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어 좋다"…침묵으로 산을 그린 화가, 유영국 [박현주 아트에세이 ㉙]

기사등록 2026/08/01 00:01:00

최종수정 2026/08/01 00: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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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작품’. 1991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유영국 ‘작품’. 1991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왜 추상을 합니까?"

유영국은 말했다.

"말이 없어 좋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무언가를 읽으려 한다.

무엇을 그렸는지,

무슨 뜻인지,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림을

말로 바꾸려 한다.

유영국은

말 대신 색을 놓았다.

선을 놓았다.

삼각형 하나를 놓았다.

산이었다.

그러나

그 산에는

나무도,

바위도,

계곡도 없다.

산을 닮게 그린 것이 아니라,

산이 남긴 감각을 그렸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유영국의 최대 규모 개인전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유영국의 최대 규모 개인전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추상은

세상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덜어내고,

끝내 남는 것을

붙잡는 일이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붓 대신

그물을 잡았고,

배를 몰았고,

양조장을 운영했다.

시대는

그를 늦게 알아봤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심장에

박동기를 단 뒤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제 그만 쉬라는 말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환쟁이가

그림 그리다 죽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

1994년.

일흔여덟의 화가는

가장 큰 산을 그렸다.

하나는 붉고,

하나는 푸르다.

몸은 약해졌지만

색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유영국은 말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오른쪽 작품이 BTS RM의 소장품이다. 2026.05.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오른쪽 작품이 BTS RM의 소장품이다. 2026.05.18. [email protected]


좋은 그림은

설명이 많은 그림이 아니다.

오래 침묵하는 그림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오래 남는다.

유영국의 그림이 그렇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유영국을 보고 있으면,


그 말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우리를 오래 붙잡는 것은


'미술'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기 때문이다.


좋은 그림은


그 삶이 남긴 침묵이다.

그 침묵은

세월을 건너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만히 닿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도록


그의 산 앞에서


머문다.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작가의 최대 크기 작품인 1994년작 ‘산-Blue’(왼쪽)와 ‘산-Red’가 나란히 걸려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작가의 최대 크기 작품인 1994년작 ‘산-Blue’(왼쪽)와 ‘산-Red’가 나란히 걸려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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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어 좋다"…침묵으로 산을 그린 화가, 유영국 [박현주 아트에세이 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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