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일, 벗어던진 계절 여름…온기를 토하다

기사등록 2026/06/30 16:00:20

'2026 정준일 소극장 콘서트 - 피아노 여름 목소리'

7월31일부터 8월16일까지 이화여대 ECC 영산극장

고개 숙인 고전적 음악가가 건네는 맑은 숨소리

"업과 실제 삶 분리…일상 헐렁하게 살아"

"멋있게 보이는 것에 관심 없어…관객이 주인공이었으면"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여름은 방어막이 없는 계절이다. 찬란한 빛 아래 만물의 윤곽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고, 끓어오르는 열기 속에서 생동과 소멸이 한데 뒤엉킨다. 숨을 곳 없는 이 정직하고 맹렬한 계절 한가운데로, 밴드 '메이트' 출신 싱어송라이터 정준일이 걸어 들어왔다. 오는 7월31일부터 8월16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ECC 영산극장에서 열리는 '2026 정준일 소극장 콘서트 - 피아노 여름 목소리'는 그가 여름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가장 고요하고도 뜨거운 고해성사다.

최근 가까운 이들의 부재를 연이어 겪으며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유일한 경계가 '온기'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피가 돌고 맥박이 뛰며 서로의 살갗을 통해 전해지는 붉은 온도. 어쩌면 예술이 성취할 수 있는 궁극의 윤리란, 타인의 슬픔을 함부로 예단하거나 구원하려 드는 대신 그저 나와 당신에게 여전히 더운 피가 흐르고 있음을 뼈저리게 감각하도록 돕는 일일지도 모른다.

정준일의 노래가 유독 듣는 이의 마음을 심하게 앓게 만드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슬픔을 안전한 거리에 두고 관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기교나 장식이라는 얄팍한 타협 없이, 감정의 가장 정확한 '근사치'를 향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발가벗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미학적 성취이자, 자신의 온기를 남김없이 쏟아내겠다는 치열한 책임감의 발로다.

거창한 예술관을 설파하는 대신 일상의 헐렁함을 겸허히 긍정하는 사람. 화려한 조명 아래서 자신이 빛나기보다, 눅눅하거나 때론 청아한 피아노 선율 뒤로 숨어 관객 스스로가 각자의 서사를 길어 올리길 바라는 사람. 인공지능(AI)이 결점 없는 완벽한 음표를 찍어내는 서늘한 시대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가장 뜨거운 숨소리와 눈물겨운 인간의 온기를 증명해 내는 이 고전적인 음악가와 최근 서울 약수역 인근에서 마주 앉았다. 포스터의 제목마저 비워둔 채 관객을 위한 온전한 여백을 내어주는 정준일, 그가 들려준 깊고도 뭉클한 여름의 안부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같은 TV 경연 프로그램 출연처럼, 이전과 달리 최근 용감하고 과감한 행보가 돋보입니다. 이전 준일 씨를 생각하면 제가 볼 때 큰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변화들이 좀 어떻게 찾아왔는지가 조금 제일 먼저 궁금했습니다.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큰 계기가 됐어요.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용기가 안 나서 못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언젠가 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더 안 했던 것도 있었어요. 그런데 가까운 사람들의 부재를 겪으면서 '시간이 마냥 영원히 나한테 허락되지 않는구나. 내가 뭔가 할 수 있을 때 그냥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는 앨범을 냈을 때 대충 기대되는 결괏값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산업 자체가 너무 바뀌어서 이제는 기댓값이라는 게 아예 없는 시장이 돼버린 것 같아요. 누가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전혀 그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대니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걸 그냥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영원히 날 기다려주지 않고, 제 목소리가 아직 건강하고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주실 때 그냥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송, 경연에 대해 전향적으로 하게 된 동기가 됐습니다."

-제 편견으로는 준일 씨는 에너지를 수렴하면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 같은데, 최근 에너지를 발산하는 과정을 겪으면 더 힘들지 않으신가요?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 책임감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어떤 방송에 출연할 땐 제가 최소한 1인분은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매체든 어떤 콘셉트의 방송이든 항상 1인분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나를 쓰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 몫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다가 노래를 하는 거고요. 그렇게 하나하나 쌓여 나가다 보니까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에서 성과를 거뒀죠. 그렇다고 방송에 특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나가지 않아요. 콘서트 할 때와 같은 마음이에요."

