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세포도 챗GPT처럼 작동한다"…말하기 직전 뇌 속 촬영해보니[사이언스 PICK]

기사등록 2026/06/21 08:00:00

최종수정 2026/06/21 08:10:25

美 연구진, 인간이 말하기 직전 전두측두엽 뉴런의 실시간 전기 신호 포착

단어 뜻과 문법 철저한 '분업'…말 내뱉기 전 '5개 단어' 맥락까지 계산

AI 대형언어모델(LLM) 원리와 소름 돋는 일치

사람의 대화 과정에서 뇌 속 뉴런들은 단어의 의미, 문법 등 각각의 임무를 맡아 불과 수초 안에 완성된 문장을 만들어내 입 밖으로 내뱉게 한다. 사진은 뇌 속 뉴런 관련 참고용 이미지. (사진=유토이미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람의 대화 과정에서 뇌 속 뉴런들은 단어의 의미, 문법 등 각각의 임무를 맡아 불과 수초 안에 완성된 문장을 만들어내 입 밖으로 내뱉게 한다. 사진은 뇌 속 뉴런 관련 참고용 이미지. (사진=유토이미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오늘 날씨가 정말 OO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 문장을 완성해 입 밖으로 내뱉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 동안 우리의 뇌는 빈칸에 들어갈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고른다. 앞뒤 단어의 문법 관계를 따져 메시지를 만든다.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빠르고 정교하게 말을 할 수 있는지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기존 학계에서는 언어 능력이 뇌 전체에 넓게 퍼져 작동하는 통합 현상이라고 봤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 말을 하기 전 뇌 세포들이 실시간으로 일으키는 전기적 '스파크'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의 뇌는 정교하게 체계화된 '언어적 벽돌'들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최신 인공지능(AI)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방식으로 문장을 조립하고 있었다.

사람 간 대화 속 '세포의 속삭임' 도청…뇌세포별 언어 역할 포착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의 지브 윌리엄스 신경외과 교수 연구진은 인간이 일상 대화를 나눌 때 뇌 안에서 벌어지는 전기적 신호를 실시간으로 추적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뇌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살아있는 인간의 뇌 속 세포 활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기존 장비는 뇌의 대략적인 활성화 영역만 보여줄 뿐, 개별 세포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는 잡아내지 못한다.

이에 연구진은 발작 증상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뇌 속에 미세 전극을 심은 간질(뇌전증) 환자들의 협조를 구했다. 참가자들이 깨어 있는 상태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연구진은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전두측두엽에 위치한 뉴런들의 움직임을 '도청'하는 데 성공했다.

관찰 결과 뇌 속에는 특정 언어적 역할만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전용 세포'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윌리엄스 교수는 "과거에는 언어가 뇌 전체가 작동하는 확산성 네트워크 현상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단어가 '명사'일 때만 활발해지는 뉴런이 있는가 하면, 문장이 끝나는 '어미' 시점에만 신호를 보내는 뉴런이 따로 있었다"고 설명했다. 블록을 조립하듯 단어 성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세포들이 불을 켜며 문장을 완성한다는 의미다.

뜻 담당과 문법 담당…철저한 분업 시스템

뇌가 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거대한 공장의 분업 시스템과 흡사하다. 연구진은 뉴런들이 담당하는 임무를 크게 '의미론(단어의 뜻)'과 '통사론(문법과 구조)'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언어 특화 세포들은 이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지 않고 철저하게 한 우물만 팠다. 단어의 뜻을 파악하고 매칭하는 데 집중하는 뉴런이 있는 반면, 이 단어들을 어떤 순서로 배열하고 문법적 구조를 갖출 것인지 동사나 어미의 위치를 감시하는 뉴런이 별도로 존재했다. 이러한 세포들은 전반적으로 우뇌보다 좌뇌에서 훨씬 활발하게 작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각자 자기 임무에만 몰두하는 고립된 벽돌들이 어떻게 순식간에 유기적으로 결합해 유창한 말로 터져 나오는지는 과학계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챗GPT의 대형언어모델(LLM)과 '복사판'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뇌의 문장 구성 방식이 생성형 AI 챗봇의 '대형언어모델(LLM)' 원리와 매우 닮아있다는 점이다.

LLM은 앞선 단어들의 맥락을 파악해 다음에 올 확률이 높은 단어를 예측한다. 실제로 인간의 뉴런 역시 AI처럼 문장의 넓은 맥락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뇌 속 뉴런들은 다음 단어를 내뱉기 전, 바로 직전에 등장했던 단어를 최대 5개까지 메모리에 유지하며 맥락을 계산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밥을…"까지만 들어도 뒤이어 "먹었다"가 올 것을 예측하듯이 뇌세포들 역시 앞선 단어들의 궤적을 그리며 다음에 올 단어의 형태와 의미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독일에 위치한 막스 플랑크 휴먼 인지 및 뇌과학 연구소의 안겔라 프리데리치 교수는 이러한 발견이 언어의 완전한 비밀을 풀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연구가 뇌 활동의 짧은 한 단면만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과거 생쥐 실험 등 동물 연구에 따르면 대뇌 피질 세포들의 반응이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변하는 '표상 표류(representational drift)'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늘 명사나 어미에 반응했던 세포들이 몇 달, 몇 년 뒤에도 똑같은 언어적 임무를 맡고 있을지는 장기적인 추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말 잃은 이들에게 '목소리' 되찾아줄까…BCI 기술 고도화 실마리

그럼에도 과학계가 이번 연구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언어 신경 지도'가 가진 기술적 잠재력 때문이다. 뇌 속 세포들이 문장 구조와 문법을 어떻게 코딩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질병이나 사고로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한 환자들에게 혁신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루게릭병이나 뇌졸중 등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할 수 없는 환자라도, 머릿속으로 문장을 구성할 때 발생하는 뉴런의 전기 신호를 읽어내 곧바로 텍스트나 음성으로 변환해 주는 기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 과학계가 매진하고 있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은 단순히 '배고프다', '물 달라' 같은 단편적인 요구를 읽어내는 수준을 넘어, 복잡한 생각과 온전한 문장을 통째로 해독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에 규명된 세포 수준의 분업 체계와 맥락 유지 메커니즘은 고도화된 BCI 기기를 개발하는 데 핵심 정밀 나침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윌리엄스 교수는 "이번 발견이 단순히 뇌의 지도를 그리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의사소통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돕는 고등 신경 장치 개발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뇌에서 직접 복잡한 생각을 해독해 냄으로써 환자들에게 다시 목소리를 찾아주는 새로운 통로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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