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만원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MZ세대 새 '보물창고' 등극
기성 브랜드 '클론룩'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취향 발굴
구제시장 넘어 패션 창업기지이자 디자인 영감의 보고로 진화
![[서울=뉴시스] 서울 종로구 동묘 일대 거리에서 시민들이 노점과 상점을 둘러보고 있다. 문준호 인턴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3/04/NISI20260304_0002075897_web.jpg?rnd=20260304230728)
[서울=뉴시스] 서울 종로구 동묘 일대 거리에서 시민들이 노점과 상점을 둘러보고 있다. 문준호 인턴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문준호 인턴 기자 = "골라 골라, 무조건 5000원! 한 개 사면 한 개 더!"
4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는 '무질서의 미학'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심하게 쌓인 옷더미 사이로 에어팟을 낀 청년들과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들이 나란히 주저앉아 보물을 찾는다. 누군가에겐 시대를 역행하는 헌 옷일지 모르지만, 이곳의 MZ세대에겐 자신의 취향을 증명할 거대한 보물창고이자 세상에 하나뿐인 런웨이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대학생 조현서(23)씨는 투박한 로고 플레이가 돋보이는 오버핏 스웨터를 집어 들었다. 조씨는 "요즘 유행하는 옷들은 세련되긴 했지만, 거리에서 나와 똑같은 차림을 한 사람과 마주치는 이른바 '클론룩'의 공포가 크다"라며 "동묘에서는 나만의 안목으로 고른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최수원(26)씨도 "보물찾기하듯 옷더미를 뒤지다 보면 1시간이 금방 간다"며 동묘 특유의 '손맛'을 치켜세웠다.
![[서울=뉴시스] 왼쪽은 기자의 평상시 복장, 오른쪽은 서울 동묘 일대에서 고른 빈티지 의류로 완성한 코디. 문준호 인턴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3/04/NISI20260304_0002075901_web.jpg?rnd=20260304232943)
[서울=뉴시스] 왼쪽은 기자의 평상시 복장, 오른쪽은 서울 동묘 일대에서 고른 빈티지 의류로 완성한 코디. 문준호 인턴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기자도 직접 '만원 코디'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산처럼 쌓인 옷더미 앞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막막했지만, 15분쯤 지나자 요령이 생겼다. 매대 곳곳을 둘러보며 데님 재킷과 블랙 팬츠를 골라 코디를 완성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방문객 황찬주(27)씨는 "가격을 듣기 전에는 몇 만원은 할 줄 알았다"며 "빈티지 편집숍에서 파는 옷 같아 보인다"고 말하며 놀라움을 표했다.
변화는 손님뿐만이 아니다.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상인 이춘희(65)씨는 달라진 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이씨는 "예전 동묘는 60~80대 어르신들이 단돈 만 원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 코디를 해결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며 "홍대나 성수동으로 가던 젊은 친구들이 이제는 다 이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상권의 성격도 단순 구제 시장을 넘어 전문적인 패션의 장으로 진화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그는 "과거에는 누구나 아는 흔한 브랜드를 찾았다면, 요즘 세대는 명품 브랜드를 발굴하거나 '쇼미더머니'·'스우파' 스타일의 옷을 찾아 자기 입맛에 맞게 리폼해 입는다"며 "연예인들의 방문까지 잦아지면서 시장 분위기가 몰라보게 젊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묘는 청년들의 새로운 창업 터전이 되고 있다. 이씨는 "과거 구제 패션의 성지였던 종로5가 광장시장 2층에 있던 젊은 상인들이 이제는 동묘로 넘어와 장사를 시작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고등학생 때부터 우리 가게 단골이던 한 청년은 여기서 주말 알바를 하며 꿈을 키우더니,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이제는 본인의 가게 오픈을 준비 중"이라며 "동묘는 이제 젊은 친구들이 패션의 안목을 기르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 됐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쇼핑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허기가 진다. 동묘 쇼핑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길거리 미식'이다. 단돈 1000원에 즐길 수 있는 '동묘표 토스트'와 시원한 믹스커피 조합은 어르신들은 물론 MZ세대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뜨끈한 국물에 김 가루가 듬뿍 올라간 잔치국수 한 그릇을 비워내면 시장 특유의 정겨운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동묘 일대 노점에서 판매되는 길거리 토스트와 잔치국수. 문준호 인턴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3/05/NISI20260305_0002075907_web.jpg?rnd=20260305001450)
[서울=뉴시스]쇼핑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허기가 진다. 동묘 쇼핑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길거리 미식'이다. 단돈 1000원에 즐길 수 있는 '동묘표 토스트'와 시원한 믹스커피 조합은 어르신들은 물론 MZ세대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뜨끈한 국물에 김 가루가 듬뿍 올라간 잔치국수 한 그릇을 비워내면 시장 특유의 정겨운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동묘 일대 노점에서 판매되는 길거리 토스트와 잔치국수. 문준호 인턴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장에서 만난 박가은(25)씨는 "동묘에 오면 만원 한 장으로 옷도 사고 식사와 간식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며 "이런 압도적인 가성비와 특유의 옛날 감성이 MZ세대를 다시 동묘로 발걸음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동묘 열풍을 단순한 저가 쇼핑을 넘어선 '디자인 아카이브의 재발견'으로 분석한다. 수원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김수지 교수는 "기성 브랜드가 제공하는 정형화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믹스매치'를 즐기는 MZ세대의 창의적 소비 방식이 동묘라는 공간과 만난 것"이라며 "수십 년 전의 패턴과 소재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되면서, 동묘는 새로운 패션 영감을 공급하는 '디자인 라이브러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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