-준일 씨 음악을 특히 현장에서 들으면 몸이 아프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이게 같이 앓는 느낌인데, 준일 씨는 듣는 사람이 부르는 사람과 똑같은 마음으로 노래에 임하게 만듭니다.

"그냥 전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노래하죠. 제가 기술적으로 노래를 배운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밖에 무대를 못 하는데, 이 나이에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생소하지 않을까 해요. 그걸 좋아해주시는 것 같고요. 제가 지난 10년 동안 사실 대중매체에 노출이 크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어떤 셀링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소극장 콘서트는 참 준일 씨 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본인의 좌표랑 본인의 위치를 계속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거창한 예술관이나 철학은 없지만 이런 AI의 시대 안에서 인간과 기계가 구분될 수 있는 건 우리에게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거잖아요.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인간이 만든 음악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어떤 거대하고 거창한 무대가 아니라, 숨소리까지 다 들릴 수 있는 작은 무대라고 생각해요. 제가 음악을 처음 좋아하게 된 방식을 떠올려요. 김광석 선배님이 학전에서 하셨던 공연이 시작이었어요. 그걸 모티브로 보고 자료를 많이 찾아봤어요. 김현식 선배님 자료들, 다큐도 많이 찾아보면서 그분들이 왜 작은 무대에 많이 섰었는지 찾아봤죠. 이유가 궁금했거든요. 그분들이 쫓았던 건 연예인의 삶이 아닌 음악인으로서 삶이었어요. 무대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자주 많은 사람에게 닿는 게 최대 목표였지요. 그 마인드셋을 제가 배웠습니다. 크게 하든 작게 하든 제가 하는 공연의 중심에는 음악이 있어요. 가수가 안 보여도 괜찮다라는 게 저의 기조고 가수가 빛나지 않아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얻어가는 게 저한테 제일 중요합니다. 그걸 잘 매개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준일 씨는 고전적인 매력이 있어요.

"아무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더라고요. 올드스쿨이죠."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올드스쿨에 향수가 있는 저 같은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젊은 사람들도 이런 점이 더 신선하게 느껴져 매력적으로 보는 거 같아요.

"전 범대중적인 가수는 아니죠. 대중적이려면, 음악적인 부분도 그렇고요. 그러려면 좀 제 스스로 음악적인 부분도 그렇고 저라는 사람도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제가 음악을 다루는 방식이 진지하고 무겁기 때문에 '많은 대중에게 보편적인 사랑을 받을 만한 그릇의 사람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항상 자성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동률이 형 콘서트를 보고 놀랐던 게, 올드스쿨 음악을 하는데 많은 분들이 사랑을 해주신다는 거예요. 10만 명에 가까운 분들이 공연을 본다는 게 저한테는 너무 생경한 경험이에요. 동률이 형도 그렇고, 소라 누나 공연도 매진되는 걸 보면서 그분들의 음악에서도 배우지만 그분들의 행보에서 더 많은 걸 배웁니다."

-포스터에 공연명 지우셨던 것도 준일 씨 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포스터를 자세히 보지 않는 분들에겐 큰 의미로 다가가지 않을 수도 있을 수도 있지만, 준일 씨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런 세밀한 걸 자세히 보는 분들일 테니까요.

"음악을 할 때 저는 개인적으로는 좀 많이 숨기는 편이긴 하거든요. 공연 때도 기본적으로 가수에게 조명이 너무 많이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항상 열어두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화로 따지면 열린 결말 같은 건데 그게 무책임하면 폼 잡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맥락이 있는 상황에서 결말을 열어두는 건 멋있다고 생각을 하는 쪽이에요. 관객이나 청자들이 느낄 수 있고 스스로의 어떤 기억을 환기할 수 있도록 여지를 항상 열어둬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새로운 의미가 덧씌워지면서 좋은 음악으로 기억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건 정치도 아니고 어떤 교훈을 주는 일도 아니에요. 음악은 특히나 상상력이 개입할 측면이 많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너무 쉽지 않게 약간의 문을 열어두면 관객이나 청자들이 그 문을 열고 들어와서 각자의 자기 생각들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렇게 해주는 게 좋은 예술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포스터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준일 씨는 객석을 보고 공연을 하시는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객석의 풍경들로 인식되는 장면이 있나요?

