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보다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상어는 늙어가지만 작품의 운명은 미래 세대가 결정할 것"
"베이컨·고야·뱅크시·데이비드 보위, 내 예술의 영웅들"

MMCA 서울_데이미언 허스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90년대에는 내가 불멸이라고 느꼈다. 지금은 아니다."
한때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로 죽음을 가두려 했던 작가가 서울에서 시간을 이야기했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로 현대미술사를 뒤흔든 데이미언 허스트(60)가 나이 듦과 죽음, 그리고 예술의 의미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내놓았다.
1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허스트는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며 "이제는 죽음을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한때 죽음을 전시하며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렸던 그는 이날 놀랄 만큼 차분했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로 죽음을 붙잡으려 했던 작가는 이제 불멸보다 유한함을, 충격보다 삶을 이야기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시각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3.18.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3/18/NISI20260318_0021213082_web.jpg?rnd=20260401172611)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시각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3.18. [email protected]
죽음은 허스트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1991년 제작한 대표작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은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를 통해 현대미술사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이날 "죽음을 붙잡아 두려 했던 상어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 결국 시간이 이긴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그 작품의 의미를 판단할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허스트는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가능한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며 "작품이 시간을 이겼는지 아닌지는 미래 세대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작품이 얼마나 오래 갈 것 같냐고 물었더니 호크니가 말했습니다. '너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답해라.'"
그는 스스로를 '죽음의 작가'로 규정하는 시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예술 속에 죽음은 있을 수 있지만 '죽음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어 "예술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예술 없음(No Art)'이다"라며 "죽음을 다룬 작품 역시 결국 삶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Damien Hirst MMCA Portraits_20266.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때 영국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며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이끌었던 허스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이미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한 허스트는 골드스미스대 재학 시절인 1988년 직접 기획한 전시 '프리즈(Freeze)'를 통해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낡은 부두 창고를 전시장으로 바꾸고 젊은 작가들이 공간을 직접 연출한 이 전시는 훗날 YBA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후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 점화(Spot) 시리즈 등을 통해 죽음과 신념, 과학과 자본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며 동시대 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에는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를 비롯해 잘린 소머리 작업, 다이아몬드 해골, 점화 연작 등 대표작 50여 점이 소개된다. 하나의 브랜드처럼 굳어진 이 작업들은 죽음과 삶, 믿음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존재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러나 이날 허스트가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었다. 그가 말한 것은 시간과 변화, 그리고 결국 삶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성공을 정의해야 한다면 언젠가 내 묘비명에 '위대한 예술가'보다 '좋은 아버지'라고 적혀 있기를 바랍니다."
실제 이날 인터뷰에서 드러난 허스트의 관심은 죽음보다 삶에 가까웠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매일 바뀐다면서도 오히려 두려움은 줄어들었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서 오히려 죽음은 덜 무서워졌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시각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소머리 '천 년'. 2026.03.18.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3/18/NISI20260318_0021213091_web.jpg?rnd=20260401172611)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시각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소머리 '천 년'. 2026.03.18. [email protected]
동물 표본 작업에 대한 변화된 입장도 밝혔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열린 동물권 단체의 시위와 관련한 질문에 그는 "30~35년 전과 지금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답했다.
과거 실제 동물을 사용했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진짜 동물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진짜가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했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소머리 설치작업은 과거 24시간마다 실제 소머리를 교체해야 했지만 현재 전시에 사용되는 것은 정교하게 제작된 모형이다.
AI에 대한 질문에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AI가 허스트의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데미안 허스트 스타일'의 작품을 만든다면 그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먼저 봐야 알 수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이어 "AI로부터 안전한 직업은 없다"며 "AI는 훌륭한 작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관객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종료 20일을 앞두고 누적 관람객 44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관람객은 5600여 명으로 지난해 화제를 모은 론 뮤익 전시와 비슷한 흥행 추세를 보이고 있다. 관람객 가운데 20~30대 비중은 62%에 달한다.
허스트는 "영국에서는 1990년대에 들었던 이야기를 지금 한국에서 듣고 있다"며 "젊은 한국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다가와 '당신 때문에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 영국에서 듣던 말을 지금 한국에서 다시 듣고 있습니다."
이어 "40년 전 만든 작품들이 지금도 사람들의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술가로서의 성취"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작가와의 대화에는 1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 객석을 가득 채웠다. 허스트는 관객들의 질문을 직접 받으며 한국에서의 높은 관심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허스트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작가는 질문을 답처럼 위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시각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백금 두개골을 장식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 작품. 2026.03.18.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3/18/NISI20260318_0021213094_web.jpg?rnd=20260401172611)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시각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백금 두개골을 장식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 작품. 2026.03.18. [email protected]
그는 폴 고갱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언급하며 "모든 회화와 조각은 답인 척하지만 실제 답은 관객의 손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로 프랜시스 베이컨, 프란시스코 고야, 뱅크시를 꼽았다. 음악가 데이비드 보위 역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허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정돈된 아름다움보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욕망, 육체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며 "젊을 때와 늙었을 때의 작업이 모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작품은 하나의 인생 지도(map of life)와 같다"며 "나 역시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Damien Hirst MMCA Portraits_20261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젊은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로는 '질문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예술은 정치와 과학, 종교와 분리돼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인터뷰를 관통하는 한 문장을 남겼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힘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이미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불멸을 믿던 청년은 사라졌다. 대신 시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60세의 작가가 남았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는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허스트가 평생 붙들어온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삶과 죽음, 믿음과 욕망, 그리고 인간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서울에서 만난 허스트는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전은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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