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 허니문, 상처 입지 않는 모시핏을 위해

기사등록 2026/06/13 13:46:50

[인터뷰] 장인화·신재은·김예림 3인조의 거침없는 글로벌 행보

'여성 밴드' 굴레 벗고 다치지 않는 '안전한 난장' 연대

오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 출연

[서울=뉴시스] 세일러 허니문. (사진 = Kim Taeyoung and Abi Raymaker 제공) 2026.06.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세일러 허니문. (사진 = Kim Taeyoung and Abi Raymaker 제공) 2026.06.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글로벌 3인조 펑크록 밴드 '세일러허니문(Sailor Honeymoon)'의 행보가 거침없다. 서울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출발한 이들은 아시아와 유럽 무대를 횡단하며 역동적인 디스토션 사운드로 고유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포토그래퍼 장인화(Abi Raymaker)와 전직 DJ 신재은(Zaeeun Shin)의 즉흥 잼 세션에 베이시스트 김예림(Yelim Kim)이 합류하며 지금의 견고한 삼각형을 완성했다. 이들이 최근 발매한 새 싱글 '피클(Pickle)'은 강렬한 펑크 사운드 위로 벼려진 송라이팅과 위트 있는 가사가 교차하는 곡이다. 전작 '암체어(Armchair)'가 보여준 냉소적 풍자의 연장선이자, 밴드 특유의 시끄럽고 열기 가득한 실존적 세계관의 증명이다.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살고 싶은 새로운 세계를 발명하는 일이다. 세일러허니문의 음악은 현실의 피로와 억압을 잊기 위한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다. 오히려 동네 찜질방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땀을 빼며 번뇌를 지우듯,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현실의 중력을 증발시키고 자신들만의 가벼운 세계를 주조해 낸다. 짜증 나는 해충을 박멸하고 억압적인 가부장제를 타개하는 이들의 음악적 상상력 안에서, 무거운 현실은 유머와 농담이라는 단단한 무기로 전복된다. 신곡 '피클'은 그렇게 그저 낡은 현실에 절여지는 대신, 스스로 뜨겁게 몸을 뉘어 자신들만의 리듬으로 익어가겠다는 유쾌한 선언이다.

이들의 펑크는 폭력이 아닌 다정한 연대다. 시대의 '라이엇 걸(Riot Grrrl)' 정서를 기꺼이 계승하되, '여성 밴드'라는 수식어의 납작한 울타리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한국 소녀들이 펑크 록을 발명했다(Korean girls invented punk rock)'는 당찬 슬로건 뒤에는, 공연장 모시핏에서 체격과 성별의 차이 없이 모두가 다치지 않고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난장을 지켜내려는 타자에 대한 윤리가 자리한다.

13일 강원 철원군 고석정 일대에서 펼쳐지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에서 이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독창적인 큐레이션으로 국내 음악 페스티벌의 지평을 넓혀온 축제다. 세일러 허니문을 '피스트레인' 이후 이달 몽골 플레이타임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영국 마셜 스튜디오에서의 신곡 녹음, 그리고 스위스 쉬르 르 라크부터 영국 그린 맨 페스티벌 등에 잇달아 출연한다. 세일러허니문이 일으키는 소음은 이제 단순한 음악을 넘어, 누군가의 상처를 껴안고 함께 뛰는 거대한 진동이 되고 있다. 다음은 연습실이 있는 최근 서울 광흥창 인근에서 만나 세 멤버와 나눈 일문일답. 

-그간 멤버 변동이 조금씩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지금의 멤버 구성을 확정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장인화 "처음 밴드를 제안했을 때는 사실 여러 명이 오가긴 했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부터 저와 재은이 계속 곡을 같이 썼고, 다른 친구나 평소 좋아하는 여성 뮤지션들에게 세션을 부탁하며 잠시 함께 공연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미옥'이라는 친구와 1년 정도 같이 했는데, 그 친구가 솔로로 전향하게 됐습니다. 저희도 고정 멤버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주변에 수소문하다가 예림을 처음 만났고, 호흡이 엄청 잘 맞아 같이 하게 됐어요."

-인화 씨는 '장인화'라는 이름을 언제 어떻게 짓게 되신 건가요?

장인화 "어머니는 한국 분이시고, 저는 미국에서 태어난 혼혈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장인화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할머니 성함은 유지화입니다. 어머니 이름에도 '인' 자가 들어가고, 저희 가족 안에 '인' 자 돌림이 많아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아 인화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참 예쁜데 한자도 알고 계신가요?

장인화 "사람 인(人)'에 '조화로울 화(和)'를 씁니다."

-사람들끼리의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니 밴드 하기에 무척 좋은 이름이네요.

