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심장에 예술…KAIST미술관, 엄태정 '탈창조'로 개관

기사등록 2026/08/24 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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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 515억원 기부에서 시작된 미술관

원로 조각가, AI 시대 '창조'를 다시 묻다…'탈(脫)창조의 세계로'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엄태정 조각가가 24일 대전 KAIST 미술관 개관전 '탈(脫)창조의 세계로'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엄태정의 60여 년 창작 궤적을 조망한다. 뒤로 보이는 작품은 KAIST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낯선 자의 출현 Ⅰ·Ⅱ·Ⅲ'(2026)이다. 2026.08.24.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엄태정 조각가가 24일 대전 KAIST 미술관 개관전 '탈(脫)창조의 세계로'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엄태정의 60여 년 창작 궤적을 조망한다. 뒤로 보이는 작품은 KAIST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낯선 자의 출현 Ⅰ·Ⅱ·Ⅲ'(2026)이다.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대전=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인공지능(AI)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시대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조'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과학기술의 최전선인 KAIST가 이 질문 한가운데 미술관을 세웠다. 개관을 알리는 첫 원로작가 초대전에는 한국 1세대 추상조각가 엄태정(88)을 불러들였다.

KAIST 미술관에서 26일부터 열리는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다. 1960년대부터 금속이라는 물질과 씨름하며 조각의 본질을 탐구해온 작가의 60여 년 창작 궤적을 한자리에서 펼친다.

단순히 한 대학에 미술관 하나가 생겼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대학이 미술관을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첫 전시에서 '창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원로 조각가 엄태정이 24일 대전 KAIST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엄태정의 60여 년 창작 궤적을 조망한다. 2026.08.24.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원로 조각가 엄태정이 24일 대전 KAIST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엄태정의 60여 년 창작 궤적을 조망한다.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24일 개막에 앞서 KAIST 미술관에서 만난 엄태정은 과학과 예술을 서로 떨어진 세계로 보지 않았다.

그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과 같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과학 역시 결국 인간을 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AI가 인간보다 더 많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예술가의 창조는 무엇이어야 할까. 엄태정은 기술과의 경쟁 대신 인간의 내면을 향했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전시 제목인 '탈창조'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개념은 쉽지 않다. 창조를 벗어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는 작가의 욕망과 자기 자신을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창조에 이르려는 역설에 가깝다.

엄태정은 이를 한마디로 압축했다.

"나를 버리고 탈창조하면 창조가 옵니다."

60여 년 동안 조각해온 원로가 도달한 곳은 더 새롭고 더 강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세계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와 욕망까지 내려놓고 물질과 마주하는 자리다.

KAIST 미술관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KAIST 미술관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엄태정 '낯선자 안에 서라'-빈자리, 구리, 115 × 110 ×203(h)cm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엄태정 '낯선자 안에 서라'-빈자리, 구리, 115 × 110 ×203(h)cm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엄태정에게 조각은 처음부터 물질과 정신의 문제였다. 1960년대 철과 구리, 알루미늄 등 금속의 물성을 탐구했다. 물질을 지배해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대신 물질 자체가 가진 성질과 에너지를 들여다봤다. 이후 작업은 공간과 비움, 정신성의 문제로 확장됐다.

1938년생인 엄태정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추상조각의 흐름을 이끌어왔다. 1967년 제16회 국전 국회의장상, 1968년 제17회 국전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0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이번 전시는 초기 대표작부터 최근작까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KAIST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미술관 앞 야외에 설치한 '낯선 자의 출현 Ⅰ·Ⅱ·Ⅲ'(2026)을 비롯해 1960년대부터 올해까지 제작한 작품 36점을 선보인다.

88세에도 신작을 내놨다. '낯선 자'는 엄태정이 최근 즐겨 사용하는 제목이다. 완성된 작품은 작가 자신에게도 다시 "낯선 것"이 된다고 했다. 익숙한 자신의 세계를 반복하기보다 끊임없이 낯선 것을 만나려는 태도다.