"사실 관객들의 표정을 안 보고 공연을 하기 때문에 관객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느껴지는 것들은 확실히 있어요. 고개 숙이고 노래할 때 느껴지는 그 온기가 있거든요. 그게 좋아서 소극장 공연을 더 지향하는 것 같기도 해요. 특히 간주처럼 악기만 남아 있을 때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러면 '관객분들이 이해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저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작년에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입관할 때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시신에 코나 입에 이렇게 거즈를 다 끼워놓는단 말이죠. 부패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빠든 할머니든 육신은 그대로 있잖아요. 제가 늘 만지고 보던 그 육신인데, 여전히 살갗도 감촉이 있는데,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가 뭘까라고 생각해 보니까 온기였던 거예요. 피가 안 도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들과 손을 잡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하거나 느낄 수 있는 그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거더라고요. 그러면 '좋은 예술의 가치가 어디서 오냐'라고 생각했을 때 '뭐든 느끼게 해주면 된다. 그럼 내가 살아있다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건 되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살아있음이 너무 축복이고…. 왜냐하면 느낄 수 있으니까요. 최근 일들을 겪으면서 제 음악도 제 음악 인생도 뭐든 그냥 느끼고 가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에서 고개 숙이는 모습은 준일 씨의 시그니처 이미지가 됐는데, 그 장면은 어떻게 보면 가장 자연스럽고 깊게 교감할 수 있는 매개가 되는 거 같아요.

"말로 설명이 잘 안 되는 그런 감정들이 있잖아요. 최근 코고나다 감독의 '콜럼버스'라는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에 너무 슬픈 거예요. 근데 이 영화가 왜 슬픈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누군가가 제 노래를 들었을 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되게 슬프고 눈물 나는데 '왠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

-준일 씨 말씀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건 설명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둬야 예술'이라는 말이요.

"어떤 작가가 인터뷰에서 '왜 글 쓰는 사람 됐냐'라는 물음을 받으니까 '내가 말을 잘했으면 내가 글 쓰는 사람이 안 됐다. 말을 못하니까 글 쓰는 거다'라고 답하더라고요. 그 대목을 보면서 저도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시 얘기하면 준일 씨는 물론 글도 잘 쓰시고 말도 잘하시긴 하지만 본인이 세상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노래라서 이걸 선택한 건가요?

"저는 음악에서 솔직해요. 반면 제 리얼 라이프에서는 별로 솔직하지 않은 편입니다. 굉장히 사람들을 대할 때도 피상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되게 많고 예의상 하는 말도 되게 많고…. 근데 음악은 두 겹 세 겹 더 아래로 내려가서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좀 더 정제된 언어로 다룰 수 있어요. 제 업에서는 솔직할 수 있으나 오히려 제 일상생활에서는 별로 솔직하지 않은 편인 거죠. 그 반대인 가수들도 있는 것 같아요."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래서 준일 씨 노래 들으면 더 아픈가 봅니다. 솔직한 감정들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렇죠 제가 평상시에 그렇게 징징대지 않는데, 노래에서만 징징대는 스타일이니까요."

-반대로 얘기하면은 준일 씨가 더 용감해 보입니다. 무대에선 발가벗겨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가족들을 제 공연에 항상 안 부릅니다. 아무도 못 오게 해요. 가까운 사람들도 웬만하면 못 오게 하거든요."

-가까이 있는 분들이 더 아플 수도 있고….

"제가 뭘 생각하는지 별로 들키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요."

-준일 씨는 노래를 뽐내서 부르시지는 않은데 멋있어요. 그 노래에 담긴 감정을 정확하게 부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근데 그 정확함의 기준점 같은 게 있나요?

