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녹색운동 시위 때, 수천명 사망 무자비한 진압으로 악명 떨쳐
美의 제재 강화·리알화 폭락·연료부족 등 속 대중저항 억누르는 역할 할 것
![[서울=뉴시스]이란 보안 기관 내에서 무자비한 시위 진압으로 악명을 떨치다 4년 전 축출됐던 호세인 타에브(63)가 사회를 감시하고 충성파를 동원하며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준군사 조직 바시즈 민병대 사령관으로 복귀한 것은 과거 대규모 불안 사태를 촉발했던 경제 제재 강화 속 이란 리알화 통화 가치 폭락과 연료 부족 심화와 같은 취약점들 속에서 이란의 새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타에브의 바시즈 민병대를 이용해 대중 저항을 진압하고 이란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와이넷뉴스닷컴(Ynetnews.com)이 26일 보도했다. 사진은 타에브(오른쪽)가 모즈타바(왼쪽)와 함께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이란 인터내셔널> 2026.08.27.](https://img1.newsis.com/2026/08/27/NISI20260827_0002223528_web.jpg?rnd=20260827191047)
[서울=뉴시스]이란 보안 기관 내에서 무자비한 시위 진압으로 악명을 떨치다 4년 전 축출됐던 호세인 타에브(63)가 사회를 감시하고 충성파를 동원하며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준군사 조직 바시즈 민병대 사령관으로 복귀한 것은 과거 대규모 불안 사태를 촉발했던 경제 제재 강화 속 이란 리알화 통화 가치 폭락과 연료 부족 심화와 같은 취약점들 속에서 이란의 새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타에브의 바시즈 민병대를 이용해 대중 저항을 진압하고 이란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와이넷뉴스닷컴(Ynetnews.com)이 26일 보도했다. 사진은 타에브(오른쪽)가 모즈타바(왼쪽)와 함께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이란 인터내셔널> 2026.08.27.
[서울=뉴시스] 유세진 기자 = 이란 보안 기관 내에서 무자비한 시위 진압으로 악명을 떨치다 4년 전 축출됐던 호세인 타에브(63)가 사회를 감시하고 충성파를 동원하며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준군사 조직 바시즈 민병대 사령관으로 복귀한 것은 과거 대규모 불안 사태를 촉발했던 경제 제재 강화 속 이란 리알화 통화 가치 폭락과 연료 부족 심화와 같은 취약점들 속에서 이란의 새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타에브의 바시즈 민병대를 이용해 대중 저항을 진압하고 이란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와이넷뉴스닷컴(Ynetnews.com)이 26일 보도했다.
모즈타바가 타에브를 바시즈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외교관들과 분석가들은 타에브에게 바시즈를 이란 내에서 자신의 하메네이의 눈과 귀가 되도록 바꾸라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타에프는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충성파 집단에 속하게 됐으며, 전례 없는 시위 운동과 계속되는 전쟁으로 흔들리는 이란을 이끌 핵심 인물로 자리잡게 됐다.
2010년 이란을 떠나 현재 유럽에 망명 중인 이슬람 혁명수비대 출신 모하마드 호세인 토르카만은 "타에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내부 저항을 예방하고 멈추게 하며, 저항이 발생했을 때 이를 진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개월째 이어진 전쟁을 끝내기 위해 군사 공격 위협에서 강도 높은 경제 압박으로 전환하면서, 이 임무는 이란에 특히 중요해졌다. 미국이 더 강력한 제재를 발표하기 전부터 이란 리알화 가치는 이미 장기 하락세를 보였고, 연료 접근성도 점점 더 제한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압박 요인은 이전에도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었다.
타에브의 복귀는 바시즈 민병대의 역할이 확대될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지난 1월 리알화 폭락으로 벌어전 대규모 시위 때 바시즈 민병대가 소요 진압에 나섰는데 당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었다.
바시즈 민병대는 또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암살 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모즈타바의 권위를 굳힐 수 있는 충성스러운 사회적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도 떠맡을 것이다.
테네시 대학교 정치학 교수 사이드 골카르는 "타에브가 이끄는 바시즈는 모즈타바의 사회적 기반이 될 것이며, 사회를 통제할 뿐만 아니라 정치 엘리트도 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에브는 1963년 테헤란에서 태어났으며, 성직자로 훈련받았고 1980년대 초반에 혁명수비대에 합류했다. 8년 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그는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함께 싸웠다.
전쟁 후 그는 정보부에서 방첩 업무를 맡았고, 1990년대 후반에는 모즈타바와 직접 내부 안보 문제를 조율하기도 했다.
그 경험은 그가 2009년 논란이 된 대통령선거 이후 발생한 녹색운동 시위를 진압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바시즈 민병대의 사령관이 되는데 밑거름이 됐다. 이로 인해 타에브는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그의 방법은 이란 내 일부 기득권층에서조차 극단적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는 잔혹함과 편집증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자신의 직원들을 감시하고 배신을 의심할 때 고문을 명령했다.
