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바꾸니, 삶도 바꼈어요"…환자 마음 보듬는 '이 병원'[같이의 가치]

기사등록 2026/04/06 01:01:00

최종수정 2026/04/06 05:34:24

분당서울대병원, 주거환경 개선 프로젝트 '집으로'

상급종합병원 최초…교직원 자발적 후원금으로

[서울=뉴시스] 주거환경 개선 후 적극적인 재활을 통해 자립에 성공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주거환경 개선 후 적극적인 재활을 통해 자립에 성공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집을 나설 때마다 무서웠어요. 또 넘어질까봐요."

집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골절로 수술 치료를 받고 퇴원을 앞뒀던 유모(82) 씨는 막막함부터 앞섰다. 병원 안은 손잡이와 미끄럼 방지 바닥으로 안전하게 설계돼 있었지만, 20년 넘게 살아온 집은 달랐다. 현관 문턱, 좁은 화장실, 미끄러운 욕실 바닥이 낙상 위험 요소로 가득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의료진과 낙상 예방 전문 시공업체로 구성된 '집으로'팀이 유씨의 집을 찾았다. 벽돌 계단을 평탄한 합성 데크로 교체하고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현관 문턱을 없애고, 주요 동선마다 안전 손잡이를 달았다. 거실과 욕실 바닥엔 미끄럼방지 처리도 했다. 이제 유씨는 긴장하지 않고 집을 나설 수 있게 됐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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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모(63) 씨는 집을 드나들 때마다 보일러실 문을 붙잡아야 했다. 경기 이천의 자택엔 계단뿐, 잡을 것이 없었다. '집으로'팀은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경사로를 깔고, 기둥형 안전 손잡이를 설치했다. 환자의 몸 상태와 생활 방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를 직접 치료해온 의료진이었기에 가능한 맞춤 지원이었다.
  
병원 밖에도 위험은 도처에 있다. 2025년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75세 이상 입원 환자의 72.5%가 추락·낙상으로 인한 입원이며, 장애율과 치명률은 각각 83.3%와 61.3%에 달한다. 낙상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요양원도 병원도 아닌 바로 '집'이다. 전체의 43.6%를 차지한다. 누군가에겐 가장 편안한 공간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에겐 가장 위험한 공간인 것이다.

[서울=뉴시스] 경기 안성시 유모씨의 집 변화. 흔들리던 벽돌 계단이 손잡이가 달린 안전한 계단으로 바뀌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경기 안성시 유모씨의 집 변화. 흔들리던 벽돌 계단이 손잡이가 달린 안전한 계단으로 바뀌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분당서울대병원은 이 현실에 주목했다. 퇴원 계획을 상담하던 의료사회복지사가 마주한 장면이 출발점이었다. 치료는 끝났지만 집이 안전하지 않아 다른 곳에 임시 거처를 두는 환자, 낙상으로 골절이 재발해 다시 입원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재활의학과 의료진이 뭉쳤다. 2020년 시작된 주거환경 개선 프로젝트 '집으로'는 상급종합병원 중에선 전례 없는 시도였다.

'집으로'가 여느 지원 사업과 구별되는 것은 환자를 직접 치료한 의료진이 가정 방문에 동참한다는 점이다. 재활의학과 의사가 주거환경 평가 오더를 내면, 의료사회복지사가 주거 개선 필요 여부를 파악해 대상자를 선정한다. 이후 간호사·작업치료사·의료사회복지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환자의 신체 상태와 생활 동선에 맞는 개선 사항을 점검하고, 낙상 예방 전문 시공업체가 실제 공사를 맡는다. 손잡이 설치, 문턱 제거, 경사로 시공에서부터 지붕 방수, 욕실 개조, 싱크대 높이 조정까지. 진료실에서 쌓은 임상 정보가 집 안 구석구석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주거환경 개선이 단순히 낙상을 막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희귀난치 지체장애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온 정모(56)씨는 퇴원 후에도 좌식생활을 해야 했고, 집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무기력감이 깊어지는 나날이었다. '집으로'팀은 싱크대, 주방후드, 정수기를 정씨의 신체 조건에 맞게 높이를 조정해 설치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효과는 컸다. 스스로 밥을 짓고, 물을 끓이고, 부엌에 설 수 있게 된 정씨는 이후 직업 재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복권방을 운영하며 자립에 성공한 장애인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집이 바뀌자 삶이 바뀐 것이다.
[서울=뉴시스] 경기 이천시 이모씨의 집 변화. 보일러실 문을 잡고 이동해야 했지만, 휠체가 오를 수 있는 경사로가 생겼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경기 이천시 이모씨의 집 변화. 보일러실 문을 잡고 이동해야 했지만, 휠체가 오를 수 있는 경사로가 생겼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비용은 분당서울대병원 교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환자돕기후원회 '스누비안나눔회'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의 후원으로 충당된다. 1호부터 8호까지는 스누비안나눔회가 지원했고, 사업이 알려지면서 외부 후원도 이어졌다.

 GH가 지역사회 연계형 의료복지 사회공헌 공모를 진행하자 병원이 직접 지원해 선정됐고, 9호부터는 GH가 후원에 합류했다. 치료비에 생활고까지 겹친 환자들이 비용 부담 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다.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총 15가구, 누적 지원금은 80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진행한 7가구 전원에서 낙상 위험도가 감소한 것으로 평가됐다. 올해도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김태우 분당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집으로 프로젝트는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안전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사업"이라며 "지역사회 돌봄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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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바꾸니, 삶도 바꼈어요"…환자 마음 보듬는 '이 병원'[같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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