'낯선자의 출현 I II III', 알루미늄, 350(h) × 100(Ø)cm,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낯선자의 출현 I II III', 알루미늄, 350(h) × 100(Ø)cm,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그래서 이번 전시는 한 원로 조각가의 회고전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학은 세계의 원리를 밝히고 기술은 더 빠른 답을 만들어낸다. 반면 예술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붙든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왜 만들어야 하는가. 인간이 아니어도 창조할 수 있는 시대라면 인간의 창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KAIST 미술관이 개관전으로 엄태정을 선택한 의미도 이 지점에서 읽힌다. AI와 첨단과학을 연구하는 학생들 곁에 예술을 놓음으로써 과학의 속도에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더한다.

엄태정도 이날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함께 교육하려는 KAIST의 움직임을 언급했다. "인간과 과학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KAIST 미술관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KAIST 미술관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관 역시 이번 전시를 기술 발전과 인공적 창조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인간 존재와 근원을 되묻는 자리로 설명했다. 작품의 물리적 형태뿐 아니라 그 주변의 여백과 그늘, 금속 표면에 쌓인 시간의 흔적에 주목한다.

KAIST 미술관은 "기술의 발전과 인공적 창조물이 범람하는 현시대에 과학기술의 산실 KAIST에서 열리는 이번 '탈(脫)창조의 세계로'전은 본질로 돌아가 인간 존재와 근원을 되묻는다"며 "끝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술문명의 속도감에 맞서 작가는 비워내고 초월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본질과 재회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이스트 미술관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카이스트 미술관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4일 대전 KAIST 비전관에 공개된 백남준의 'Tribute to Dean Winkler'(1995). TV 모니터와 네온 등을 결합한 높이 201㎝의 혼합매체 작품으로, 고(故)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이 기증했다. 2026.08.24.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4일 대전 KAIST 비전관에 공개된 백남준의 'Tribute to Dean Winkler'(1995). TV 모니터와 네온 등을 결합한 높이 201㎝의 혼합매체 작품으로, 고(故)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이 기증했다.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515억원 기부에서 시작된 미술관

KAIST 미술관은 고(故)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이 KAIST에 기부한 총 515억원과 미술관 건립 기금을 바탕으로 2024년 12월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7개의 전시실을 갖췄다.

정 회장은 건립 기금과 함께 백남준의 'Tribute to Dean Winkler'(1995) 등 미술 작품 41점을 기증했다. 이후 각계의 기증이 이어지며 소장품도 늘었다. 수장고 안의 작품을 관람객이 직접 볼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도 운영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24일 대전 KAIST 미술관에서 정문술 기증작품 특별전 '류경채: 마음의 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2022년 기증한 류경채 작품 41점 중 33점을 선보인다. 2026.08.24.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24일 대전 KAIST 미술관에서 정문술 기증작품 특별전 '류경채: 마음의 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2022년 기증한 류경채 작품 41점 중 33점을 선보인다.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24일 대전 KAIST 미술관의 '보이는 수장고'에 소장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2024년 12월 개관한 KAIST 미술관은 현재 약 45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6.08.24.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24일 대전 KAIST 미술관의 '보이는 수장고'에 소장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2024년 12월 개관한 KAIST 미술관은 현재 약 45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엄태정 개인전과 함께 정문술 회장 기증작품 특별전 '류경채: 마음의 시'도 열리고 있다. 정 회장이 기증한 류경채 작품 41점 가운데 33점을 선보인다.

KAIST 미술관은 앞으로 KAIST 구성원과 지역사회, 국내외 예술가들과 협력해 학생들의 창의력과 인문·사회적 소양을 높이고 과학기술과 예술을 잇는 융합교육의 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일반 관람객의 예술 경험 문턱도 낮춘다는 방침이다.

엄태정 개인전은 2027년 6월30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24일 대전 KAIST 미술관에서 개관전으로 마련한 원로 조각가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엄태정의 60여 년 창작 궤적을 조망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26.08.24.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24일 대전 KAIST 미술관에서 개관전으로 마련한 원로 조각가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엄태정의 60여 년 창작 궤적을 조망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4일 대전 KAIST 캠퍼스 전경. KAIST는 과학기술과 인문·예술을 잇는 융합교육의 하나로 2024년 12월 교내에 KAIST 미술관을 개관했다. 2026.08.24.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4일 대전 KAIST 캠퍼스 전경. KAIST는 과학기술과 인문·예술을 잇는 융합교육의 하나로 2024년 12월 교내에 KAIST 미술관을 개관했다.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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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심장에 예술…KAIST미술관, 엄태정 '탈창조'로 개관

기사등록 2026/08/24 17:11:25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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