장인화 "메인 직업으로 원래 사진을 했었기 때문에, 사진을 '인화(印畵)'한다는 뜻도 있다는 걸 알고 나중에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어차피 포토그래퍼도 하시니 사진 인화도 되고, 사람들끼리 교류도 되고 진짜 멋있습니다. 이제 이번 싱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싱글도 너무 좋던데, 언제 어떻게 만드신 곡인가요?

장인화 "1년 반 전인 2025년 겨울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잠깐 미국 LA에 살고 있을 때, 재은과 서로 데모를 주고받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재은의 추천으로 '블론드 레드헤드(Blonde Redhead)', 다른 지인의 추천으로 '앰프스(The Amps)' 등 여러 밴드 음악을 많이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곡이 어느 정도 완성됐습니다. 그것을 재은에게 보내고 같이 수정하며 만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여러 영향을 받아 완성된 곡이군요. 다른 멤버들은 이 곡을 처음 듣고 어떠셨나요?

신재은 "되게 신선하고 에너지 있는 곡을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화가 자기 개성을 음악으로 참 잘 풀어낸다고 느꼈습니다."

-예림 씨는 어떠셨나요?

"처음 듣고 가사를 봤을 때 '어떤 내용이지?'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피클이 오래 푹 담겨 있는 내용인데, 사실 저희가 투어를 다니며 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다 같이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을 진짜 좋아합니다. 다 같이 몸을 녹이며 상념과 잡생각을 없애는 그런 장면들이 가사 중간에 녹아 있습니다. 영어 가사지를 해석하며 옛날 생각도 나고 더욱 재미있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일러 허니문이 항상 재밌는 점은 가사에 그 상황을 묘사하는 위트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머는 몸에 밴 정서인가요, 아니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일부러 쓰시는 방식인가요?
[서울=뉴시스] 세일러 허니문. (사진 = Kim Taeyoung and Abi Raymaker 제공) 2026.06.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세일러 허니문. (사진 = Kim Taeyoung and Abi Raymaker 제공) 2026.06.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장인화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최근에 읽은 책에 '예술이나 음악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무척 와닿았습니다. 제가 살고 싶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곧 음악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평소 현실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하며 다들 바쁘게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제가 상상하는 다른 세계에서는 유머 있고 가볍게 행동하며, 무엇을 해도 신경 쓰지 않는 재미있는 곳입니다. 그런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며 잼을 하거나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무거운 생각 없이 가볍고 위트 있게 농담하는 가사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에너지가 강렬한 만큼 심각하게 생각할 확률이 높은데, 위트가 중요하다는 걸 일찍 깨달으셨다는 점이 대단하고 멋집니다.

장인화 "항상 완벽하게 그렇게 할 수 있다기보다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아직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모습들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큽니다."

김예림 "이전 발표곡인 '카카로치(Cockroach)', 'PMS 폴리스(PMS Police)', 최근 곡 '암체어(Armchair)'를 봐도 방금 인화가 말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저희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음악 안에서는 100%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할 수 있습니다. 짜증 나는 해충을 모두 박멸하고 싶다는 세상도 있고, 억압적인 직장 상사나 가부장제를 완전히 타개하는 세상도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직접적으로 엎을 수 없는 것들을 음악 속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 위트 있는 가사들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여러 외신 인터뷰에서도 언급됐지만 세 분이 어떻게 음악을 처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재은 님은 원래 테크노 DJ로 활동하셨는데 어쩌다 전자 음악에 빠져들었으며, 기타와 보컬로 영역을 넓히게 된 과정은 무엇인가요?

신재은 "전자 음악을 하기 전, 제일 처음 시작한 악기는 기타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넘어갈 무렵 교회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배운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 밴드 신에 머물며 자연스레 전자 음악 신에도 관심이 생겼고 베뉴로 놀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에게 귀동냥으로 조금씩 배우고 혼자 장비를 사서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조금씩 배우며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전자 음악 중에서도 테크노는 무척 구조적이고 국내에선 아직 마이너한 장르입니다. 테크노의 어떤 매력에 끌리셨나요?

신재은 "저희 소개 글에 테크노라고 적히긴 했지만, 저 스스로를 '테크노 DJ'라고 칭하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그 신이 되게 보수적이기도 하고, 파면 팔수록 너무 깊은 장르라 제가 완벽히 안다고 확언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척 재밌고 깊이 파고들어야 할 매력이 있는 장르입니다."

-인화 님은 포토그래퍼로도 활동하셨는데, 어렸을 때는 어떤 음악을 많이 들으셨나요?

