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상자 속의 양' 내놓은 일본 거장
홍보차 한국 찾아 국내 언론과 인터뷰 해
아들 닮은 휴머노이드 들인 부부 이야기
"이 영화 할 때 SF라는 단어 쓴 적 없어"
"갑자기 떠난 아버지 보고픈 마음 담아"
"결국 인간성에 관한 물음…그건 상상력"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64) 감독 영화는 언제나 지금 바로 여기 현실에 집중해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식(式) 리얼리즘을 얘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건 그가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큐가 기반이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또 집중한다는 것. 틀린 얘긴 아니지만 온전한 설명 같지도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하려면 이렇게 말하는 게 나아 보인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가 다루는 것들에 개인과 사회의 현실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동시에 현실을 정확하게 다룰 수 있을 때에야 미래에 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신작 '상자 속의 양'(6월10일 공개)은 누가 뭐래도 SF영화다. 이렇게만 본다면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이색적인 지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리얼리즘 관점으로 보면 이 새 영화는 SF영화이면서 SF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또 한 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라는 것이다.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AI휴머노이드로봇이란 소재는 이미 AI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멀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가깝고, 바로 지금 이 현실에 관해 얘기하지 않고서는 미래에 관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엔 고레에다 감독이 천착해온 가족과 상실, 해체와 재결합, 공감과 공존이라는 키워드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래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고레에다 감독은 "난 이 영화를 얘기할 때 SF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다"고 말한 건지도 모른다.
'상자 속의 양'은 아들 잃은 부부 이야기다. 떠나버린 아들을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은 아들과 똑같이 생긴데다가 아들의 기억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AI휴머노이드로봇을 새 가족으로 들인다. 이제 부부는 괜찮은 걸까. 세 사람은 이전과 다름 없는 가족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그런데 아들을 닮은 이 로봇이 누군가를 만나게 된 이후 자유의지를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부는 그런 로봇아들의 행동이 당혹스럽다.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감독이 2년 전 우연찮게 중국인 사업가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 사업가는 중국에서 생성형AI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켜주는 비즈니스가 성황 중이란 얘길 했다고 한다. 흥미를 느낀 고레에다 감독은 이걸 소재로 각본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상자 속의 양'이 됐다. "일본에서도 같은 사업이 있더군요. 이 영화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제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된 영화입니다. 제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만약 아버지를 만난다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건 보편적인 감정이죠.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있을 겁니다. 돌아가신 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었으면 하는 그 마음. 그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조금 이상하다. 애써 만나게 한 아들을 다시 이 부부에게서 떨어트려 놓는다. 이때 '상자 속의 양'은 이런 종류의 SF영화들이 흔히 하는 AI휴머노이드로봇이를 어떤 존재로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서 다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질문들로 되돌아 온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잃은 가족은 어떻게 살 수 있나, 가족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그러더군요. 제 영화엔 반드시 죽은 사람, 눈앞에 나오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람이 나오고 아이가 나온다고요. 그렇다면 이번 영화는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아이라는 거죠. 제가 볼 때 이 영화는 SF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이가 돌아 온다는 게 중요합니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이 모순 앞에서 필요한 건 SF에나 있을 법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상자 속의 양'이 이때 얘기하는 게 바로 상상력이다. '상자 속의 양'이란 제목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왔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양 한 마리를 그려 달라고 하고, 조종사는 상자 하나를 그려주며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다"고 말한다. 상상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있다는 얘기다.
"똑같은 걸 봐도 전혀 다른 걸 상상할 수 있는 것, 그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부부는 집 정원에 있는 레몬나무를 보면서 떠난 아들을, 올리브나무를 보면서 다시 왔으나 또 떠난 아들을 겹쳐 볼 수 있습니다. 그건 AI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점점 상상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AI와 관련한 영화를 만들었기에 고레에다 감독은 함께 일한 스태프들에게 이 영화에 어떻게든 AI를 활용해서 만들어낸 것들을 넣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평소 번역 기능을 쓰는 것 외엔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스태프 말을 받아 들여 AI와 '상자 속의 양' 각본에 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그는 "AI가 제 각본이 아주 훌륭다고 칭찬해주더군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AI는 옳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AI가 내놓은 의견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어요. AI 충고를 제 각본에 모두 반영한다면 정말 옳은 각본이 됐을 겁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더군요. 이런 식으로 쓴다면 모두 똑같은 영화를 만들게 될 테니까요. 제가 원한 피드백이 바로 그 상상력이고 인간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 개인에겐 자신만의 생각, 어쩌면 너무나 일그러져 있을지 모르는 생각이 있죠. 전 그런 시각으로 제 각본을 봐주길 원했거든요. 전 제 각본이 성공하길 원하지만 어떤 대목에선 실패하길 원합니다."
그렇다고 '상자 속의 양'이 AI 혹은 AI휴머노이드로봇이 무용하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이들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고, 인간은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인정해야 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거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로봇들은 대놓고 말한다. "인간이 잘하는 게 뭐야." "이 부부의 아들은 아마도 부모를 뛰어 넘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가족을 꾸리는 것이겠지요. 인간은 숲을 없애서 집을 짓고, 휴머노이드는 숲을 집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들은 인간 도움을 받습니다. 부부의 삶은 쓸쓸할지도 모르지만 휴머노이드 덕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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