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의 확률에 건 국운, 'ICT 강국 韓' 마중물 되다[CDMA 30년①]

기사등록 2026/04/12 08:00:00

'1인 1전화' 이끈 CDMA가 바꾼 대한민국 경제 지도

삼성전자 '수출 95%' 신화 뒷받침한 무선통신 자립의 역사

"기술 자립 통해 추격자서 선도자로 전환"

[대전=뉴시스] ETRI의 CDMA 상용화 기술이 IEEE 마일스톤에 등재됐다. (사진=ETRI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전=뉴시스] ETRI의 CDMA 상용화 기술이 IEEE 마일스톤에 등재됐다. (사진=ETRI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은비 기자 = "공기가 있는지 모르고 살듯, 인프라 기술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인프라가 우리나라를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최강국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1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립 50주년 기념식. 공로패를 받은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소감은 묵직했다. 우리가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자유롭게 데이터를 쓰고 통화하는 '당연한 일상'이 사실은 수십 년 전 사활을 걸었던 기술 독립의 결과라는 점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1가구 1전화에서 1인 1휴대폰 시대로

대한민국 통신 역사는 크게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1980년대 등장한 전전자교환기(TDX)가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며 유선통신 인프라의 뼈대를 세웠다면, 1990년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은 '1인 1전화'라는 무선통신 혁명을 완성했다.

CDMA는 하나의 주파수 대역을 고유 코드로 구분해 여러 사람이 간섭 없이 동시에 통화할 수 있게 한 2세대(2G) 이동통신의 핵심이다. ETRI가 분석한 지난 50년 연구 성과에 따르면, CDMA 기술 하나가 거둔 경제적 파급 효과만 무려 13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전체 연구 성과 중 41.6%를 차지한다. 다음 메모리반도체(17.9%), TDX(14.3%) 순이다. 그만큼 ICT 산업과 경제 성장을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다.

무모해 보였던 'CDMA 단일 표준' 승부수…韓은 어떻게 걷게 됐나

사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상황은 절박했다. 무선 가입자는 폭증하는데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통화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당시 글로벌 대세는 유럽식인 '시분할방식(TDMA)'이었으나, 우리 정부와 연구진은 가입자 수용 능력이 훨씬 뛰어난 CDMA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CDMA는 미국의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퀄컴'이 갓 개발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기술이었다.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절박함 속에 ETRI와 SK텔레콤(당시 한국이동통신), 삼성전자, LG전자는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라는 기적을 쐈다. 그 해 1월 삼성전자가 CDMA 폰 'SCH-100'을 출시하고 한국이동통신이 4월 서울과 수도권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추격자'였던 대한민국이 단숨에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올라선 순간이다. 이후 9개월 만에 전국망이 구축되고 전국민의 인프라로 빠르게 확산됐다.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SK텔레콤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삼성전자, LG전자와 19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기술의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 SK텔레콤은 당시 사용했던 휴대폰을 서울 을지로 사옥에 전시했다. 2024.06.10. siming@newsis.com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SK텔레콤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삼성전자, LG전자와 19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기술의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 SK텔레콤은 당시 사용했던 휴대폰을 서울 을지로 사옥에 전시했다. 2024.06.10. [email protected]


전국망 구축 후 전국민 인프라로 확산…다회선·사물인터넷 시대

기술 자립의 효과는 파격적이었다. 1998년 1000만 명을 돌파한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이듬해 유선전화 수를 추월했다. 2000년대 초반 보급률은 70~80%로 대중화됐고, 휴대폰은 이제 단순한 통화 도구를 넘어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기기로 확장됐다.

산업 지형도 달라졌다. 1999년만 해도 삼성전자 휴대폰의 60%는 내수용이었고 수출은 40%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생산량의 95% 이상이 해외로 수출한다. 연간 2억 대가 넘는 갤럭시 신화의 뿌리에 바로 CDMA라는 기술 주권이 있었던 셈이다.

이내찬 한성대 교수는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라는  기술 자립을 통해 국내 통신 서비스와 단말기 산업을 잇는 강력한 IT 생태계를 형성했다"며 "이 역사적 전환점이 오늘날 글로벌 ICT 강국 코리아를 만든 기반"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지난 1996년 4월 1일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개시식에서 시험통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SKT 제공) 2026.04.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지난 1996년 4월 1일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개시식에서 시험통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SKT 제공) 2026.04.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0.1%의 확률에 건 국운, 'ICT 강국 韓' 마중물 되다[CDMA 30년①]

기사등록 2026/04/12 08:00:00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