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영 "어쩌다 보니 '국민 국어선생님'…AI냐는 질문도 받아요" [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6/04/23 09:46:38

최종수정 2026/04/23 11:16:24

국립국어원 상담연구원 맞춤법 상담기 담은 책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출간

"질문때 상황·맥락 자세히 설명하면 정확도 높아져요"

"AI, 온기까지 대신 못해…판별력 아직은 인간이 우세"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현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이현영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의 이야기를 담은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출간했다. 2026.04.2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현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이현영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의 이야기를 담은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출간했다. 2026.04.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째깍 째깍. 오전 8시59분50초. 국립국어원 국어생활종합상담실에는 적막이 흐른다. 10년 차 상담 연구원 이현영씨는 숨을 가다듬고 되뇐다.

"좋아. 들어와."

오전 9시 정각, 전화벨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하루 상담 업무의 시작을 알린다.

이 씨는 최근 펴낸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한겨레출판)에서 국립국어원 상담 연구원들의 일상을 풀어냈다. 처음에는 막막한 마음에 상담창을 3분쯤 늦게 열기도 했던 신입 시절부터, 이제는 거침없이 응대하는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현장 기록이다.

책에는 상담실로 걸려온 수많은 질문과 그에 답하며 느낀 고민과 생각이 담겼다.

"'고객님'은 틀린 표현인가요?", "저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저를 'OO씨'라고 부르는 게 맞나요?",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표현이 틀린 건가요", "'갈빗살'은 붙이는데, '닭 다리 살'은 왜 띄어 쓰나요",  "킹크랩 시가는 '시가(市價)인가요, '시가(時價)'인가요?"처럼 맞춤법과 호칭, 언어예절을 둘러싼 질문들이다.

책에는 보다 정확한 답변을 얻는 요령도 담겼다. 질문 상황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록 정확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상담실 최전선에서 마주한 살아 숨쉬는 언어의 풍경, 자주 반복되는 질문 20가지에 대한 답도 함께 실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현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이현영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의 이야기를 담은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출간했다. 2026.04.2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현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이현영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의 이야기를 담은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출간했다. 2026.04.22. [email protected]

국립국어원은 국민의 언어생활을 돕기 위해 상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반 '우리말365', 전화 상담 '가나다전화', 누리집 게시판 '온라인가나다'가 있다.

이 씨는 '우리말365'와 '가나다전화'를 통해 직접 질문에 답하는 상담 연구원이다.

그는 "1991년 시작한 상담실 사업이 35년간 이어지며 해마다 수십만 건의 답변이 오갔다"며 "그만큼 국민이 맞춤법에 관심이 많고, 동시에 어렵게 느낀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시간 상담이 이어지다 보니 "지금 답하는 분, 인공지능(AI) 아닌가요?"라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상담에 AI는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 이씨는 '우리말365' 상담 과정에서 "고맙습니다"를 "고맙슨비다"로 잘못 입력했다가 곧바로 정정한 동료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AI가 상담원의 온기까지 대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질문의 맥락과 의도를 짚어야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죠. 맥락은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되는데, 아직은 사람이 그런 부분을 더 잘 판별하는 것 같아요.”

그는 국어 선생님을 꿈꿨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상담 연구원으로서 '온 국민의 국어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상담이 가장 몰리는 시기는 3·4·9·10월이다. 학생들의 시험 기간과 겹친다. 정답을 직접 알려줄 수는 없지만, "시험 문제는 아닌데요", "그냥 궁금해서요"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다 보면 상담원들은 금세 알아차린다고 했다.

"학생들 문의는 반가워요. 궁금한 게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국어원이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현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이현영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의 이야기를 담은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출간했다. 2026.04.2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현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이현영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의 이야기를 담은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출간했다. 2026.04.22. [email protected]

성적과 무관한데도 남녀노소가 맞춤법을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불안'에서 이유를 찾았다. 맞춤법이 교양과 능력을 드러내는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주눅 들 필요는 없다고 했다.

"틀리면 좀 어때요. 규범은 소통을 돕기 위한 도구일 뿐이잖아요. 손질이 필요한 낡은 규범을 지적해 주시는 분들은 고맙기만 하죠."

물론 상담 연구원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잘못된 답변 하나가 곧 국립국어원의 공식 입장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다.

"늘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답하려고 해요. 눈 쌓인 길에 첫발을 딛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지칠 때도 있다. 고성과 욕설을 듣거나, 상담원 개인에게 항의하는 전화를 받을 때면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 힘이 되는건 동료들이다. 서로 바쁜 와중에도 화장실을 다녀올 틈을 만들어주고, 어려운 질문은 함께 머리를 맞댄다. 답변 내용도 서로 검토한다. 연구원들이 매일 다짐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균질하고 정확하게 답하자.'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훈민정음'이다. 2025.06.0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훈민정음'이다. 2025.06.09. [email protected]

그럼에도 질문한 사람이 궁금증을 풀고 고맙다고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날 선 질문으로 시작하셨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 일은 늘 긴장이면서도, 배움이고, 또 따뜻함입니다."

그에게 언어는 남을 평가하는 잣대가 아니다.

"언어는 물결 같아요. 잔잔해 보여도 계속 흐르죠. 그렇게 변하면서 늘 우리 곁에 있는, 친근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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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영 "어쩌다 보니 '국민 국어선생님'…AI냐는 질문도 받아요" [문화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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