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우릴 설명하지 않게"…'해체 15년만 돌아온' 씨야, 비로소 단단한 나무

기사등록 2026/03/30 06:00:00

남규리·김연지·이보람, '씨야 재결성 기념' 인터뷰

오늘 신곡 '그럼에도 우린' 발매…당일 첫 팬미팅

5월 정규 4집 발매…18년 만의 정규음반

[서울=뉴시스] 씨야.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씨야.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어떤 기다림은 끝내 도착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한다. 15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의 유행이 뜨고 지기에 충분히 긴 세월이지만, 가슴 깊은 곳에 활자처럼 각인된 목소리를 지워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 남성 중심의 발라드 생태계에서 고유의 서사를 써 내려갔던 여성 보컬 그룹 '씨야(남규리·김연지·이보람)'가 마침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여인의 향기', '사랑의 인사', '구두', '미친 사랑의 노래' 등 히트곡을 냈다. 가창력과 하모니가 특징이다. 데뷔 첫해 서울가요대상, SBS 가요대전, MKMF 등 주요 시상식의 신인상을 석권했다. 2007년에는 골든디스크 시상식 디지털 음원 부문 대상을 받았다. 특히 남성 발라드 그룹 중심의 시장에서 여성 3인조 보컬 그룹으로 성공을 거두며 이후 등장한 여성 보컬 그룹들의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이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단순한 '추억 소환'을 넘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주체적인 생명력을 뿜어내는 아티스트로서의 제2막을 선언했다.

해체 이후 이들의 재결합은 거창한 기획이 아닌, 남규리가 홀로 행사를 준비하며 이보람에게 자정 무렵 반주(MR)를 빌려달라 청했던 사소한 통화에서 발원했다. 삶의 가장 극적인 변곡점은 이토록 우연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법이다. 15년 만인 30일 오후 6시 신곡 '그럼에도 우린' 발매를 앞둔 지난 26일 서울 잠실 어바웃프로젝트라운지에서 마주한 세 멤버의 얼굴에는 지난한 계절을 통과해 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한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
[서울=뉴시스] 씨야 남규리.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씨야 남규리.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남규리, 꽃의 시대를 지나 나무의 시대로

"우리는 이미 꽃 피는 시간이 지났어요. 이제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꽃이 아니라, 계절을 견디는 단단한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남규리의 입술을 타고 나온 언어들은 한 편의 미학적인 선언문과도 같았다. 과거의 씨야가 철저히 기획되고 조명받아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던 '꽃'이었다면, 지금의 씨야는 비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나이테를 넓혀온 '나무'라는 것이다. 상실과 아쉬움으로 점철됐던 과거의 서사를 온전히 껴안되, 결코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겠다는 결연함이 돋보였다.

"과거엔 상업적으로 기획된 그룹이었죠. 하지만 지금 저희가 직접 법인을 설립하고 다시 모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입니다."

특히 대중의 뇌리에 '아픈 손가락'으로 남겨진 씨야의 꼬리표를 끊어내겠다는 다짐은 깊고 묵직했다. 남규리는 자신들이 작사에 참여한 신곡 '그럼에도 우린'의 노랫말 "상처가 우릴 설명하지 않게"를 빌려 "더 이상 상처가 우리를 설명하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상처는 전시해야 할 훈장도, 감춰야 할 흉터도 아닌 그저 견뎌낸 시간의 무늬일 뿐이라는 얘기다.

덧붙여 그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팬들에게 안겼던 '희망고문'에 사과하며 "이제는 주저하고 지친 시간만큼 천천히, 셋이 함께 웃고 떠드는 일상적인 모습까지 오래도록 보여주고 싶다"는 애틋한 진심을 건넸다. 이 철학적 자각은 씨야가 왜 2026년의 오늘, 다시 마이크를 잡아야만 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준다.
[서울=뉴시스] 씨야 김연지.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씨야 김연지.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연지, 뽐내기를 멈추고 진심을 투영하다

가창력이라는 무기로 시대를 호령했던 김연지는 이제 기교의 확장이 아닌 '감정의 함축'을 이야기한다. 20대 시절, 마치 정답을 맞히려는 모범생처럼 노래를 불렀다면, 각자의 고독한 솔로 활동을 거쳐 다시 모인 지금은 '정제된 진심'을 노래에 담아낸다.

