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잦은 발작
뇌사로 폐·간·신장·안구 기증
![[서울=뉴시스] 기증자 윤명애씨.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https://img1.newsis.com/2026/07/23/NISI20260723_0002193526_web.jpg?rnd=20260723094520)
[서울=뉴시스] 기증자 윤명애씨.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가족과 식사를 하다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상으로 병원에 옮겨진 50대 여성이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1일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서 윤명애(54)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의 환자에게 나누고 떠났다고 23일 밝혔다.
윤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발작 증상을 보였고, 이후 뇌전증 진단을 받아 오랜 기간 약을 먹으며 치료를 이어왔다.
그러던 중 지난달 27일 가족과 식사하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고 치료에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에 이르렀다. 윤씨는 가족의 동의로 폐와 간, 신장(양측), 안구(양측)를 6명에게 나눴으며 인체조직 중 피부도 함께 기증했다.
윤씨의 가족은 고인이 평소 자신처럼 몸이 아픈 이들을 각별히 걱정했던 만큼,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고인의 맏 언니는 "동생이 누군가의 몸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윤씨는 잦은 발작과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혼자 외출하거나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윤씨는 언니의 권유로 문화센터에서 퀼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퀼트는 고인이 꾸준히 이어온 유일한 취미였다.
오랜 시간 질환을 앓아온 윤씨는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주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여러 차례 입원했을 때는 직장 생활로 곁을 지키기 어려웠던 형제들을 대신해 간병을 도맡았다. 주변에서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리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곤 했다.
윤씨의 맏언니는 동생이 또래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더 밖으로 나가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를 많이 했다. 그러다 자주 부딪치곤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먼저 떠난 아버지 곁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며 지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윤씨의 가족은 뇌전증을 앓았던 고인도 의료진의 판단을 거쳐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바랐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생명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고, 고인도 따뜻한 사람으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자신도 오랜 시간 치료를 이어왔음에도 주변의 아픔을 살폈던 윤명애 님의 따뜻한 삶이 생명나눔으로 이어졌다"며 "힘든 이별의 순간에도 숭고한 결정을 내려준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1일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서 윤명애(54)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의 환자에게 나누고 떠났다고 23일 밝혔다.
윤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발작 증상을 보였고, 이후 뇌전증 진단을 받아 오랜 기간 약을 먹으며 치료를 이어왔다.
그러던 중 지난달 27일 가족과 식사하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고 치료에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에 이르렀다. 윤씨는 가족의 동의로 폐와 간, 신장(양측), 안구(양측)를 6명에게 나눴으며 인체조직 중 피부도 함께 기증했다.
윤씨의 가족은 고인이 평소 자신처럼 몸이 아픈 이들을 각별히 걱정했던 만큼,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고인의 맏 언니는 "동생이 누군가의 몸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윤씨는 잦은 발작과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혼자 외출하거나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윤씨는 언니의 권유로 문화센터에서 퀼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퀼트는 고인이 꾸준히 이어온 유일한 취미였다.
오랜 시간 질환을 앓아온 윤씨는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주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여러 차례 입원했을 때는 직장 생활로 곁을 지키기 어려웠던 형제들을 대신해 간병을 도맡았다. 주변에서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리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곤 했다.
윤씨의 맏언니는 동생이 또래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더 밖으로 나가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를 많이 했다. 그러다 자주 부딪치곤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먼저 떠난 아버지 곁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며 지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윤씨의 가족은 뇌전증을 앓았던 고인도 의료진의 판단을 거쳐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바랐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생명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고, 고인도 따뜻한 사람으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자신도 오랜 시간 치료를 이어왔음에도 주변의 아픔을 살폈던 윤명애 님의 따뜻한 삶이 생명나눔으로 이어졌다"며 "힘든 이별의 순간에도 숭고한 결정을 내려준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