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커밍아웃…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서울=뉴시스] 미와 아키히로. (사진 = 홈페이지(촬영 미도 요시노리 캡처) 2026.06.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6/28/NISI20260628_0002172110_web.jpg?rnd=20260628192218)
[서울=뉴시스] 미와 아키히로. (사진 = 홈페이지(촬영 미도 요시노리 캡처) 2026.06.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목소리 연기로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의 전방위 예술가 미와 아키히로(본명 마루야마 아키히로)가 지난 2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
소속 사무소는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고인이 자택에서 요양 중 "고맙다"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영면했다고 밝혔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근친자들끼리 치러졌으며, 제단은 생전 좋아한 노란 장미와 팬들의 편지로 채워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고인은 1952년 데뷔 후 1957년 '메케·메케'의 히트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드물게 동성애자임을 공표하고 성별을 초월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며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로도 궤적을 남겼다.
1965년 발표한 '요이토마케의 노래'는 노동자의 존엄을 노래해 대중의 큰 공감을 샀으며, 2012년 NHK 홍백가합전 첫 출전으로 이어져 큰 화제를 모았다.
데라야마 슈지의 연극 '모피의 마리', 미시마 유키오 각본의 '검은 도마뱀' 등 탐미적인 무대에서 활약한 고인은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팬들에게는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의 신스틸러 성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노노케 히메'(1997)의 거대한 늑대 신 '모로' 역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황야의 마녀' 역을 맡아 독보적인 존재감의 목소리 연기를 선보였다.
10세 때 고향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주의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해 온 고인은 2019년 뇌경색 발병 이후 활동을 제한해 왔다. 아사히신문의 인생 상담 코너 '고민의 도가니' 답변역을 맡는 등 마지막까지 대중의 곁을 지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소속 사무소는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고인이 자택에서 요양 중 "고맙다"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영면했다고 밝혔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근친자들끼리 치러졌으며, 제단은 생전 좋아한 노란 장미와 팬들의 편지로 채워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고인은 1952년 데뷔 후 1957년 '메케·메케'의 히트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드물게 동성애자임을 공표하고 성별을 초월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며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로도 궤적을 남겼다.
1965년 발표한 '요이토마케의 노래'는 노동자의 존엄을 노래해 대중의 큰 공감을 샀으며, 2012년 NHK 홍백가합전 첫 출전으로 이어져 큰 화제를 모았다.
데라야마 슈지의 연극 '모피의 마리', 미시마 유키오 각본의 '검은 도마뱀' 등 탐미적인 무대에서 활약한 고인은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팬들에게는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의 신스틸러 성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노노케 히메'(1997)의 거대한 늑대 신 '모로' 역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황야의 마녀' 역을 맡아 독보적인 존재감의 목소리 연기를 선보였다.
10세 때 고향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주의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해 온 고인은 2019년 뇌경색 발병 이후 활동을 제한해 왔다. 아사히신문의 인생 상담 코너 '고민의 도가니' 답변역을 맡는 등 마지막까지 대중의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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