장인화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셔서 집에서 항상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강압적으로 느껴져 싫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아름다운 음악이 곁에 있어 지금은 좀 그립습니다. 밴드 음악은 고등학교 때 '더 스트록스(The Strokes)'를 듣고 큰 충격을 받으며 처음 빠져들었습니다. 음악이 이렇게 좋을 수 있는지, 제가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동네 도서관에서 CD를 최대한 빌려 컴퓨터에 다운받아 매일 들었습니다. 친한 친구와 돈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기차를 타고 뉴욕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챙겨 보는 것에도 푹 빠졌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장인화 "대학교 때 대학 라디오 방송국 대표를 맡아 온라인 사이트에 콘텐츠를 많이 올려야 했습니다. 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직접 학교 카메라를 빌려 공연장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티켓을 무료로 받고 싶어서 꼼수로 시작한 일인데, 하다 보니 사진에 진심으로 빠져 다크룸 수업까지 듣게 됐습니다."

-한 번 빠지면 무섭게 몰입하는 성향 같으십니다. 이 밴드를 결성할 때도 잼 세션을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열망에서 출발하신 건가요?

장인화 "한국에 살면서 음악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다 보니, 저도 무대에 서서 음악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상상을 점점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음악 하는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 덕분에 직접 부딪쳐 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예림 씨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김예림 "대학교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며 취미로 밴드 음악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시기가 겹치고 바이오 전공 쪽의 취업 길이 막히며 방황하던 때, 차라리 제가 하고 싶은 걸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집에 친오빠가 한 달 치다가 방치해 둔 베이스가 놀고 있어서 우연히 잡아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밴드 '향니'의 베이시스트 이준규 선생님께 레슨을 받다가, 여성 밴드에서 베이스를 구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2024년 여름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무대 앞에서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뒤에서 중심을 받쳐주면서 다른 팀원들이 연주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세 분 성격의 조화가 훌륭합니다. '세일러 허니문'이라는 밴드명이 참 다양한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저 역시 처음엔 J-팝 밴드인 줄 알았는데 실제 음악을 듣고 편견이 완전히 깨져 더욱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인가요?

장인화 "처음에 밴드를 같이 시작했던 친구가 이름이 귀엽고 재밌다며 제안했습니다. '세일러 문' 안의 여러 다양한 여성들이 각자 할 수 있는 기량을 뽐내며 멋있는 일을 함께 해나간다는 콘셉트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사실 조금 이상하고 웃기게 들려서 가볍게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저희의 주된 목표 중 하나가 사람들이 저희에게 으레 예상하는 모습을 깨부수는 것인데, 이름에서부터 그런 편견을 깰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 페스티벌에서도 포스터에 적힌 이름이 재밌어 보여서 보러 왔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심지어 실제 '세일러 문 팬클럽'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했습니다. 이메일로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질문이 올지 기대됩니다."

-다른 두 멤버 분들은 처음 팀 이름을 듣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서울=뉴시스] 세일러 허니문. (사진 = Kim Taeyoung and Abi Raymaker 제공) 2026.06.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세일러 허니문. (사진 = Kim Taeyoung and Abi Raymaker 제공) 2026.06.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신재은 "처음에는 진짜 있는 이름인가 싶을 정도로 무척 충격적이었지만, 나중에 의미를 전해 듣고 그 이름으로 직접 활동해 보니 지금은 완전히 만족합니다."

김예림 "선생님께 밴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제가 잘못 들은 줄 알고 두 번이나 되물어봤어요. 하하. 진짜 있는 이름인가 싶어 궁금하면서도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세일러 문'과의 연관성도 뚜렷하고, 이름이 주는 예상과 완벽히 상반된 음악을 한다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밴드의 에너지를 보면, 시대의 라이엇 걸(Riot Grrrl) 밴드에 대한 향수와 이미지를 지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 가져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라이엇 걸 신의 어떤 정서와 유산을 가져오고 싶으셨나요?

장인화 "좋은 점이 참 많습니다. 최근 캐슬린 한나(Kathleen Hanna)가 쓴 책을 읽었는데, 그 안에 밴드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척 솔직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를 세웠다기보다 그저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신이 형성됐다는 과정이 지금의 한국 인디 신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저희는 분명 자랑스러운 여성 밴드이지만, 대중이 저희를 '여성'이라는 틀에만 가둬 보지 않고 '얼마나 멋있는 음악과 공연을 하는 밴드인가'에 더 집중해 주길 바라는 고민도 있습니다. 라이엇 신의 아티스트들이 가진 천재성이 그저 '여성'이라는 수식어로만 퉁쳐질 때 당사자들도 큰 답답함을 느꼈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며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훌륭한 음악성보다는 '여성'이라는 단어에만 초점을 맞춰 평가하고 마는 경향이 있어 아쉽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성 뮤지션들로 라인업을 채운 '영희 페스티벌' 기획의 취지도 구조적으로 매우 의미 있다고 봅니다.

