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니 더 비극적"…남영동 대공분실서 배운 '6·10 민주항쟁'

기사등록 2026/06/07 09:00:00

최종수정 2026/06/07 10:36:20

민주주의 역사교육 체험·탐구 수업 현장

영성중 학생들 역사 체험 프로그램 참여

교육부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 일환

지난 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MOU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2026.06.01. 575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2026.06.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정예빈 기자 =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롱한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일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그 배경이 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직접 찾았다.

학생들은 수습 취재기자가 돼 옛 대공분실을 비롯한 민주화운동기념관 곳곳을 누비며 군사독재정권의 국가폭력 현장을 눈에 담고 기록했다.

학생들이 체험한 프로그램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관의 '추적 90분, 그곳이 알고 싶다'다. 교육부는 올해 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민주주의 역사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학생과 교원의 체험활동 활성화 및 민주시민교육 자료·프로그램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아울러 같은 달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학생 맞춤형 역사 체험·탐구 활성화'를 5대 과제 중 하나로 내걸었다. 학교 계획에 따른 역사 체험 경비를 지원하고, 역사과 교육과정 체계 등을 고려해 모든 학년에서 탐구·체험이 가능하도록 촘촘히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5월 각 시도교육청에는 역사 탐구·체험활동 예산 약 11억원이 배분됐고, 교육부는 박물관·기념관 등을 운영하는 정부 부처·지방자치단체·관련 기관들과의 교육 협력을 강화해 체험처를 넓혀가고 있다. 이날 영성중 학생 14명 역시 버스 임차 등을 지원받아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5층 조사실을 둘러보고 있다. 2026.06.01. 575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5층 조사실을 둘러보고 있다. 2026.06.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언론윤리강령이 적힌 프레스(PRESS) 목걸이를 목에 건 학생들은 실제 연행자들이 끌려갔던 대공분실 건물 후문으로 입장했다. 눈을 감고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이 가려진 채 끌려왔던 이들의 공포를 가늠했다.

건물에 들어선 학생들은 좁은 호송용 엘리베이터와, 연행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나선형 계단을 살폈다. 이후 엘리베이터와 빙글빙글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연행자들이 다다랐을 5층 조사실로 이동했다.

5층 복도에는 15개의 조사실이 양옆으로 엇갈려 있었다. 초록색 철문마다 층수 없이 작은 호수만 새겨져 있었고, 각 방에는 폭 300㎜의 좁은 수직 창과 완벽한 방음을 위한 흡음판이 설치돼 있었다. 벽면 일부에는 빨간색·노란색 페인트 흔적이 남아 있었고, 천장 속에는 석고 패널 뒤에 숨겨진 마이크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조사실 내부에 직접 들어가 벽을 손으로 짚으며 그 공간에서 벌어졌을 일을 생각해 보고 현장을 기록했다.

15개의 조사실 중 숫자 '9' 가 붙은 방 앞에서 학생들의 발길이 멈췄다. 유일하게 198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509호 '박종철 조사실'이었다. 1987년 1월 14일, 참고인 신분으로 끌려와 조사받던 박종철 열사는 이곳에서 물고문을 받다 욕조에 목이 눌려 숨졌다.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4층 벽면에 전시된 박종철 열사의 시체검안서를 보고 있다. 2026.06.01. 575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4층 벽면에 전시된 박종철 열사의 시체검안서를 보고 있다. 2026.06.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4층으로 내려간 학생들은 어둠 속 핀 조명이 밝히고 있는 벽면 앞에 섰다. 벽에는 박 열사의 시체검안서가 붙어 있었다. 학생들은 당시 박 열사를 검안했던 의사 오연상씨가 사망진단서를 두 줄로 긋고 그 아래 '시체검안서'라 고쳐 쓴 흔적, 사망 장소와 원인이 '미상'으로 적힌 것을 관찰했다. 이날 선임기자 역할을 맡아 학생들을 인솔한 유지현 교육강사는 해당 문서가 박종철의 사망이 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밝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설명했다.

이어지는 전시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 이후의 시간을 차례로 따라갔다. 학생들은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쳤던 박 열사 추모회, 전국 각지의 대규모 거리 시위,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종철 사건 진상 조작 폭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발족,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건, 6·10 민주항쟁, 그리고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겠다는 6·29 선언까지 격동의 흐름을 순서대로 둘러봤다. 학생들은 대공분실에서 고문받던 피해자들과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적었다.

3층에 들어서자 조사실 복도, 나선형 계단, 화장실, 대공분실 입구 등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 화면들이 대형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학생들은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던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이후 찾은 반장실에서는 큰 창 너머로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피해자가 갇혔던 비좁은 조사실과 대척점에 선 공간으로 피해자들의 일상을 빼앗으며 같은 시대를 다르게 살아간 가해자들이 머물던 곳이다.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벽면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26.06.01. 575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예빈 기자 = 경기 영성중학교 역사 동아리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1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벽면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26.06.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학생들은 고문실에 전시된 각종 도구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벽에 귀를 대고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실제 발언과 목소리도 들었다.

대공분실 건물을 나온 학생들은 신관으로 자리를 옮겨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를 디지털 및 체험 콘텐츠로 만났다. 헌법 조항을 직접 받아쓰고, '임을 위한 행진곡' 등 시위 현장에서 실제로 불렸던 노래를 들으며 기억에 남는 노랫말을 적었다.

체험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교과서나 매체를 통해 접하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10 민주항쟁의 무게를 새로이 실감했다고 말했다.

3학년 강현준 학생은 "책이나 영화 같이 직접 체험하고 만져볼 수 없는 것들로만 봐서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며 "직접 와서 체험해 보니 훨씬 더 비극적이고, 당시 민주화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2학년 김수현 학생은 "여기 와서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인지 더욱 알게 됐다"며 "생각보다도 현실이 더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돼 이런 현장 답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담당 교사인 이종관 교사도 체험·탐구 수업의 가치를 강조하며 학교 역사 체험활동 지원이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 교사는 "교과서에 활자로 남아 있는 역사를 아이들이 공부하다 보면 그 역사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느끼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교과서가 갖지 못하는 힘이 현장에 있고, 현장에 와봐야 아이들이 몸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 현장에 온 친구들은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돼도 '민주주의', '6·10 민주항쟁', '남영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몸이 기억하는 역사가 분명히 일상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역사 체험활동을 더 활성화하는 게 의미 있다"며 "많이 지원돼서 학교 선생님들이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 없이 아이들과 역사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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