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의 늪' 걷어찬 방탄소년단…K-팝 주체성 되찾은 '독립선언'(종합)

기사등록 2026/07/29 16:56:47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당장의 트로피 대신 한국어 노래할 후배 위해 총대 메

'베스트 아시안 팝 음악 퍼포먼스' 신설, 포용 탈을 쓴 '분리주의' 비판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7.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7.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내년 2월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제69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기로 29일 결정했다. 당장의 수월한 트로피를 얻는 대신, K-팝을 서구 주류 음악 시장의 경계 밖으로 격리하려는 시도에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한 파격적인 행보다.

앞서 그래미 어워즈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달 제69회 시상식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음악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APMP)' 부문을 포함한 5개 신규 카테고리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APMP 부문은 아시아 시장에서 유래했거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을 두고 글로벌 대중음악계 안팎에서는 "한국어로 노래하는 K-팝 아티스트는 본상(General Field)이 아닌 아시아 전용 리그에서만 경쟁하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 세계 실물 음반 시장을 석권하며 주류로 자리 잡은 K-팝에 별도의 울타리를 치는 것은, 포용의 탈을 쓴 '시혜성 트로피'이자 '음악적 인종차별'에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방탄소년단의 미출품 선언은 중요한 산업적·문화적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탄소년단은 올해 발매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에 수록된 다수의 영어 트랙을 바탕으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등 본상 경쟁에 직행할 수 있는 입지에 있다. 당장의 성과만을 고려했다면 모든 부문에 출품하는 것이 유리했으나, 자신들이 지닌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국어로 노래할 후배 아티스트들이 '아시아 리그'로 격리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총대를 멘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이 같은 결단은 그간 이들이 단계적으로 일궈온 그래미 도전사(史)와도 맥을 같이한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019년 '최우수 R&B 앨범' 부문 시상자로 처음 그래미 레드카펫을 밟으며 문을 두드렸다. 이어 2020년에는 릴 나스 엑스와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 합동 무대로 한국 가수 최초 그래미 퍼포머라는 이정표를 세웠고, 2021년에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한국 대중음악 가수 최초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 지명과 단독 공연을 동시에 이뤄냈다.

이후 2022년 '버터(Butter)' 단독 무대에 이어, 2023년에는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와 '옛 투 컴(Yet To Come)' 그리고 콜드플레이 앨범 참여작을 통해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총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K-팝의 역사적 이정표를 연이어 써 내려갔다.

이처럼 시상자에서 퍼포머, 후보 지명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으며 독보적인 커리어를 구축했음에도 '21세기 비틀스'로 불릴 정도의 전 세계적 파급력에 비해 3년 연속 수상이 불발되자 그래미의 보수성과 시대역행적 '유리천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2026.07.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2026.07.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대상격인 '올해의 아티스트'를 두 차례(2021, 2026년)나 거머쥐고, 빌보드 뮤직 어워즈(BBMA) 트로피를 12개나 수집한 성과와 비교하면 그래미의 장벽은 유독 견고했다.

그간 K-팝 시장에서는 방탄소년단이 개척한 이른바 '그래미 하이웨이'를 통해 외연을 넓혀왔다.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상을 수상하고, 로제와 캣츠아이가 본상 후보에 오르는 등 비서구권 음악의 수용 가능성이 확장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APMP 부문의 신설은 이러한 확장 흐름에 오히려 제동을 거는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그래미는 과거 R&B, 라틴, 아프로비츠 카테고리를 신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미 음악 시장 위협 요소가 되는 장르와 권역을 별도로 분류해 기존 주류 시장을 수성해왔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 K-팝 아티스트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정작 본상 진입의 장벽은 높이는 모순적 구조를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음악 평단에서는 그래미가 언급한 '다양성 확보'라는 신설 취지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주요 본상 후보에 지속적으로 포함되고 실제로 수상하는 성과로 이어짐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래미의 시혜성 상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언어로 노래하든 세계 팝 시장의 대등한 주체로 서야 한다는 K-팝 리더 방탄소년단의 묵직한 메시지를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도 모아지고 있다.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방탄소년단의 이번 결정에 대해 소셜 미디어에 공감을 표하며 '아리랑>그래미'라고 쓰기도 했다.

앞서 저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1993)에서 로큰롤, 힙합 등에 대해 방어적이면서 기존의 음악을 보호하는 시상 관행을 보여온 그래미에 대해 비판한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의 이번 그래미 미출품 결정을 두고 "서구 중심적 권위의 사슬을 끊어낸 음악적 독립 선언이자, 주체성 회복"이라고 평가했다.

'그래미 어워즈' 중계 해설도 꾸준히 맡아온 임진모 평론가는 "그래미가 신설한 'APMP' 부문은 다양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본질적으로는 주류 음악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K-팝을 변방의 카테고리에 격리하려는 방어적이고 조금은 인종차별적인 시도"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7.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7.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방탄소년단의 이번 결정은 그래서 시청률과 화제성만 취하고 정당한 평가는 유보하는 그래미의 보수성 앞에서 타협 대신 택한 저항이라는 게 임진모 평론가의 해석이다. 그는 "이번 미출품 결정은 더 이상 미국적 기준에 K-팝의 정체성을 억지로 맞추지 않겠다는, 그래미 권위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선언'"이라고 봤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겸 글로벌 K-센터장은 우선 음악적, 상업적, 문화적으로 여러 성취를 이루어 온 방탄소년단에게 그래미는 마치 '이들이 달성해야 할 최종 목표'처럼 여겨진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짚었다. 특히 "그래미 때만 되면 미디어와 팬들 사이에서 이들의 수상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 나왔고, 그래미를 수상해야 이들이 '진정으로' 미국에서 인정 받는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래미에서 'APMP'상을 따로 만들었다는 것은 K-팝을 포함한 아시아 음악(비서양/비영어권 음악)은 그래미 '본무대'에서 분리해서 다루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었고, 이는 이미 한국과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뮤지션 자리에 있는 방탄소년단에겐 굳이 그래미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상을 받든 안 받은 미디어와 팬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아예 스스로 수상을 거부함으로서 다양한 논란에서 빠져 나옴과 동시에 그래미가 비서양/비영어권 음악을 일종의 분리주의(segregation)로 다루는 것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이어 "방탄소년단의 수상 거부 의사 표명을 계기로 그래미상은 물론 빌보드 차트 및 다른 미국·서양 중심의 음악상과 차트에서 성과를 달성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옅어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와 함께 방탄소년단의 미출품 선언이 K-팝, 아시안 팝 생태계 전반에 미칠 파급력을 두고는 보다 다층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방탄소년단처럼 본상 후보에 근접한 최정상급 아티스트와 달리, 팝 시장과 그래미 진입 자체가 힘든 대다수의 아시아 아티스트들에게 이번 신설 카테고리는 수상을 향한 새로운 희망일 수 있다"고 톺아봤다. 해당 부문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임 평론가는 그러면서 방탄소년단의 이번 결단이 만들어낼 것으로 보이는 파급력을 특기했다. 그는 "과거 더 위켄드의 그래미 보이콧 선언이 현지 음악계의 여론을 일으켰듯, 아시아의 단일 아티스트가 거대 시상식에 반기를 들고 변화를 요구하는 공론의 장을 열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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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6/07/29 16:56:47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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