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내 초연한 '오펀스', 네 번째 시즌도 젠더 프리 캐스팅
문근영, 9년 만의 연극…트릿 역 맡아 욕설 등 거친 연기 눈길

연극 '오펀스'에 출연 중인 문근영. (사진=레드앤블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때로는 거창한 말보다 가만히 건네는 위로 한마디가 사람을 바꾼다. 곁에서 어깨를 토닥이고, 말없이 손을 내미는 일.
연극 '오펀스'는 바로 그런 작은 다정함이 한 사람을 어떻게 다시 살아가게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난 10일 개막한 '오펀스'는 상처입은 세 인물이 서로의 결핍을 비추고 보듬으며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부모없이 살아온 형제 트릿과 필립, 그리고 우연히 그들 곁으로 들어온 중년 남성 해롤드가 부딪치고 흔들리며 조금씩 변해가는 이야기다.
트릿은 강도질로 생계를 이어가며 바깥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동생 필립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그 보호는 점차 과잉으로 흐르고, 필립은 세상과 단절된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트릿은 돈을 노리고 해롤드를 납치해 집으로 데려온다. 그런데 고아 출신 갱스터인 해롤드는 필립에게는 바깥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트릿에게는 세상을 견디는 절제와 신뢰를 가르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세 사람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하지만 작품은 결국 이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다독이는 작고 진심어린 위로였다고 말한다. 각자 결핍을 안은 인물들이 함께 머무는 동안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지점을 만든다. 한번쯤 곁에 있는 누군가의 응원으로 버텨본 기억을 불러온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연극 '오펀스' 해롤드 역의 박지일, 필립 역의 최정우와 트릿 역의 최석진이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에서 주요 장면 시연을 하고 있다. 2026.03.19. jini@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3/19/NISI20260319_0021214644_web.jpg?rnd=20260319144957)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연극 '오펀스' 해롤드 역의 박지일, 필립 역의 최정우와 트릿 역의 최석진이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에서 주요 장면 시연을 하고 있다. 2026.03.19. [email protected]
미국 극작가 라일 케슬러의 대표작인 '오펀스'는 198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초연했다. 국내에서는 2017년 처음 소개된 뒤 올해 네 번째 시즌을 맞았다.
오랜시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 역시 분명하다. 상처와 폭력, 결핍을 다루면서도 끝내 위로와 성장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작품의 힘 덕분이다.
이번 시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건 트릿 역의 문근영이다. 2017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9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그는 한때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내보인다.
문근영이 연기하는 트릿은 거칠고 폭력적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사랑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의 불안과 상처가 짙게 깔려있다. 그는 첫 등장부터 욕설 섞인 대사를 거침없이 쏟아내며 위태롭고 날 선 인물을 밀어붙인다.
필립과 해롤드가 가까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에서는 질투와 불안,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복합적으로 번진다. 자신 역시 서툰 방식으로 동생을 지켜왔다고 절규하는 순간에는 트릿의 거친 껍질 안에 숨은 연약함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근영은 이 인물의 폭력성과 여림을 오가며 트릿을 단순한 문제아가 아니라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로 설득력 있게 완성한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연극 '오펀스' 필립 역의 김시유, 해롤드 역의 우현주와 트릿 역의 오승훈이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에서 주요 장면 시연을 하고 있다. 2026.03.19. jini@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3/19/NISI20260319_0021214771_web.jpg?rnd=20260319152020)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연극 '오펀스' 필립 역의 김시유, 해롤드 역의 우현주와 트릿 역의 오승훈이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에서 주요 장면 시연을 하고 있다. 2026.03.19. [email protected]
'오펀스'의 또다른 특징은 젠더 프리 캐스팅이다. 원작에서는 세 배역 모두 남성으로 설정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두 번째 시즌부터 성별에 관계 없는 젠더 프리 캐스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해롤드 역에 박지일·우현주·이석준·양속민이, 필립 역은 김시유·김주연·최정우·김단이가 출연한다.
여성 배우들은 "언니" 대신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일부러 남장을 하거나 남성성을 부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여성 배우들이 연기할 때 거친 세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버텨야했던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오펀스'는 5월 31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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