"일단 노래를 할 때 생각하는 게 몇 가지 없어요. 직선적으로 노래를 하는 편이에요. 장식적으로 하는 걸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김장훈 선배 목소리를 되게 좋아해요. 완전 날 것이고 직선적으로 노래하시잖아요. 제가 노래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편이죠. 작년에 '불후의 명곡'에서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불러서 제가 왕중왕전 우승을 했었는데, (원곡자인) 승환이 형이 최근에 통화에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부른 후배들 중에 너가 제일 잘 한 것 같다. 원곡에 가깝게 잘 표현한 것 같다'고요. 그때 생각한 건 하나였거든요. 그냥 장식적이지 않게 솔직하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부르자. 원곡에서도 승환 형이 막 예쁘게 부르지 않잖아요. 저는 그걸 되게 따라하고 싶었거든요. 음악을 다루는 방식이 직선적이고, 많이 고민하지 않는 쪽입니다. 페스티벌에 섭외 하실 때 제게 시스템 환경 등에 대해 물어봐요. 그럼 전 항상 농담처럼 답해요. '다 됐고 그냥 마이크 나오면 해요'라고."

-말씀을 듣고 제 생각을 조금 조정하게 됐습니다. 준일 씨의 노래 부르는 모습은 '멋있다'라는 표현보다는 '근사하다'는 표현이 더 적확한 거 같아요. 근사하다는 '근사치(近似値)', 즉 원형에 가까운 값을 말하는 것이 파생된 것이고 즉 어떤 작품에 대해 '근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대상이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최상의 미적 기준에 '거의 닿을 듯이 맞닿아 있음(近似)'을 발견했을 때 나오는 말이니까요. 즉 준일 씨는 노래를 하나의 본질이나 어떤 한 감정에 최대한 가까워지려고 부르는 것 같은데 거기에 가려면 앞선 질문의 동어반복일 수 있지만 너무 아플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을 되게 헐렁하게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냥 되게 시시한 삶을 살거든요. 청소하고 빨래하고 강아지 산책하고… 이게 다예요. 대신 이건 기질 같은 건데, 좋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몰입이 빠른 편이에요. 그래서 반작용으로 일상에서는 별로 불편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밸런스를 잘 찾으려고 많이 노력을 하죠. 그래서 평소에 있을 때는 그냥 너무 뻔해요. 되게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없어요. 예를 들면 악기를 연구한다거나 무슨 사운드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런 거 절대 안 하거든요. 제가 술 담배도 안 해가지고 사람들이랑 어울릴 일도 별로 없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시시하지만 하루하루 일상을 잘 보내죠."

-아티스트라도 에너지의 총량이 있을 텐데, 무대에서 쓰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한데 만약 그걸 일상에도 가지고 가신다면… 정말 힘들 거 같아요.

"그래서 직업인으로서의 저와 평소의 저를 분리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상에서도 막 사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이건 직업이고 업일 뿐이지 제 리얼라이프까지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완벽하게 분리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평소에 음악 들을 때는 그냥 좋아하는 거 위주로 듣지 막 공부하면서 듣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좋은 뮤지션이 좋은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일상생활에서 어긋나는 사람도 노래만 잘하고 음악만 잘 만들면 예술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몇 년 전부터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예술을 만들 확률이 높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됐습니다.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준일. (사진 = OOAS 제공) 2026.06.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인간은 기본적으로 기질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적당히 야비하고 적당히 괜찮고 적당히 선민의식도 있고 아픈 사람이나 힘든 사람을 위로할 수 있고. 그러니까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은 대부분 비슷한데, 어떤 상황에 따라서 인간이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아주 극단적으로 히틀러 같은 나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논외로 치고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얘기했을 때는 극단적으로 나쁜 사람, 극단적으로 좋은 사람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대신 그럴 만한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 차이는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예술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인간을 반영하는 거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지점들이 많죠. 예술로서 그 사람을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하잖아요. 때로는 내 살점을 내어줘가면서까지 남을 위해 희생하는 모먼트가 있지만 또 어떨 때는 '어떻게 이렇게 비겁하냐'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죠. 나는 적당히 훌륭하면서도 적당히 비겁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늘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음악이나 영화를 통해서 동질감을 느끼고 의미를 가질 때는 그게 그 영화 자체가 너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영화를 통해서 나를 보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음악들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 번 더 거울처럼 보게 하는, 저는 그런 예술이 오래 가치 있게 보존되는 것 같아요. 그게 꼭 좋은 사람이 만든 작품이 아닐지라도요."

