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연함"…'삭발'을 선택한 정치인들

기사등록 2026/03/29 08:57:15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박형준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계단에서 열린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관련 긴급기자회견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2026.03.23.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박형준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계단에서 열린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관련 긴급기자회견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2026.03.2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종민 기자 = 정치인의 삭발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훼손함으로써 의지의 결연함을 증명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리는 배수의 진이다.

심리학적으로 삭발은 '자해적 투쟁'의 성격을 띠지만, 정책적 대안이 막히거나 정치적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정치인들은 이 '상징의 정치'를 통해 여론의 관심을 환기하고 결속력을 극대화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삭발 소식들은 이러한 '삭발의 정치학'이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투쟁의 언어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주=뉴시스] 김영환 충북지사가 19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컷오프 결정에 반발해 삭발하고 있다. (사진=김영환 충북지사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청주=뉴시스] 김영환 충북지사가 19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컷오프 결정에 반발해 삭발하고 있다. (사진=김영환 충북지사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감행했다. 평소 합리적이고 온건한 보수 논객 이미지를 구축해 온 그가 머리를 밀어버린 것은 이례적인 결단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시장은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논리와 합리로 정치를 풀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으나, 국가와 지역의 미래가 걸린 일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면서까지 지역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극적인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반면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삭발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김 지사는 이번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공천 배제) 결정이 내려지자 이에 항의하며 삭발에 나섰다. "누가 감히 누구의 목을 치려 하는가"라는 격정적인 표현과 함께 SNS에 미용실 삭발 영상을 공개한 그의 행보는 당 지도부를 향한 정면 돌파 의지를 담고 있다. 중앙당의 결정에 순복하기보다 자신의 지지세를 결집해 공천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선명성을 강조한 전략이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지방선거 국민의힘 포항시장 예비공천에서 컷오프 탈락한 김병욱 전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공정경선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2026.03.23.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지방선거 국민의힘 포항시장 예비공천에서 컷오프 탈락한 김병욱 전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공정경선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2026.03.23. [email protected]
한국 정치사에서 삭발이 투쟁의 상징으로 등장한 것은 1987년 박찬종 전 의원이 시초로 꼽힌다. 당시 그는 김영삼·김대중 두 지도자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머리를 깎았다. 이후 삭발은 소수 정당이나 약자가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중반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 등 집단 삭발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으며, 2019년에는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제1야당 대표로서는 이례적인 삭발을 선보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심리학적으로 삭발은 '자기 거세' 혹은 '자해적 투쟁'의 성격을 띤다. 인간에게 머리카락은 자존심과 개성을 상징하는데, 이를 스스로 제거하는 모습은 대중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과 함께 비장미를 전달한다. 특히 정책적 대안이 먹히지 않거나 정치적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정치인들은 신체를 도구 삼아 지지층을 결집하고 여론의 관심을 환기하는 이른바 '상징의 정치'에 의존하게 된다.

[천안=뉴시스] 최영민 기자=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대전서구을)이 28일 충남 천안시 국립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대전충남 통합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삭발을 단행했다. 2026.02.28 ymchoi@newsis.com
[천안=뉴시스] 최영민 기자=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대전서구을)이 28일 충남 천안시 국립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대전충남 통합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삭발을 단행했다. 2026.02.28 [email protected]
하지만 삭발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항상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정책 대결과 협상이 실종된 자리에 극단적인 퍼포먼스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삭발이 잦아질수록 그 희소성과 진정성은 희석될 수밖에 없으며, 자칫 '정치적 쇼'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최근 김 지사의 삭발 지지 집회에서 일부 노인들이 무료 이발인 줄 알고 참여했다가 엉겁결에 머리를 깎였다(충북MBC 보도)는 논란은 삭발이 지닌 비장함에 찬물을 끼얹는 촌극이 되기도 했다.

결국 삭발의 완성은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전까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박형준 시장의 삭발이 특별법 통과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 김영환 지사의 삭발이 공천 뒤집기라는 정치적 승리로 귀결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삭발이라는 강렬한 장면 이후에 따라오는 것은 정치인의 실력과 책임이라는 냉혹한 평가라는 점이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 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의 조속한 입법’ 촉구 대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2026.02.09.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 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의 조속한 입법’ 촉구 대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2026.02.0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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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6/03/29 08:57:15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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