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는 쉬고, 선비는 책 읽고, 농민은 잔치했다
![[안동=뉴시스] '쇄미록' (사진=함안조씨 해창 조병국가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2026.08.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05/NISI20260805_0002204680_web.jpg?rnd=20260805092854)
[안동=뉴시스] '쇄미록' (사진=함안조씨 해창 조병국가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2026.08.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우리 조상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5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오늘날처럼 연차를 내고 여행을 떠나는 휴가는 없었다. 하지만 옛사람들도 일과 삶 사이에 쉼표를 두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관료들은 제도화된 휴가를 활용했고, 선비들은 독서와 교유로 더위를 견뎠다. 농민들은 농사일의 큰 고비를 넘긴 뒤 호미를 씻어 걸어두고 마을 잔치를 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조선시대 기록인 '쇄미록(瑣尾錄)'과 근대 유학자 남붕(南鵬·1870~1933)의 '해주일록(海洲日錄)'에는 무더운 계절을 보내는 옛사람들의 다양한 휴식 풍경이 담겨 있다.
전통사회라고 해서 관료들이 쉼 없이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신라시대에도 관인의 휴일과 휴가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됐다.
고려 관료들은 매월 1일·8일·15일·23일 등 7일에 한 번꼴로 쉬는 '칠가(七暇)'를 누렸다. 병을 앓거나 부모를 간병할 때, 멀리 있는 부모를 찾아뵙거나 조상의 묘를 돌볼 때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혼례와 상례, 제사, 질병, 부모 봉양 등을 위한 ‘급가(給暇)’ 제도가 운영됐다. 세종 때에는 젊은 문관들이 업무에서 벗어나 학문에 집중하도록 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도 시행됐다.
오늘날의 연구년이나 특별 휴가와 비슷한 제도로,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인재를 키우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선비들에게 여름은 게으름의 계절이 아니었다. 남붕의 '해주일록'에는 무더위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모습이 기록돼 있다.
1932년 음력 6월 25일, 중복 무렵의 찜통더위 속에서 남붕은 새벽부터 '주자서절요'를 외우고 명나라 사람들의 시를 읽었다. 그는 큰 병이 아니라면 더운 날씨에도 베개에 기대 쉬지 않고 공부에 힘썼다고 적었다.
독서는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여름나기 방식이었다.
5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오늘날처럼 연차를 내고 여행을 떠나는 휴가는 없었다. 하지만 옛사람들도 일과 삶 사이에 쉼표를 두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관료들은 제도화된 휴가를 활용했고, 선비들은 독서와 교유로 더위를 견뎠다. 농민들은 농사일의 큰 고비를 넘긴 뒤 호미를 씻어 걸어두고 마을 잔치를 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조선시대 기록인 '쇄미록(瑣尾錄)'과 근대 유학자 남붕(南鵬·1870~1933)의 '해주일록(海洲日錄)'에는 무더운 계절을 보내는 옛사람들의 다양한 휴식 풍경이 담겨 있다.
전통사회라고 해서 관료들이 쉼 없이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신라시대에도 관인의 휴일과 휴가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됐다.
고려 관료들은 매월 1일·8일·15일·23일 등 7일에 한 번꼴로 쉬는 '칠가(七暇)'를 누렸다. 병을 앓거나 부모를 간병할 때, 멀리 있는 부모를 찾아뵙거나 조상의 묘를 돌볼 때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혼례와 상례, 제사, 질병, 부모 봉양 등을 위한 ‘급가(給暇)’ 제도가 운영됐다. 세종 때에는 젊은 문관들이 업무에서 벗어나 학문에 집중하도록 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도 시행됐다.
오늘날의 연구년이나 특별 휴가와 비슷한 제도로,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인재를 키우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선비들에게 여름은 게으름의 계절이 아니었다. 남붕의 '해주일록'에는 무더위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모습이 기록돼 있다.
1932년 음력 6월 25일, 중복 무렵의 찜통더위 속에서 남붕은 새벽부터 '주자서절요'를 외우고 명나라 사람들의 시를 읽었다. 그는 큰 병이 아니라면 더운 날씨에도 베개에 기대 쉬지 않고 공부에 힘썼다고 적었다.
독서는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여름나기 방식이었다.
![[안동=뉴시스] '해주일록' (사진=영양남씨 영해 광계정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2026.08.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05/NISI20260805_0002204681_web.jpg?rnd=20260805092903)
[안동=뉴시스] '해주일록' (사진=영양남씨 영해 광계정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2026.08.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다고 선비들이 홀로 방 안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남붕은 1922년 음력 6월 23일 마을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해 호미씻이 잔치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받은 일도 기록했다. 학문을 닦던 선비 역시 농촌 공동체의 휴식과 어울림에 함께했다.
농민들에게 가장 큰 휴식은 농사일의 한 고비를 넘긴 뒤 찾아왔다.
'호미씻이'는 마지막 김매기를 마친 뒤 호미를 씻어 걸어두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쉬는 풍습이다.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풋굿'이라고도 불렸다.
가을 수확을 앞두고 농민과 머슴들이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공동체 축제였다.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쇄미록'에는 1600년 음력 8월 6일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 모여 북을 치고 노래와 춤을 즐긴 장면이 등장한다. 오희문은 이를 농사일을 마친 뒤 호미를 씻는 의미에서 벌이는 잔치라고 기록했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고 즐기는 일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고 여겼다.
'쇄미록'에서 '해주일록'에 이르기까지 기록 속 옛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찾았다.
관료에게 쉼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시간이었고, 선비에게는 독서와 교유의 시간이었다. 농민에게는 함께 먹고 즐기는 공동체의 시간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전통사회에서도 쉼은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며 "옛 기록 속 일과 휴식의 문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는 여유와 공동체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농민들에게 가장 큰 휴식은 농사일의 한 고비를 넘긴 뒤 찾아왔다.
'호미씻이'는 마지막 김매기를 마친 뒤 호미를 씻어 걸어두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쉬는 풍습이다.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풋굿'이라고도 불렸다.
가을 수확을 앞두고 농민과 머슴들이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공동체 축제였다.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쇄미록'에는 1600년 음력 8월 6일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 모여 북을 치고 노래와 춤을 즐긴 장면이 등장한다. 오희문은 이를 농사일을 마친 뒤 호미를 씻는 의미에서 벌이는 잔치라고 기록했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고 즐기는 일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고 여겼다.
'쇄미록'에서 '해주일록'에 이르기까지 기록 속 옛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찾았다.
관료에게 쉼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시간이었고, 선비에게는 독서와 교유의 시간이었다. 농민에게는 함께 먹고 즐기는 공동체의 시간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전통사회에서도 쉼은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며 "옛 기록 속 일과 휴식의 문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는 여유와 공동체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