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전성시대, 손때 묻은 DVD의 미학[출동!인턴]

기사등록 2026/08/03 06:00:00

최종수정 2026/08/03 06:48:56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서울=뉴시스]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서울 중구 오재미동 내부에 다양한 장르의 DVD가 진열돼 있다. 2026.07.30.
[서울=뉴시스]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서울 중구 오재미동 내부에 다양한 장르의 DVD가 진열돼 있다. 2026.07.30.
[서울=뉴시스]박지혁 기자, 강건우 인턴기자, 이지윤 인턴기자 = 넷플릭스가 알고리즘으로 영화를 골라주고, 멀티플렉스가 흥행작 위주로 상영관을 채우는 시대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는 여전히 관객이 직접 서가를 뒤져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보는 공간이 남아 있다. 지난달 30일 충무로역 지하의 공공 문화 공간 '오!재미동'과 상암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을 찾았다.

"DVD 5100편이 기다리는 충무로 지하"

서울 중구 충무로역 지하 1층. 개찰구를 지나자 'oh!zemidong'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DVD 5100여 편이 먼저 맞았다. 이용객들은 서가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작품을 골랐다. 연인끼리 나란히 DVD 케이스를 뒤적이는 사람, 혼자 조용히 서가를 훑는 사람.

한국 영화 산업의 상징인 충무로 지하에는 20여 년째 관객들이 직접 영화를 고르고 감상하는 공공 영화 문화 공간이 운영되고 있었다.

2004년 문을 연 오!재미동은 원하는 DVD를 직접 골라 28석 소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공공 영화 문화 공간이다. 대관료는 3시간 기준 5만~8만 원. DVD 아카이브 외에도 2700여 권의 영화·예술 서적 열람 공간, 신진 작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영상 편집실과 장비 대여실까지 갖추고 있다. 일평균 방문객은 약 200명. 그중 절반가량이 단골이다.

이 공간은 한때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서울영화센터 개관을 이유로 운영 종료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곳을 거쳐 간 영화인과 시민들이 서명운동과 기자회견, 공개 포럼을 이어가며 반발했고, 결국 예산이 부활해 올해 1월 재개관했다. 22주년이다.

[서울=뉴시스] 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인턴기자가 오재미동 개인 감상석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2026.07.30
[서울=뉴시스] 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인턴기자가 오재미동 개인 감상석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2026.07.30
한 20대 방문객은 "평소 영화를 좋아해 영화의 거리인 충무로를 자주 찾는데, 오!재미동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 종종 방문한다"고 말했다. 이날 그가 서가에서 꺼내 든 건 폴란드 거장 로만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이었다. "예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지만 상영하는 곳이 없어 볼 기회가 없었다"며 "오!재미동에 DVD가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오!재미동 관계자는 "시민들이 오!재미동을 계속 찾는 이유는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경험을 특별한 공간에서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전시, 영화 교육, 창작지원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를 매개로 사람들이 연결되는 공공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자도 이날 서가에서 또 다른 폴란드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롭스키의 '데칼로그'를 꺼냈다. 국내 어떤 OTT에서도 서비스하지 않는 작품이다. DVD를 직접 골라 직원에게 건네고,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 앞에 앉기까지의 과정은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썸네일을 누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오!재미동 관계자는 "영화 애호가들은 DVD 같은 아날로그적인 매체를 통해 좋아하는 영화를 손으로 만진다는 감각을 느끼며 영화와 더 가까워진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없는 영화가 없다"…상암의 4만 편 무료 아카이브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충무로의 아날로그 감성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넓은 열람실에 개인 모니터가 줄지어 놓여 있고, 이용객들은 자료 검색대에서 작품을 검색한 뒤 자리에 앉아 조용히 영화를 보고 있었다.

[서울=뉴시스] 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입구. 2026.07.30
[서울=뉴시스] 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입구. 2026.07.30
1974년 개관한 영상자료원은 50년 넘게 축적된 4만여 편의 영상 자료를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 아카이브다.

최신 흥행작부터 절판된 고전, OTT에서 서비스하지 않는 독립·예술영화까지 갖추고 있다. 78만여 점에 이르는 시나리오·포스터 등 문헌 자료도 비치돼 있어 감상 후 관련 자료를 뒤적이는 재미도 있다. 지하 1층 400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고전·명작 영화를 상시 상영한다. 모든 서비스가 무료다.

영상도서관을 찾은 한 40대 방문객은 "극장은 비싸고, OTT는 중간에 끊어서 보게 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진득하게 감상할 플랫폼이 아니다"라며 "이런 도서관 형태의 관람은 PC방에 온 것 같으면서도 진지하게 영화를 탐구하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DVD 모으는 게 취미였는데, 어느새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것으로만 보게 됐다"며 "보고 싶은 영화가 다양한데 극장에 걸려 있는 건 한정돼 있지 않냐. 여긴 없는 영화가 없다"고 했다. 이어 "구하기 어려운 옛날 영화를 DVD로 보니 어릴 적 비디오 대여점에 가던 때가 떠오른다"고 웃었다.

"관객을 영화의 주체로 만드는 공간"

[서울=뉴시스] 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시민들이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개인 감상석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2026.07.30
[서울=뉴시스] 강건우·이지윤 인턴기자 = 시민들이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개인 감상석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2026.07.30
최재혁 씨네21 영화평론가는 이런 공간의 의미에 대해 "공공 아카이브는 상업적 논리에서 벗어난 큐레이션을 제공하기 때문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비주류 작품과 만날 기회를 만든다"며 "알고리즘이 비슷한 취향의 작품만 추천하는 시대일수록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공공 아카이브의 가치가 커진다"고도 했다.

이어 "유실되거나 잊힌 영상 유산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과정은 영화사의 단절을 잇는 작업"이라며 "이런 공간은 영화 문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관객을 영화의 주체로 만드는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오!재미동과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하나는 DVD 서가 앞에서, 다른 하나는 검색대 앞에서. 하지만 둘 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한 편의 영화를 발견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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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전성시대, 손때 묻은 DVD의 미학[출동!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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