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화랑 초대전…26일까지 개최
'굿 인 럭(Good in luck) 꽈리' 연작 공개

이애리, Good luck in 꽈리26-27, 73×73cm, 장지에 주묵, 과슈,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세포처럼 증식하고, 은하처럼 연결된다.
이애리의 화면 속 꽈리는 더 이상 가을의 열매가 아니다. 수천 개의 미세한 선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하나의 생명망을 이룬다. 고립과 단절이 일상이 된 시대, 작가는 가장 작은 존재인 꽈리를 통해 연결과 공존의 감각을 되살린다.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은 초대전으로 마련한 이애리 개인전 '중중무진'을 1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랫동안 이어온 '굿 인 럭(Good in luck) 꽈리' 연작의 최근 작업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자리다.
과거 화면 속에서 홀로 존재하던 꽈리는 이제 서로를 끌어안고 증식한다. 화면을 채운 둥근 형상들은 세포처럼 분열하고 은하처럼 팽창하며 생명의 질서를 만든다. 식물을 그린 회화를 넘어 모든 존재가 보이지 않는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살아가는 세계를 시각화한 풍경에 가깝다.

이애리 개인전 '중중무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장지 위에 먹과 주묵, 잉크를 사용해 한 올 한 올 선을 쌓아 올리는 작업은 수행에 가깝다. 가까이에서는 숨을 고르며 이어진 선들의 집요한 노동이 보이고, 한 걸음 물러서면 디지털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화면이 펼쳐진다. 가장 오래된 손의 노동이 가장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전시 제목인 '중중무진(重重無盡)'은 불교 화엄사상에서 모든 존재가 서로를 비추고 연결되며 끝없이 이어지는 세계를 뜻한다. 하나의 현상 안에 또 다른 현상이 담기고, 각각의 존재가 독립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세계관이다. 화면 속 꽈리들이 개별 존재를 넘어 하나의 생명망으로 확장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애리는 "꽈리가 자라며 색이 변하는 모습이 기쁨과 슬픔이 이어지는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며 "작품이 삭막한 현대 사회를 치유하는 따뜻한 온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품에서 꽈리는 더 이상 행운을 상징하는 식물에 머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관계를 잇는 생명의 은유이자, 고립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연대의 언어가 된다. 한 올의 선이 하나의 생명을 만들듯 우리의 삶 또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전시는 26일까지. 관람은 무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