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땅 세우타, 왜 스페인령 됐나…'식량·봉급'이 운명 갈랐다

기사등록 2026/08/03 11:01:52

최종수정 2026/08/03 11: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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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년 포르투갈 첫 해외 거점…1580년 스페인과 한 군주 섬겨

1640년 도시 지도층 스페인 잔류…1668년 조약으로 주권 확정

[세우타=AP/뉴시스] 이주민들이 30일(현지 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세우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로 모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26.07.31.
[세우타=AP/뉴시스] 이주민들이 30일(현지 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세우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로 모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26.07.31.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지난달 30~31일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이주민 약 5만명이 한꺼번에 몰려든 스페인령 세우타는 원래 포르투갈이 1415년 점령한 첫 해외 거점이었다.

포르투갈령이던 세우타는 어떻게 스페인 영토가 됐을까.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이 세우타 자체를 무력으로 빼앗은 것은 아니다. 두 나라가 한 군주를 공유하던 60년이 끝난 1640년 세우타가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을 유지했고 1668년 국제조약이 이를 확정했다.

그 출발점은 1415년이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지브롤터해협 남쪽에 있는 세우타는 유럽과 아프리카가 마주 보는 군사·교역의 요충지였다.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는 그해 8월21일 오늘날 모로코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지배하던 페스의 마린 왕조에서 세우타를 점령했다. ‘항해왕 엔히크’ 왕자도 원정에 참여했으며, 세우타 점령은 포르투갈의 해외 팽창을 알린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세우타=AP/뉴시스] 30일(현지 시간) 북아프리카 세우타에서 스페인 경찰이 모로코에서 수영으로 밀입국한 이주민들을 단속하고 있다. 세우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로 모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26.07.31.
[세우타=AP/뉴시스] 30일(현지 시간) 북아프리카 세우타에서 스페인 경찰이 모로코에서 수영으로 밀입국한 이주민들을 단속하고 있다. 세우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로 모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26.07.31.
세우타의 운명을 바꾼 것은 1578년 시작된 포르투갈의 왕위 계승 위기였다.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앙 1세가 후계자 없이 전사하고 뒤를 이은 엔히크 추기경도 1580년 후손 없이 숨졌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 왕실의 혈통을 근거로 왕위를 요구하고 군사력까지 동원해 왕위 계승전에서 승리했다. 그는 포르투갈 국왕 필리프 1세로 즉위했다.

이에 따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한 군주를 섬기는 ‘이베리아 연합’이 성립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완전히 합병된 것은 아니었다. 두 왕국은 한 군주를 섬기되 법률과 행정기관, 화폐와 해외 영토를 따로 유지했다. 세우타도 형식상 포르투갈령으로 남아 있었다.

[세우타=AP/뉴시스]18일(현지시간) 스페인 세우타 앞바다에서 한 구조대원이 모로코 이주민인 부모와 떨어진 한 아기를 구조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에 이르는 수천 명의 모로코인이 수㎞에 달하는 바다를 헤엄치거나 보트로 건너 스페인령 세우타로 들어오면서 이곳은 인도주의적 위기를 맞고 있다. 2021.05.20.
[세우타=AP/뉴시스]18일(현지시간) 스페인 세우타 앞바다에서 한 구조대원이 모로코 이주민인 부모와 떨어진 한 아기를 구조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에 이르는 수천 명의 모로코인이 수㎞에 달하는 바다를 헤엄치거나 보트로 건너 스페인령 세우타로 들어오면서 이곳은 인도주의적 위기를 맞고 있다. 2021.05.20.
형식적인 분리와 달리 세우타 주민들의 일상은 점차 스페인 쪽으로 기울었다. 두 나라가 한 군주 아래 있던 60년 동안 세우타의 보급과 경제는 이베리아반도 남부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식량과 무기 등 주요 물자는 대부분 지브롤터를 거쳐 안달루시아에서 들어왔고 스페인계 주민도 이전보다 늘었다.

1640년 12월1일 포르투갈 귀족들은 브라간사 공작을 주앙 4세로 추대하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포르투갈 본토와 대부분의 해외 거점이 새 국왕을 받아들였지만 세우타의 도시 당국과 현지 엘리트는 기존 군주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에 대한 충성을 유지했다. 상당수 주민도 이를 지지했다.

[세우타=AP/뉴시스] 이주민들이 30일(현지 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세우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로 모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26.07.31.
[세우타=AP/뉴시스] 이주민들이 30일(현지 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세우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로 모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26.07.31.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도시의 생존과 생계가 있었다. 세우타의 식량과 군수품 대부분이 안달루시아에서 공급됐고 주민 다수가 군인이나 왕실 고용인으로 일하며 왕실 재정에서 급여와 연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식량과 소득, 기존 특권이 어느 왕을 따를지를 가르는 데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보급이 미친 영향은 탕헤르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세우타와 함께 포르투갈의 북아프리카 거점이던 탕헤르는 1640년 이후에도 한동안 펠리페 4세에게 충성했지만 식량과 지원 병력이 제때 도착하지 않자 1643년 포르투갈로 돌아섰다. 스페인의 보급이 끊기지 않은 세우타는 스페인 국왕 편에 남았다. 두 도시의 엇갈린 운명은 보급과 생계가 어느 왕을 따를지를 결정하는 데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준다.

[세우타=AP/뉴시스]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온 이주민들이 2일(현지 시간) 스페인 군인들이 배급하는 물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로코로 송환될 예정이다. 최근 약 6만 명의 이주민이 모로코에서 바다를 통해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로 몰려들면서, 익사·압사 등의 이유로 최소 72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6.08.03.
[세우타=AP/뉴시스]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온 이주민들이 2일(현지 시간) 스페인 군인들이 배급하는 물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로코로 송환될 예정이다. 최근 약 6만 명의 이주민이 모로코에서 바다를 통해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로 몰려들면서, 익사·압사 등의 이유로 최소 72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6.08.03.
세우타의 1640년 선택이 법적으로 확정된 것은 28년 뒤였다. 스페인은 1668년 2월13일 체결된 리스본조약에서 포르투갈의 독립을 인정하고 전쟁 중 차지한 영토를 돌려주기로 했다. 다만 세우타는 반환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했다. 포르투갈도 세우타를 반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동의하면서 스페인의 사실상 지배가 국제조약으로 굳어졌다.

이때 확정된 세우타의 주권은 현재까지 스페인과 모로코가 맞서는 쟁점으로 남아 있다. 세우타는 1995년 스페인의 자치도시가 됐다. 모로코는 1956년 독립 이후 세우타와 멜리야가 자국에 귀속돼야 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스페인은 두 도시가 식민지가 아니라 본토와 다르지 않은 스페인 영토라며 맞서고 있다.

현재의 영유권 논쟁과 별개로 도시에는 포르투갈 지배기의 흔적이 선명하다. 세우타 깃발은 리스본시 깃발과 같은 검은색·흰색 방사형 무늬를 바탕으로 하고 중앙 문장도 포르투갈 왕국의 다섯 방패와 일곱 성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세우타는 스페인 영토지만 도시의 깃발에는 600여 년 전 포르투갈 점령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셈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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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땅 세우타, 왜 스페인령 됐나…'식량·봉급'이 운명 갈랐다

기사등록 2026/08/03 11:01:52 최초수정 2026/08/03 11: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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