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초중고생 자살, 하루 0.7명…가정·학업·대인관계 '삼중 압박'[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①]

기사등록 2026/05/01 07:00:00

최종수정 2026/05/01 08:17:56

학생 242명 스스로 생 마감…3년 연속 늘어

5년 새 23% 증가…고등학생 비중 60% 차지

중학생 41%↑…낮은 연령대로 확산 움직임

가정·정신건강·학업 복합적…'다중 스트레스'

개인이 아닌 구조적 문제…"위기 조기 포착"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라 부르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지금 병들고 있다. 초·중·고생들은 자살에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다. 학업 경쟁, 관계의 단절, 정서적 지지의 부족 등으로 많은 학생들이 단순히 성적이나 진로 문제를 넘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사회로부터 고립된 은둔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를 떠난 이후나 사회 진입의 문턱에서 좌절을 경험한 청년들이 더 긴 시간 방 안에 머물고 있다. 학대받는 아동·청소년 문제도 심각하다. 가정과 보호기관에서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서적 학대를 받은 아이들의 삶에는 깊은 생채기가 남는다. 이번 기획은 아동-청소년들의 위험한 삶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집중 조명하고 구조적 원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서울=뉴시스]이다솜 신유림 기자 = <1부: 자살에 노출된 초중고생>

그날 이후 집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던 순간을 눈앞에서 목격한 뒤 고등학생 A(19)양에게 집은 '사건이 벌어진 곳'이었다.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눈앞에서 목격한 그날의 기억은 거대한 파도가 돼 일상을 집어삼켰다.

가족이 전화를 받지 않는 짧은 공백조차 견디지 못했다. 전화를 조금만 늦게 받아도 누군가 또 죽었을지 모른다는 공황 발작이 찾아왔다. 벨이 몇 번 울리다 끊기면 머릿속에서는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이 들면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고 숨이 막혀왔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공포였다. 익숙해야 할 집 안의 공기, 문소리, 정적까지 모두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A양은 혼자 집에 머무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은 점점 일상을 잠식했다.

슬픔과 죄책감을 잊기 위해 매일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수업 도중 갑자기 눈물을 쏟거나,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학교생활은 물론 기본적인 일상 기능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로 무너졌다. 감당할 수 없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죄책감 끝에 A양은 결국 어머니가 떠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던지려 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아이들이 보내는 소리 없는 비명, 이것은 비단 A양만의 비극이 아니다. 지난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초·중·고생은 242명, 하루 평균 0.7명이 세상을 등졌다. 이틀에 한 명 이상이 스스로의 삶을 놓아버린 셈이다. 이는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은 수준이다.

더 심각한 점은 학생 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자살 사망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학업·대인관계 압박에 지친 청소년들이 점점 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경고음으로 읽힌다.

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초·중·고생 자살 사망자는 ▲2021년 197명 ▲2022년 194명 ▲2023년 214명 ▲2024년 221명 ▲2025년 242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소폭 감소한 뒤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3년 연속 상승 흐름이 이어졌다. 지난해 사망자는 2021년과 비교해 22.8% 늘어나면서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초·중·고 전체 학생 수가 지난 2021년 532만명에서 지난해 501만명으로 5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음에도 사망자 수는 늘어난 것이다.

학교급별로 보면 고등학생 비중이 가장 컸다. 지난해 기준 고등학생 자살 사망자는 146명으로 전체의 60.3%를 차지했다. 입시와 진로 부담이 집중되는 고등학교 시기에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구조다.

중학생들의 위기 신호도 감지됐다. 중학생 자살 사망자는 2022년 64명에서 지난해 90명으로 40.6% 늘었다. 자살 위험이 고등학생 중심에서 점차 저연령대로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초등학생도 매년 꾸준히 발생해 2023년에는 15명까지 늘었다.

가정·학업·관계 '삼중 압박'…청소년 자살 경고 신호

자살 원인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복합적이다. 학생자살사망사안보고서에 따른 '교사 추정 원인'(복수 응답)을 보면 지난해 가장 많이 지목된 원인은 가정 문제로 77건에 달했다. 이어 정신과적 문제 58건, 학업·진로 문제 54건, 대인관계 문제 38건 순이었다.

특히 가정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5년간 가정 문제는 ▲2021년 56건 ▲2022년 53건 ▲2023년 58건 ▲2024년 74건 ▲2025년 77건으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부모 갈등, 이혼, 방임, 경제적 어려움 등 가정 내 불안정성이 청소년 정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정신과적 문제 역시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34건에서 ▲2022년 67건으로 급증한 뒤 ▲2023년 68건 ▲2024년 70건 ▲2025년 58건으로 집계됐다. 수치는 소폭 감소했지만,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가 누적된 학생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학업·진로 문제는 입시 경쟁 구조와 맞닿아 있다. ▲2021년 35건 ▲2022년 52건 ▲2023년 35건 ▲2024년 49건 ▲2025년 54건으로 등락을 반복했지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성적, 진학, 진로에 대한 부담이 학생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인관계 문제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2021년 23건 ▲2022년 27건 ▲2023년 57건 ▲2024년 39건 ▲2025년 38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3년 급증 이후 높은 수준이 이어지며 또래 관계 갈등과 학교폭력, 고립감 등이 자살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청소년 자살은 구조적 문제…조기 발견·관리 시스템 필요

문제는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정 불화로 우울감을 겪던 학생이 성적 압박과 친구 관계 갈등까지 동시에 겪는 등 '다중 스트레스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난해 '원인 미상' 사례가 79건에 달한다는 점이다. 자살 원인을 특정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이는 자살 청소년이 마지막 순간까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거나 위험 신호를 보내더라도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 위기 신호는 자살 직전에 나타나기 보다 오래 전부터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울과 불안, 잦은 결석, 친구와의 단절 등이 대표적인 경고 신호로 꼽힌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런 신호를 발견하더라도 상담 인력 부족과 사후관리 공백으로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청소년 자살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학생이 가정 문제와 학업 스트레스, 정신 건강 악화와 또래 관계 갈등을 동시에 겪는 경우가 많아 단일 정책으로는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가정, 학교, 사회 전반이 연결된 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조기 발견 시스템 강화와 함께 지속적 관리 체계 구축을 강조했다. 단발성 상담이 아니라 장기적인 정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 예산과 인력 확대뿐 아니라, 위기 학생을 조기에 포착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관리 시스템 정교화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받는 전반적인 스트레스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며 "자살 고위험군 학생을 지원하려면 보다 정교하고 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상담교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학교 차원에서 고위험군 학생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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