"저희도 영희 페스티벌에 무척 참여하고 싶었는데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과 일정이 딱 겹쳐 아쉽게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적으로 아직 여성 아티스트들이 기회를 더 많이 받아야 하는 기울어진 환경임을 인정합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다른 음악적 성취도 동등하게 보여주고 싶어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계속 부딪히며 고민 중입니다."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이런 활약 덕분에, 나중에는 굳이 '여성 밴드'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저 뮤지션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금방 올 것 같습니다.

김예림 "맞습니다. '여성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에 갇히기보다는 각자 하는 음악의 고유한 방향이나 정체성에 좀 더 집중하게 되어, 동등하다는 말조차 필요 없이 그 환경 자체가 무척 자연스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활동하시면서 이런 낡은 편견들이 부서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조짐이 느껴지시나요?

김예림 "작년에 스페인의 '프리마베라 사운드' 페스티벌에 다녀왔는데, 찰리 XCX, 사브리나 카펜터 등 헤드라이너 세 명이 전부 여성이었습니다. 마침 현장 굿즈 중에 '파워 퍼프걸' 티셔츠가 있어 저희 셋이 재미로 사 입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스태프진도 관객 성비도 거의 50 대 50으로 자연스럽게 맞춰진 느낌이었습니다. 억지로 성비를 할당하려 한다기보다 그 자연스러움을 멋있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음악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대중의 인식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져 오래된 틀이 깨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인화 "유럽에는 페스티벌 라인업의 50%를 여성 아티스트로 채우기로 약속하는 캠페인 프로그램이 존재하는데, 프리마베라 말고도 무척 많은 페스티벌이 참여합니다. 편견이 짙은 상황에서는 처음 라인업 구성부터 여성 아티스트의 자리가 구조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제도적 프로그램들이 발판이 돼야 아티스트들도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디 신에서 동료 밴드들과 연대하며 기획 공연 등을 확장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장인화 "머릿속에 아이디어는 무척 많습니다. 동료 여성 뮤지션들과 리믹스 앨범을 내볼까 하는 생각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기획을 하려면 거대한 자본이 필요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지만, 커뮤니티의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존경하는 동료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며 기회를 줄 수 있는 힘 있는 밴드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최근 다른 인터뷰에서 킴 고든의 말을 인용해 '한국 소녀들이 펑크 록을 발명했다(Korean girls invented punk rock)'라고 슬로건을 건 문구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인화 "킴 고든이 예전에 입었던 '걸스 인벤티드 펑크 록, 낫 잉글랜드(Girls invented punk rock, not England)' 티셔츠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인디 밴드로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직접 해내야 하기에, 주절주절 길게 설명하기보다 단숨에 꽂히는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티셔츠를 제작했습니다. 이 문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화를 내는 남성들도 가끔 있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분노하는 꼴을 보면 이미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하며 그저 재미있게 넘겨버립니다."

-공연 중 여성 관객들을 위해 특별히 진행하시는 캠페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예림 "당장 페스티벌을 주최할 여력은 없지만, 클럽이든 큰 무대든 공연할 때마다 작게나마 실천하는 것이 있습니다. 비키니 킬(Bikini Kill)의 프런트맨에게 영감을 받아, 모시핏(Mosh pit·격렬하게 춤추는 곳)이나 슬램을 할 때 체격 차이로 부딪혀 다칠까 봐 두려워하는 여성 관객들을 위해 '여성분들 앞으로 오세요. 다 같이 안전하게 슬램 해봐요'라고 외치며 안전하게 즐길 자리를 확보해 주는 저희만의 작은 캠페인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불여우단은 2015년 펜타포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로 깃발을 만들어왔고, 슬램을 사랑하지만 격한 슬램 문화에서 불쾌하거나 다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모여 자연발생 했습니다. 저희가 지향해 온 슬램의 모토는 안전제일입니다. 슬램과 모싱은 기본적으로 위험합니다. 다수가 함께 움직이는 공간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다칠 위험을 수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핏(Pit)은 조금 더 소프트하게 진행되길 바랍니다. 다치지 않고, 엉덩이 만짐, 가슴 만짐을 당하지 않고, 쾌적하고, 향기롭게 친구들 끼리 몸을 부딪히며 자유롭게 노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토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춤추길!"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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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 허니문, 상처 입지 않는 모시핏을 위해

기사등록 2026/06/13 13:46:5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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