녹색운동 시위 이후, 당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정부가 아닌 최고지도자에게 직접 보고하는 병행 정보기관인 이란 혁명수비대 정보기구를 설립하고, 타에브를 그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란 국영 방송은 이중국적자 체포, 반부패 활동, 그리고 해외에서 정권 반대 세력을 식별하려는 노력 등을 타에브의 13년 재임 기간 동안의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타에브의 장기 재임은 이스라엘에 기인한 일련의 보안 침해 사건들로 2022년 끝났다.
그해 6월 당시 외무장관 야이르 라피드가 튀르키예로 출국하기 직전, 튀르키예 정보기관은 이스탄불에서 이란이 이스라엘 외교관과 관광객을 노린 음모를 저지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러한 발표 몇 분 만에 이란은 타에브를 IRGC 정보기구 수장 자리에서 공식 해임했다.
당시 이란 내부에서는 타에브가 이란 내 이스라엘의 작전을 막지 못하고 해외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공개적으로 타에프는 IRGC 사령관 아래에서 주로 상징적 자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외교관들은 그가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계속 안보 문제를 조율했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타에브의 복귀는 "타에브와 모즈타바 사이의 친밀함을 명확히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죽일 때 충성심이 필요한데 현재 이란에는 타에브 외에 그러한 충성심을 제공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모즈타바가 타에브를 바시즈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외교관들과 분석가들은 타에브에게 바시즈를 이란 내에서 자신의 하메네이의 눈과 귀가 되도록 바꾸라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타에프는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충성파 집단에 속하게 됐으며, 전례 없는 시위 운동과 계속되는 전쟁으로 흔들리는 이란을 이끌 핵심 인물로 자리잡게 됐다.
2010년 이란을 떠나 현재 유럽에 망명 중인 이슬람 혁명수비대 출신 모하마드 호세인 토르카만은 "타에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내부 저항을 예방하고 멈추게 하며, 저항이 발생했을 때 이를 진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개월째 이어진 전쟁을 끝내기 위해 군사 공격 위협에서 강도 높은 경제 압박으로 전환하면서, 이 임무는 이란에 특히 중요해졌다. 미국이 더 강력한 제재를 발표하기 전부터 이란 리알화 가치는 이미 장기 하락세를 보였고, 연료 접근성도 점점 더 제한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압박 요인은 이전에도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었다.
타에브의 복귀는 바시즈 민병대의 역할이 확대될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지난 1월 리알화 폭락으로 벌어전 대규모 시위 때 바시즈 민병대가 소요 진압에 나섰는데 당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었다.
바시즈 민병대는 또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암살 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모즈타바의 권위를 굳힐 수 있는 충성스러운 사회적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도 떠맡을 것이다.
테네시 대학교 정치학 교수 사이드 골카르는 "타에브가 이끄는 바시즈는 모즈타바의 사회적 기반이 될 것이며, 사회를 통제할 뿐만 아니라 정치 엘리트도 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에브는 1963년 테헤란에서 태어났으며, 성직자로 훈련받았고 1980년대 초반에 혁명수비대에 합류했다. 8년 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그는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함께 싸웠다.
전쟁 후 그는 정보부에서 방첩 업무를 맡았고, 1990년대 후반에는 모즈타바와 직접 내부 안보 문제를 조율하기도 했다.
그 경험은 그가 2009년 논란이 된 대통령선거 이후 발생한 녹색운동 시위를 진압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바시즈 민병대의 사령관이 되는데 밑거름이 됐다. 이로 인해 타에브는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그의 방법은 이란 내 일부 기득권층에서조차 극단적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는 잔혹함과 편집증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자신의 직원들을 감시하고 배신을 의심할 때 고문을 명령했다.
녹색운동 시위 이후, 당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정부가 아닌 최고지도자에게 직접 보고하는 병행 정보기관인 이란 혁명수비대 정보기구를 설립하고, 타에브를 그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란 국영 방송은 이중국적자 체포, 반부패 활동, 그리고 해외에서 정권 반대 세력을 식별하려는 노력 등을 타에브의 13년 재임 기간 동안의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타에브의 장기 재임은 이스라엘에 기인한 일련의 보안 침해 사건들로 2022년 끝났다.
그해 6월 당시 외무장관 야이르 라피드가 튀르키예로 출국하기 직전, 튀르키예 정보기관은 이스탄불에서 이란이 이스라엘 외교관과 관광객을 노린 음모를 저지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러한 발표 몇 분 만에 이란은 타에브를 IRGC 정보기구 수장 자리에서 공식 해임했다.
당시 이란 내부에서는 타에브가 이란 내 이스라엘의 작전을 막지 못하고 해외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공개적으로 타에프는 IRGC 사령관 아래에서 주로 상징적 자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외교관들은 그가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계속 안보 문제를 조율했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타에브의 복귀는 "타에브와 모즈타바 사이의 친밀함을 명확히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죽일 때 충성심이 필요한데 현재 이란에는 타에브 외에 그러한 충성심을 제공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