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건 국가의 의무이자 약속
수습 유해 1만 1천여 구 중 신원 확인 276구…“DNA 시료 채취 절실”
[파주=뉴시스]우은식 기자, 김드보라 인턴기자 = ·
![[파주=뉴시스] 김드보라 인턴기자 = 29일 오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367고지에서 육군 제9보병사단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이 발굴 잡업을 하고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6/30/NISI20260630_0002174026_web.gif?rnd=20260630151944)
[파주=뉴시스] 김드보라 인턴기자 = 29일 오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367고지에서 육군 제9보병사단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이 발굴 잡업을 하고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달 29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367고지. 낮 최고 기온 31도로 예보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날 100여명의 군장병들이 오전부터 삽을 들고 줄지어 서있다.
곧이어 장병들의 땅 파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이들이 입고 있는 작업복에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들은 6·25 전사자 유해 발굴작업을 위해 모인 육군 제 9보병사단 소속 장병들이다.
367고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22일 '중공군 5차 공세 델타 방어선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델타방어선 전투'는 국군 제1사단이 서울 서북방 델타 방어선을 점령해 중공군의 5차 공세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전투에서 적군 8117명을 사살하고, 257명의 포로를 잡는 전과를 올렸지만, 우리 군도 154명이 전사하고 794명이 부상·실종됐다.
발굴 시작 전 장병들은 태극기와 호국영웅기를 향해 묵념했다. 반드시 유해를 찾아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의식 행사인 것이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구호와 함께 기초 발굴이 시작됐다. 100명 정도 되는 군장병들로 구성된 기초 발굴부대가 각기 다른 지점에서 전쟁이 발생했던 고지를 향해 일렬횡대로 흙을 파내며 올라갔다.
땅을 파는 깊이는 70∼80㎝라고 한다. 6·25전쟁 당시 지표면을 나타내는 풍화암반층을 계산해보면 대략 이 정도의 깊이이기 때문이다.
이날 작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동안 진행됐으나 유해 발굴에는 실패했다. 이처럼 유해발굴사업은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지만, 성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지난 15일 유해가 발굴돼 인근에서는 추가 정밀 발굴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실제 유해를 볼 수 있는 정밀발굴현장으로 향했다.
예닐곱명의 발굴단들이 이번에는 삽 대신 붓과 대칼을 들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들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유해발굴기록병이다.
출입통제 표식이 있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통제라인 안에는 전투화로 예측되는 물건과 유해가 있었다.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있던 유해는 나뭇가지와 다를게 없어 보였다. 나뭇가지 같은 백골이 흙에서 부식돼 소실되기 전에 하루 빨리 한 점이라도 더 찾아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해발굴감식단 박은석 상사는 "올해 3개 부대의 발굴 작업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 점의 유해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유해 발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행히 367고지에선 지난 15일 기초발굴병이 6·25전쟁 당시 착용한 것으로 예측되는 전투화를 발견한 것이었다.
국유단 박은석 상사의 지시 아래 그 주위를 세세히 발굴했고, 그 결과 종아리와 정강이뼈, 오른쪽 어깨뼈 2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주=뉴시스] 김드보라 인턴기자 = 지난 15일, 367고지에서 유해를 발견한 유해발굴 감식단 최지환 상병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6/30/NISI20260630_0002174034_web.jpg?rnd=20260630152230)
[파주=뉴시스] 김드보라 인턴기자 = 지난 15일, 367고지에서 유해를 발견한 유해발굴 감식단 최지환 상병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유해를 발견했던 최지환 상병은 "4번의 유해발굴작업에 참여했지만, 유해를 발견한 건 처음"이라며 "굉장히 뿌듯했다. 남은 복무기간동안 아직 수습되지 못한 6·25 전사자를 한 분이라도 더 찾고 싶다"고 말했다.
유해를 찾은 곳에서는 국유단 장병들이 호미와 붓을 사용해 정밀 발굴을 하고 있었다.
매장 자세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발굴해야 피아식별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후 한 점의 유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유해 발견 일대의 흙을 모두 체에 거르는 스크리닝 작업을 해야 한다. 모든 작업엔 전사자를 향한 예우가 담겨있다.
유해발굴단은 2007년도에 창설됐다.
유해발굴단 정도준 공보장교는 "유해발굴은 우리나라 전사자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는 국가 사업"이라며 "전사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건 국가의 의무이자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반드시 유해를 찾아 가족에게 돌려주겠다라는 의지를 다지면서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며 "작업에 참여하면서 '내가 죽어도 국가가 책임져 주겠구나'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고 부연했다.
발굴된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6·25전쟁 당시 실종된 전사자 13만여 중 지금까지 수습된 유해는 1만 1000여 구에 이른다. 10%도 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겨우 276구밖에 되지 않는다.
유해 발굴 기준으로 봐도 신원확인 비율은 3%가 채 되지 않는 수치다.
박 상사는 유해발굴사업을 야구에 빗댔다. "야구는 홈에 들어와야 완성되는 스포츠"라며 "유해발굴 사업도 마찬가지다", "발굴한 유해를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야 비로소 완성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전사자 가족들의 DNA 시료 채취가 중요하다"라며 "시료 채취는 전국 어디서나 가능하며 전사자의 8촌까지 신청할 수 있다"고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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