수행 시절,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곧바로 본당에서 많은 수행 동료와 함께 경을 외울 때 느꼈던 감각이 반야심경 뮤직을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진 에너지가 겹쳐지고, 다시 크고 하나의 울림이 돼 마음 깊은 곳까지 편안해지는 감각.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경전을 화음으로 쌓아 보면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든 곡이 '반야심경 코러스 버전(chorus ver.)'입니다. 목소리는 저마다 다르지만, 서로 겹쳐 울림을 만들 때 연결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편곡한 '반야심경'을 헤드폰으로 들으며 도시를 걸었을 때 일상의 풍경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고 하셨습니다. 번잡한 세속 한가운데서 고대의 경전이 울려 퍼질 때, 눈앞의 세상은 어떻게 변모하던가요?

"제가 처음으로 편곡한 반야심경을 헤드폰으로 들으며 거리를 걸었을 때, 평소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수행 시절 밭에서 물방울을 봤던 감각과도 조금 비슷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감각으로 평소 보던 거리의 풍경,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끊임없이 흐르는 자동차, 자주 가는 슈퍼마켓, 그런 당연한 풍경과 시간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무수한 연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라고요.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은, 지금도 제가 반야심경 뮤직을 계속 노래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현대 일본 불교가 장례식 때만 찾는 '장례 불교'로 굳어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지금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불교를 음악으로 전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야쿠시지 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구도(求道)'는 절 안의 고요가 아니라 번뇌하는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까?

"일본 불교는 '장례 불교'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주지 스님 세대도 바뀌면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처럼 음악을 통해 전하는 승려도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불교를 일상에 전하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 역시 장례나 법사를 진행하면서, 바로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만 전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느낍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사람은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과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승려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지금도 제 안에 있습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를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먼저 자기 자신과 계속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은지, 어떤 때 행복을 느끼는지. 자신을 알아갈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연결되고, 보살피며,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뇌도 살아가는 이상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게 번뇌는 살아가는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번뇌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나의 미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것인지. 내려놓을 것인지, 소중히 할 것인지를 계속 선택해 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절의 고요함조차, 불교조차 도피처가 될 수 있습니다. 도피처를 그저 도피처로만 계속 사용할 것인지, 그곳에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것인지, 그것 역시 계속 선택해 가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구도는 특별한 장소나 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칸호 야쿠시지. (사진 = 재즈브릿지컴퍼니) 2026.09.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일렉트로닉 음악의 무한한 루프(Loop)와 불교의 다라니, 목탁 소리는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을 통해 듣는 이를 깊은 명상과 내면의 몰입으로 이끄는 음악적 장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반야심경의 핵심은 '모든 형태는 비어 있고, 비어 있는 것이 곧 형태'라는 역설입니다. 악기 소리를 겹겹이 쌓아 올리다가 일순간 고요한 침묵으로 비워내는 편곡 방식은, 경전이 말하는 공(空)의 상태를 청각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입니까?

"처음 반야심경 뮤직의 형태를 만들었을 때, '공(空)'을 소리로 표현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공'을 음악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편곡을 한 뒤, 제 독경을 여러 겹으로 쌓은 코러스 하모니를 들었을 때, '이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닐까'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군가와의 연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목소리를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겹쳐진 목소리와 사람 사이의 연결, 그리고 공명이 이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반야심경이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 비로소 존재한다는 것. 이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주하는 사람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 주시는 청중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합니다. 모든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향 이마바리에는 육지와 바다를 잇는 거대한 쿠루시마 해협 대교가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 성스러움과 세속, 종교와 대중음악 사이에서 방황하던 소년이 이제는 그 두 세계를 잇는 하나의 단단한 '다리'가 됐다는 느낌을 받으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자신을 그런 '다리'라고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반야심경 뮤직이 불교를 조금 더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고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상'과 '종교'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자를 모르거나 불교 신자가 아닌 서구와 아시아의 수많은 청자들도 야쿠시지 님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언어와 교리를 건너뛰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소리의 힘'은 어디에서 온다고 보십니까?

"이전에 해외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분이 '이 음악을 느끼는 그대로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도 매우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원래 저는 일본어로 된 반야심경이 해외의 분들께도 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집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그러한 마음을 단번에 없애 줬습니다. 경전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소리를 통해 그 사람 자신의 기억과 감정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소리는 '이해하는 것'이라기보다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는 진동이기도 하기에, 말의 뜻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목소리의 울림, 호흡, 리듬, 하모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일 것입니다. 경전의 어감과 울림에도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져 온 특별한 편안함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언어의 의미나 교리를 넘어,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에 닿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독경에 비트 덧입힌 日승려 야쿠시지 "도피처였던 음악, 내 자신과 마주한 출발선"

기사등록 2026/09/17 08:30:39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