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서 훔쳤다…'왜 끌리는 브랜드에는 틈이 있을까'

기사등록 2026/06/06 00:00:00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현대미술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빈자리라는 것을.

신간 '왜 끌리는 브랜드에는 틈이 있을까''(흐름출판)는 현대미술의 여백과 불완전성의 미학이 어떻게 강력한 브랜드 전략으로 이어졌는지 추적한다.

저자는 10년 차 마케터이자 설치미술 작가로 활동하며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에서 발견한 공통 원리를 '갭 디자인(Gap Design)'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책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채우면 구경꾼이 되고, 틈을 내면 주인공이 된다."

오늘날 제품의 품질과 브랜드 메시지는 상향 평준화됐다. 기업들은 더 많은 정보와 정교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빨리 브랜드를 잊는다. 저자는 그 이유를 '개입할 틈의 부재'에서 찾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현대미술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피카소의 '황소' 연작은 열한 단계에 걸쳐 형태를 덜어내며 결국 선 몇 개만 남긴다. 하지만 오히려 그 순간 황소의 본질은 더욱 선명해진다. 저자는 이를 '잘라내기' 전략으로 해석한다. 설명을 줄일수록 관객은 스스로 의미를 채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의 거대한 신생아 조각은 익숙한 대상을 낯선 규모로 전환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다니엘 아샴은 미래의 유물이 현재에 나타난 것 같은 '상상의 고고학' 작업으로 시간의 감각을 뒤집는다. 박서보의 묘법 연작은 작가의 의도를 비워낸 자리에 관람자의 경험이 스며들게 한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의 퐁다시옹 카르티에(Fondation Cartier)에선 극사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 론 뮤익(RON MUECK) 전시가 한창이었다. *재판매 및 DB 금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의 퐁다시옹 카르티에(Fondation Cartier)에선 극사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 론 뮤익(RON MUECK) 전시가 한창이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저자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전략을 '거리두기', '충돌하기', '경계넘기', '물들이기', '드러내기', '잘라내기', '비워두기' 등 일곱 가지 갭 디자인으로 체계화한다.

흥미로운 점은 책이 미술을 교양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대미술이 오랫동안 실험해온 '해석의 여백'을 브랜드와 콘텐츠, 마케팅 전략으로 번역하는 데 집중한다. 젠틀몬스터, 무인양품, 유니클로, 미스치프 등의 사례가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세밀한 그림은 정육점 주인에게 주고, 마지막 선 하나는 주부에게 주어야지"라는 피카소의 일화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읽힌다. 전문가가 독점하던 해석의 권한을 관객에게 넘기는 순간, 예술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브랜드 전략을 이야기하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참여에 대해 질문한다. 설명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정답보다 해석의 여백에 끌린다. 현대미술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그 비밀을 비즈니스의 언어로 풀어낸 흥미로운 시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현대미술에서 훔쳤다…'왜 끌리는 브랜드에는 틈이 있을까'

기사등록 2026/06/06 00:00:00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