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핵통제위 협상, "도둑"·"간첩" 설전…김일성 사진 찢기도

기사등록 2026/06/30 10:00:00

최종수정 2026/06/30 11:06:23

통일부, 30일 1990년대 초 남북 핵협상 문서 공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출범 논의했지만 최종 결렬

북 대표, 남측이 건넨 사진 김일성인 줄 모르고 찢어

1992년 4월 1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남북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2026.06.30. *재판매 및 DB 금지
1992년 4월 1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남북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2026.06.30.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남빛나라 기자 = 남북이 1990년대 초 '핵통제공동위원회' 출범을 논의할 당시 '간첩', '도둑' 등 거친 언사가 오가며 회담 분위기가 상당히 격앙됐던 사실이 확인됐다.

통일부는 30일 '남북대화 사료집' 가운데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32차례의 핵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공개했다.

당시 남북은 1991년 12월 채택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근거해 상호 핵사찰·비핵화 검증 기구인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출범을 논의했다.

노태우 정부가 1992년 1월 한미 연례 연합군사훈련인 '팀스피릿' 훈련 잠정 중단을 결정하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사찰을 수용하기로 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북한의 사찰 비협조가 이어지자 정부는 1993년에는 팀스피릿을 재개하기로 했고, 북한은 팀스피릿 중지와 핵통제위 문제를 연계하며 크게 반발했다.

남한은 방어적 성격의 훈련인 팀스피릿 시행 여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혹 해소에 달렸다면서, 정기사찰뿐 아니라 특정 시기 사찰이 가능한 '특별사찰'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북한 군사기지를 포함한 '성역 없는 상호사찰'도 남한의 요구 사항 중 하나였다.

1992년 10월 2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9차 회의'에서 공로명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는 IAEA의 사찰로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됐다는 북측 주장에 대해 "언제 도둑이 나 '도둑이요' 하고 소리 지르고 거리를 다니느냐"고 했다. 당시 북한이 받은 IAEA 사찰은 정기사찰이 아닌 임시사찰에 그쳤다.

북측의 최우진 대표는 "핵대국(미국)을 반대하는 생각을 해야지 도대체 외세와 야합해서 동족을 반대하기 위한 공동대응을 하겠다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일주일 만에 열린 핵통제위 7차 위원접촉에서 북한의 박광원 위원(조선인민군 소장)이 "남측이 1950년대에 실현하지 못한 북침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금 감행하는 핵전쟁 연습"이라고 말하자 남한의 정태익 위원(외무부 미주국장)은 "말도 되지 않은 소리 집어치워라"고 받아쳤다.

6·25전쟁 책임 소재를 두고 양측이 논쟁하며 긴장감이 높아졌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스탈린으로부터 남침 계획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소련 외무부 비밀문서들이 구소련 붕괴 후 공개된 바 있다. 남측이 이 사실을 언급하자 박광원 위원은 "귀측(남측)한테 달러에 매수돼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따위 소리 하지도 말라"고 우겼다.

핵통제공동위 제12차 회의(1992년 12월 10일)에서 북한이 남한의 핵개발 추진설을 제기하자 공로명 대표는 "황당무계한 얘기를 해서 어안이 벙벙한데, 가만히 그 저의가 뭐겠느냐 해서 봤더니 이 역시 도둑이 자기 발이 저려서 그런 것"이라고 일축했다.

나흘 뒤 열린 8차 위원접촉에서도 팀스피릿을 둘러싼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감정적인 말싸움이 이어지기도 했다.

북측의 '당신' 호칭 지적에 남측이 '우리가 친한 사이니 그렇다'는 취지로 응수하자, 박광원 위원은 "내일 팀스피릿 안 하겠다고 내일 대답하지? 친하니까"라고 비꼬기도 했다.

북측은 남측이 주한미군 지상군인 미8군 지시를 받아 핵탄두를 은폐할 시설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핵통제위 관련 협의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억지 주장도 펼쳤다.

이에 정태익 위원은 "몰래 간첩으로 와서 본 모양이지? 엉뚱한 소리 할 거냐?"며 짜증을 냈다.

북측 최우진 대표는 "미국과 손을 잡을 때 결단을 내렸다면 다시 (팀스피릿을) 취소하는 결단을 내려야 되지 않는가"라고 요구했다.

공로명 대표는 "팀스피릿 1993년 계획을 중지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귀측(북측)에서는 남북 핵상호 사찰에 있어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각지대가 없는, 성역이 없는 사찰'을 받을 용의가 없는가"라며 "또 이 사찰이 효과적이고 신뢰될 수 있는 사찰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사찰 제도를 받을 용의가 있는가"라고 재차 물었다.

팀스피릿 중지가 먼저라는 북한과 핵통제위 운영 방향이 합의되면 핵위험 해소에 따라 자연스럽게 팀스피릿도 중지된다는 남측의 주장이 공회전했다.

핵통제위 제13차 회의(1992년 12월 17일)에서 공로명 대표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는 사진을 미리 준비해 북측에 건네기도 했다. 북한이 회의 때마다 남한이 '외세에 의존한다'고 비난하자, 북한이야말로 소련과 공모해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였다.

이에 최우진 대표가 사진을 받자마자 김일성의 얼굴이 담겼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내 쨉니다(찢는다)"라고 흥분하며 일대 소란이 일었다.

북측 김수길 위원(외교부 연구원)은 "그쪽에서 도발하려고 계획했다"고 항의했고, 공로명 대표는 "그러니까 이 다음부터는 그런 이야기(남한의 외세 의존)는 하지 말라 이 이야기다"라고 받아쳤다.

사진을 두고 논쟁이 일며 속기록에 '쌍방 소란'이라는 표현이 12차례나 등장할 정도로 대립이 격화했다.

최우진 대표는 "우리의 반핵 평화정책에 대해서 똑똑이 알아야 한다"며 "우리 영생불멸 주체사상이 바로 반핵 평화정책에 구현돼 있다"고 주장했다.

사료를 검토한 정승훈 남북회담문서공개 예비심사위원장은 "당시 남한은 팀스피릿 훈련 재개 문제를 마지막 카드로 썼지만 북한이 호응 대신 반발했다"며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사찰 제도로 끌어올 레버리지가 부족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핵통제위는 결국 최종 결렬됐으며 팀스피릿도 1993년 3월 재개됐다. 이에 북한은 NPT 탈퇴 및 IAEA 안전조치협정 파기를 선언하며 '1차 북핵위기'를 불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남북핵통제위 협상, "도둑"·"간첩" 설전…김일성 사진 찢기도

기사등록 2026/06/30 10:00:00 최초수정 2026/06/30 11:06:23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