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될까…"국가 정체성" vs "역사 왜곡"

기사등록 2026/03/31 18:10:59

최종수정 2026/03/31 20:22:24

31일 '광화문 현판 토론회'…기존 한자 현판에 한글 현판 추가 설치 논의

찬성 측 "한글은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고 표현하는 요소, 국가 정체성"

반대 측 "과거 창조는 옛 사람 행위 부정하는 것…경복궁 복원 길 잃어"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식을 찾은 시민들이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향하고 있다. 2023.10.15.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식을 찾은 시민들이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향하고 있다. 2023.10.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광화문 현판 추가 설치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찬성 측은 한글을 통한 "국가 정체성"을 주장했고, 반대 측은 "역사 왜곡"이라며 맞섰다.

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열렸다.

광화문 현판 논의는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기존 한자 현판을 유지하며 한글 현판을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하며 시작됐다.

광화문 현판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흥선대원군 때 다시 지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친 뒤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친필 현판이 설치됐다. 2010년 흰색 바탕에 검은 글자로 된 한자 현판으로 바뀌었다가, 고증을 거쳐 2023년 검정 바탕에 금박 글씨의 현판을 새로 내걸었다.

2024년 유인촌 당시 문체부 장관이 한글 현판 교체를 주장했지만, 최응천 당시 국가유산청장이 반대한 바 있다.
[서울=뉴시스][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31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열렸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2026.03.31
[서울=뉴시스][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31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열렸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2026.03.31

한글 현판 설치에 찬성하는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이날 '광화문에 '국가 정체성' 밝히는 한글 현판을 달자'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대표는 "문화유산이라는 범주 차원을 넘어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더 넓고 높은 범주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며 한글 현판 추가를 주장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팡테옹 등 원형 보존을 넘어 재해석을 더해 더 큰 가치를 발휘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원형 보존과 현대적 재해석, 활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대 정신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한 2004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들어 "한글은 과학적이고 애민 사상의 결과라 자랑스러운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고 표현하는 요소이기에 국가의 정체성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처음에는 한글 현판만 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자와 한글) 두 개가 공존한다면 우리 역사가 이렇게 옮겨왔다는 것과 문화사적 지위가 어떤 지를 세계인과 우리 후손에게 알려주는 새로운 원형으로써의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은 현재 한자 현판에 대해 "과거의 한자 문화를 무의미하게 세습하고 있는 박제된 유산"이라며 "우리의 자랑인 훈민정음해례본 글꼴로 된 한글 현판 '광화문'을 추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자 당당한 요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1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열렸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31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열렸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글 현판 추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문화유산 훼손과 복원의 진정성을 우려했다.

발표자로 나선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광화문이 시류에 흔들리게 하지 말아야'를 주제로 발언했다.

최 전 소장은 과거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광화문이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의 물질 증거를 조작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옛 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한글 현판 추가에 반대했다.

최 장관이 앞서 국무회의에서 중국 자금성 현판에 한자와 만주어가 함께 쓰인 사례를 이재명 대통령에 설명한 부분에 반박하기도 했다.

최 전 소장은 "자금성은 한족이 명나라 때 완성했고, 만주족인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한 후 자금성을 사용하면서 현판에 만주어를 추가했다"며 "조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지만, 국가의 모든 행정과 교육은 한문을 근간으로 이뤄졌다"고 비교했다.

그러면서 "없었던 과거를 창조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에 개입하고 옛 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주 서일대학교 건축과 교수는 30년 넘게 진행되어온 경복궁 복원 노력이 훼손될 것을 우려했다. 홍 교수는 "그 어떤 고증 기록에도 없는 한글 현판을 다는 순간, 원형에 최대한 가까운 복원이라는 기준과 복원에 의한 성과물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원형 복원을 부정하는 순간, 경복궁 복원도 방향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한자와 한글 현판을 병기하는 것은 '번역'의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며 "우리에게 광화문은 번역의 대상이 아니다. 한자는 우리 문화의 엄연한 실체다. 이는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31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열렸다. 2026.03.31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31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열렸다. 2026.03.31

참석자들의 의견 발표가 끝난 뒤에는 방청객들의 의견과 질문이 이어졌다.

한 시민은 "한글의 우수성은 공감하지만, 광화문 현판에 넣는 것은 문화재 보존에 대한 기본 정신이 어긋난 것 같다. 원형을 보존하는 것과 상징을 높이는 거는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역사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은 "한문이 중국에서 온 건 맞지만, 몇 천년의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은 한문으로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며 "카페나 아파트 이름은 영어로 쓰면서 굳이 몇 백년된 역사를 가진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는 게 K-컬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다"며 반대 의견을 보였다.

이에 이 대표는 "광화문은 상징물이자 문화유산"이라며 분리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과거 한자에서 한글을 사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는 점을 들며 "그런 점때문에 국가 정체성으로서도 우리의 미래 문화를 보여주는 좌표로, 또 세계적인 문화사적인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청객은 "국가의 정체성, 국민의 자존심을 위해서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다른 참석자는 "민간에서는 한글 간판 운동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민간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있는데 아직도 광화문 현판을 가지고 논쟁하는 게 마음이 아프다"는 의견도 냈다.

 한편, 문체부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며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음 달 초 문체부 누리집에 의견을 남길 수 있는 게시판을 개설하고, 전문가 의견 조사와 대국민 설문조사 등을 함께 진행해 정책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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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될까…"국가 정체성" vs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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