-준일 씨는 영화뿐 아니라 사진, 미술 등 다양하게 몸 담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유혹도 많았을 거 같고요. 근데 음악만 밀고 나갑니다.

"다른 업에 별로 관심이 없고, 가장 사랑하는 게 음악이어서 그래요. 저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요. 이 업을 안 하게 돼도 그냥 '헤비 리스너'로 오래 살고 싶다고요. 음악을 기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죠.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면 다른 거에도 막 이것저것 손을 뻗어보겠지만 충분히 음악 하나만으로도 저는 너무 행복해요. 굳이 다른 인풋이 저한테 필요가 없죠. 글 쓰자는 얘기도 있고 제의는 많이 받았는데, 출판사한테 메일을 길게 써서 답신을 보냈어요. 제가 사랑하는 작가 누구누구만큼 제가 쓸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요. 팔리고 안 팔리고를 떠나서 제가 기준으로 두고 있는 분들만큼 제가 못해서 죄송하다고요."

-그럼 음악이 가장 미워질 때는…

"제가 잘 못할 때죠. 노래를 잘 못하거나 연주를 잘 못하거나 곡을 썼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시 듣고 '아 이 쓰레기 같은 인간아…' 이러면서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빠져나오는 방법도 결국은 음악이…

"그렇죠. 그걸 빠져나가는 방법도 음악 아닌 다른 걸로 대체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책상에 앉아서 더 좋은 거 나올 때까지 계속 쓰는 방법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100개 중에 하나, 1000개 중에 하나가 걸리면 이제 야 괜찮은데라면서 또 쓰고……."

-소극장 공연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여름은 생각해보면 준일 씨랑 잘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저는 사실 여름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덥지만 아련한 느낌도 있고 왠지 조용해지는 것들이 있어서… 여름은 무엇보다 방어망이 없는 계절 같거든요. 자기의 모든 걸 다 드러내는, 물성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요. 어떻게 보면 반대로 모든 걸 가장 불태울 수 있는 청춘과 동의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소진, 소멸되는 느낌도 있고… 이런 느낌이 준일 씨한테 다 있어서 여름하고 되게 잘 맞는 분이시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봄보다는 여름이 좀 더 한 해를 시작하는 느낌이 들기는 해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뭔가 다 열리는 느낌이 들긴 하거든요. 그래서 이때 에너지도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같고요. 특히 해가 질 때 여름을 되게 좋아해요. 모든 건 그대로 다 피어 있고 조도만 떨어지는 건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요. 원래 여름에 공연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여름에 좀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바깥과 온도 차가 좀 나긴 하겠지만 실내로 들어와서 '쉬었다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은 가수가 드러나는 게 아니에요. 음악 그 자체만으로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있다기 보다는 전시장에서 그림 보는 것처럼, 자신이 잊고 있었던 거 그냥 지나쳤던 어떤 것에 대한 세밀한 기억 부분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전 제가 멋있게 보이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관객이 주인공인 공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에도 피아노 공연을 하셨잖아요. 겨울의 피아노, 여름의 피아노는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약간 눅눅한 피아노 소리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빌 에번스나 브래드 멜다우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약간 그 뮤트 걸린 피아노 소리를 되게 좋아해요. 피아노 녹음할 때나 집에서 연습할 때도 일부러 뮤트 페달 밟고 많이 쳐요. 근데 겨울에 치는 피아노는 약간 그런 뮤트 걸린, 되게 묵묵하고 조금 조용한 톤의 피아노를 선호해요. 반면 여름에는 좀 더 높고 맑은 소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겨울에는 블루지하고 재즈한 곡들이 좀 더 피아노랑 어울리는 것 같고, 여름엔 아무래도 보사노바 같은 음악이 좀 더 저한테 잘 맞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번 공연도 겨울 공연처럼 너무 무겁거나 어둡지 않게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물론 중간에 사카모토 류이치의 '안다타(andata)'라는 곡을 연주하긴 하는데 제가 그분을 너무 좋아해서입니다. 그것과 별개로 좀 조금 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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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일, 벗어던진 계절 여름…온기를 토하다

기사등록 2026/06/30 16:00:2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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