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어디서 오는가…나치 전범을 만난 정신과 의사

기사등록 2026/03/17 08:30:00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서울=뉴시스] 잭 엘하이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사진=히포크라테스 제공) 2026.03.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잭 엘하이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사진=히포크라테스 제공) 2026.03.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룩셈부르크시에서 남쪽으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몽도르프레뱅의 팰리스 호텔에 있는 밀러 대위와 접촉하라."

1945년 8월 4일, 군의관 더글러스 맥글래션 켈리는 미국 육군 사령부로부터 이런 명령을 받았다. 나치 지도자들이 수감된 몽도르프레뱅에서 전범들의 정신 상태를 조사하라는 임무였다. 연합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뒤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재판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켈리는 전범들이 재판을 치를 수 있도록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한편, 그들 안에서 공통된 성향을 찾고자 했다. 이른바 '나치 성격'에 대한 탐구였다. 그는 미 육군에서 3년간 복무하며 수천 명의 정신과 진료와 교육을 담당한 의사였다.

그는 헤르만 괴링, 총통대리 루돌프 헤스, 반유대 신문 '돌격수' 발행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동부 제국 장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등 나치 핵심 인물들을 직접 만나며 악의 중심에 다가간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예상과 달랐다. 켈리에게 전범들은 괴물이나 광인이 아니었다. '비교적 정상적'이었다.

"나치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정신병도 특정하지 못한 채, 켈리는 그저 마지못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전범들처럼 행동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217쪽)

이같은 분석은 훗날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악의 평범성'을 제시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해석은 다르다. 아렌트가 체제 속에서 생각 없이 악에 가담한 '평범한 인간'을 말한다면, 켈리는 전범들을 권력을 욕망하고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낸 적극적인 행위자로 봤다.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성격은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특이한 욕구를 지닌 사람들, 권력을 쥐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222쪽)

책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러셀 크로우와 라미 말렉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뉘른베르크'의 원작으로, 기자이자 작가 잭 엘하이가 켈리의 이야기를 추적한 논픽션이다.

이 책은 최초로 나치 피고인들의 의료 기록을 활용했고, 켈리의 보좌관을 맡았던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와 후임으로 온 의사 레온 골든손의 자료를 참고해 집필됐다.

켈리가 경험한 전범 22명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추적한다. 또 켈리의 아들 더글러스 켈리 주니어와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서 생략된 재판 이후 켈리의 행보도 기술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악은 어디서 오는가…나치 전범을 만난 정신과 의사

기사등록 2026/03/17 08:30:00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