"예전처럼 가창력을 뽐내기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중심을 둔 함축적인 보컬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언어가 가진 한계보다 진심의 파동이 더 멀리 간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요."

이 단단함 이면에는 낭종 수술이라는 치열한 개인적 시련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겪으며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번민했던 그는, 곁을 내어준 멤버들 덕에 다시 마이크 앞에 설 용기를 얻었다. 상실의 위기를 건너온 목소리이기에, 그의 정제된 노래는 기교를 넘어선 생의 의지 그 자체다.

이번 신곡 '그럼에도 우린'의 녹음 현장은 눈물로 여러 차례 중단됐다. 박근태 프로듀서가 "이 노래 한 곡에 씨야의 모든 시간과 진심이 응축되어 있다"고 자신한 이유도, 과거의 짧고 굵었던 활동이 남긴 짙은 여운을 넘어, 덜어냄으로써 비로소 더 깊어진 김연지의 성숙한 보컬 철학에 맞닿아 있다.
[서울=뉴시스] 씨야 이보람.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씨야 이보람.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보람, 누군가의 가장 외로운 시간을 껴안는 위로

MBC TV 예능물 '놀면 뭐하니?'의 'WSG워너비 프로젝트'(2022)로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가야지(G)' 활동을 거친 이보람은 씨야의 서사를 개인의 회고에서 동시대의 보편적 위로로 확장해 낸다. 과거 씨야의 노래가 노래방에서 파트를 나누어 부르던 1020 세대의 '청춘의 BGM'이었다면, 이제는 인생의 고비를 넘고 있는 모든 이들의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연대의 가요가 되기를 소망한다.

"어려운 시기와 아픔의 시간을 충분히 겪고 지내왔잖아요.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저희를 보며, 수험생이나 청춘들이 '저 언니들도 저런 시간을 지나왔구나' 하며 희망을 봤으면 좋겠어요."

20년 만에 처음 열리는 팬미팅과 단 한 번뿐이었던 단독 콘서트의 아쉬움을 채우고 싶다는 그는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는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사람의 가슴에 오래 남는 우리만의 색깔로 승부하고 싶다"며 씨야 음악이 가진 힘을 긍정했다. 아울러 일상의 노래가 되고 싶다는 바람에 웃으며, 노래방 차트 1위 욕심은 여전히 냈다.
[서울=뉴시스] 씨야.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씨야. (사진 = 씨야 제공) 2026.03.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의 음악은 타인의 고통을 쉽게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통과해 온 상실의 시간을 담담히 고백함으로써, 당신의 그 외로운 시간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증명할 뿐이다.

스스로 작사에 참여하고, 씨야 향후 활동을 위한 주체적인 법인을 세웠다. 가장 씨야다운 모습으로, 그러나 가장 낯설고 단단한 깊이로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다. 겨울을 견딘 나무가 굳이 자신의 인내를 설명하지 않듯, 씨야는 그저 무대 위에서 노래함으로써 자신들의 두 번째 계절이 시작됐다고 알린다.

씨야는 신곡 발매 당일 서울 종로구 '이들스'에서 팬미팅을 열고 15년의 공백을 허문다. 이어 5월에는 최전성기를 함께했던 프로듀서들과 의기투합한 정규 4집 앨범을 내놓는다. 이들의 정규 음반은 2008년 정규 3집 '브릴리언트 체인지(Brilliant Change)' 이후 18년 만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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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우릴 설명하지 않게"…'해체 15년만 돌아온' 씨야, 비로소 단단한 나무

기사등록 2026/03/30 06:00: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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