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살해' 누명 23년 만에 벗은 무기수, 사후 재심 무죄(종합)

기사등록 2026/02/11 16:04:12

영장 없이 인양 차량 압수, 국과수 감정서도 2차 위법 증거

"졸음운전 가능성 배제 못하고 수면제 먹였는지 증명 없어"

박준영 변호사 "모두의 잘못, 수사·사법기관 전향적 입장을"

[서산=뉴시스]지난 2003년 전남 진도군 의신면 명금저수지(현재 송정저수지)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사진=충남 서산경찰서 B경감 제공)
[서산=뉴시스]지난 2003년 전남 진도군 의신면 명금저수지(현재 송정저수지)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사진=충남 서산경찰서 B경감 제공)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차량 저수지 추락 사고를 일부러 내 함께 탄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다 숨진 무기수가 사후 재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세상을 떠난 뒤에야 23년 전 억울한 누명을 뒤늦게 벗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재판장·김성흠 지원장)는 11일 오후 살인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이 확정, 복역 도중 숨진 고(故) 장동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 장씨는 2003년 7월9일 밤 전남 진도군 의신면 한 교차로에서 화물차를 몰다가 당시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로 고의 추락하는 사고를 내 조수석 동승자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고 직후 수사 경찰은 숨진 아내의 보험 가입 내역 등을 토대로 장씨의 계획 살인 정황을 의심하기는 했으나 객관적 증거는 찾지 못해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로만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장씨가 아내에게 감기약이라고 속여 수면제를 먹인 뒤 아내 명의로 가입한 다수의 보험 상품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고의 사고를 냈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장씨는 일관되게 "단순 사고였다"고 주장했으나 1·2심에 이어 2005년 대법원도 유죄로 판단,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날 열린 재심에서는 판단이 완전히 뒤집혔다.

재심 재판부는 우선 일부 수사 과정에 위법성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당시 경찰은 저수지에서 인양한 차량을 공업사로 견인한 뒤 압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영장을 받지 않았고 영장주의 예외 요건을 갖추지도 못했다. 해당 차량은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하고, 압수에 따른 차량 감정서 역시 위법한 2차 증거로서 증거 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장씨가 고의 사고를 냈는지 여부도 공소사실처럼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심 재판부는 "교차로에서 운전대를 왼쪽으로 조향했다는 공소사실과 달리, 그대로 직진해도 충분히 저수지 추락 지점에 다다를 수 있다. 졸음운전 중이라고 해도 순간적인 무의식 또는 반무의식 상태로 차량을 계속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졸음운전 상황에서) 직진 또는 어느 정도 왼쪽으로 운전하는 일 역시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소사실처럼 추락 직전 교차로에서부터 왼쪽으로 운전대를 꺾는 '좌조향'이 아니라 해도, 충분히 저수지 추락 사고가 날 개연성도 있다는 취지다.

이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 만으로는 졸음운전일 가능성을 배제하고 장씨가 아내를 고의로 살해했다고 볼만한 간접 증거, 정황 증거가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공소사실에 기재된 장씨가 아내에게 감기약이라고 속여 수면제를 먹였다는 점 역시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피해자인 아내의 위 내용물에서 발견된 캡슐 형태 약(알약)은 장씨의 처방약 중에는 없는 점, 수면제 복용 후 반감기 직전 사망했는데도 혈액에서 수면제 성분도 검출되지 않은 점 등을 무죄 판단의 이유로 들었다.

재심 재판부는 장씨가 아내의 차량 탈출을 방해했다는 점 역시 부검 감정 결과에 비춰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검찰이 범행 동기로 주장하는 간접 사실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심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범행 동기인 보험금 가입 사실이나 어려운 경제적 형편은 인정된다. 그러나 가입된 보험 상품 중 일부는 장씨 본인을 피보험자로 하고 있다. 교통사고 뿐만 아니라 재해, 질병 등에 대한 상품으로 별도 특약까지 추가돼 있다. 설령 그러한 동기가 있다고 해도, 고의 사고로 아내를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해남=뉴시스] 변재훈 기자 = '저수지 추락사고 아내 살해' 사건 무기수 고(故) 장모씨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와 유족 등이 11일 전남 해남군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법정 앞에서 고 장씨의 사후 재심 무죄 선고 직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고 장씨는 2003년 7월9일 밤 8시39분께 전남 진도군 당시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로 몰던 화물차를 고의 추락하는 사고를 내 조수석에 탄 아내(당시 45세)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 중 사망했으나 이날 사건 발생 23년만에 뒤늦게 무죄를 인정 받았다. 2026.02.11. wisdom21@newsis.com
[해남=뉴시스] 변재훈 기자 = '저수지 추락사고 아내 살해' 사건 무기수 고(故) 장모씨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와 유족 등이 11일 전남 해남군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법정 앞에서 고 장씨의 사후 재심 무죄 선고 직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고 장씨는 2003년 7월9일 밤 8시39분께 전남 진도군 당시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로 몰던 화물차를 고의 추락하는 사고를 내 조수석에 탄 아내(당시 45세)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 중 사망했으나 이날 사건 발생 23년만에 뒤늦게 무죄를 인정 받았다. 2026.02.11. [email protected]


앞서 형 확정 이후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장씨는 2009년과 2010년, 2013년 재심을 청구했으나 번번이 기각됐다.

그러나 한 현직 경찰관이 지인 부탁으로 2년여에 걸쳐 소송 기록·현장을 재조사한 결과라며 '끼워 맞추기식' 수사 조작 정황 등 의혹을 제기하며 반전이 일어났다. 이를 토대로 장씨는 2021년 네 번째 재심을 청구했다.

이듬해 9월 법원이 수사 위법성을 인정하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으나, 1년 넘게 검찰의 항고와 재항고가 이어졌다. 2024년 1월에야 대법원에서 재심이 확정됐다.

장씨는 그토록 고대하던 재심 첫 재판을 보름여 앞둔 같은 해 4월 백혈병 항암 치료 도중 숨졌다. 사망 당일은 형 집행정지일이기도 했다.

재심 무죄 선고 직후 장씨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사소한 억울함도 참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사람을,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는 억울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장씨의 명예회복을 바랐다.

특히 장씨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수사·사법기관의 반성과 책임도 촉구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경찰과 검사, 국과수 감정인 그리고 판사들의 책임이 다 더해진 안타까운 사건인데 '모두의 잘못'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게 되는 것 같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어 굉장히 아쉽다"며 "늦었더라도 경찰과 검찰 등이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재심은 장씨에게 처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에 대한 재심이다. 재심 선고가 나도 양측의 항소 여부에 따라 재심 재판 2심이 이어질 수도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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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 누명 23년 만에 벗은 무기수, 사후 재심 무죄(종합)

기사등록 2026/02/11 16:04:12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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