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9년만에 백제 왕궁에서 되살아난 가로 피리

기사등록 2026/02/05 16:02:57

관북리 유적서 삼국시대 유일한 실물 관악기 ‘횡적’ 확인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이수지 기자 = "고이왕(古爾王) 5년(238) 정월 봄에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북과 피리를 사용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삼국시대 고대 문헌에서만 확인됐던 7세기 백제 피리가 실물로 확인됐다.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국내 최대 수량의 목간(木簡)과 함께 14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대나무 횡적(橫笛·가로 피리)은 현재의 소금(小笒)과 닮아 있었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서 종묘제례악 이수자 김윤희 씨는 제16차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횡적을 재현한 피리로 '수제천'을 연주했다. 수제천은 원래 '정읍(井邑)'이라는 백제가요에서 유래한 곡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날 공개회에서 "연주자가 사용한 악기가 바로 사비 백제의 왕궁터인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새롭게 출토된 가로피리인 백제 횡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며 "1500년 전 백제인들이 즐기던 아름다운 소리를 되살린 것은 학술적으로나 음악사적으로도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날 부여군과 진행 중인 관북리 유적 제16차 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기 목간 329점과 7세기 실물 관악기 대나무 횡적을 공개했다.

백제 횡적은 당시 왕궁 조당(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하고 의례를 행하던 공간) 인근의 화장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덩이에서 발견됐다.

이 구덩이에서 발견된 악기는 황색 대나무 소재로, 오늘날의 소금(小笒)과 유사한 형태의 가로 피리다. 길이는 약 224㎜ 정도로, 일부가 결실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에서 구멍 4개가 확인됐다.

몸통 부분이 부러져 전체의 약 30%가량이 유실됐으나, 2개 마디가 남아 있다. 부러진 끝부분에는 인위적인 파손 흔적이 있으며, 오랜 시간 땅속에 매몰되면서 납작하게 눌린 것으로 추정됐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입김을 불어넣는 구멍이 있는 한쪽 끝이 막힌 가로 피리로 확인됐다.

국립남도국악원 정환희 학예연구사는 "일반적으로 횡적의 경우 취구 쪽이 막혀 있다"며 "종적의 경우는 양쪽이 뚫려 있어 이 유물은 취구 안쪽 부분이 막혀 있는 흔적이 확인돼 횡적 악기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백제 금동대향로 등에 조각으로만 알 수 있었던 백제 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7세기를 통틀어 삼국시대 관악기 실물이 발견된 유일한 사례다.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은 "함께 출토된 암키와의 연대와 대나무의 탄소 연대 측정값을 볼 때, 이 악기는 수로 시설이 운영되던 7세기대 유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날 연구 결과로 재현된 백제 횡적은 연주 방법과 소리에서 현대의 소금과 차이를 보였다.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재현품으로 '수제천'을 연주하는 종묘제례악 이수자 김윤희 씨(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재현품으로 '수제천'을 연주하는 종묘제례악 이수자 김윤희 씨(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윤희 이수자는 "소금이 지금 복원된 백제 악기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연주했다"며 "취구는 현재의 취구보다 매우 작고, 지공 간격도 달라 연주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연주 소감을 밝혔다.

이어 "취구가 작기 때문에 소리가 들어갈 때 압이 많이 필요했고, 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현재 소금은 지공 간격이 일정해 비교적 편하게 연주할 수 있지만, 복원된 악기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지공의 간격이 상당히 가깝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지공의 간격은 조금 멀어 문지법을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악기의 음높이는 취구 안쪽 공간 깊이와 취구와 제1지공의 간격에 따라 달라진다. 황 소장은 “취구 안쪽 공간이 밀랍 등으로 채워져 취구와의 간격이 짧고, 취구와 제1지공의 간격도 짧아 음높이가 현대의 소금보다 반음가량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문헌 가운데 전한 때 편찬된 '모시전'과 위나라 때 편찬된 '광아'에는 '약' 또는 '적'이라는 악기가 입김을 불어넣는 취공 1개를 포함해 구멍이 7개라는 기록이 있다. 후한 때 편찬된 '설문해자'와 '풍속통의'에 따르면 '적'은 대나무로 만들었으며 길이는 1척 4촌, 즉 약 33㎝ 내외였다.

이를 종합하면 ‘적’은 취공을 포함해 구멍이 7개 있고 길이 약 33㎝인 가로로 부는 대나무 악기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역사서 '일본후기'의 809년 기록과 법령집인 '유취삼대격'의 848년 기록을 통해 9세기에도 백제 음악이 일본 궁중에서 연주됐고, 횡적이 중요한 악기로 다뤄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8~9세기 횡적이 몇 점 출토된 바 있다. 미야기현 이치카와바시 유적에서는 지공 6개, 길이 34.8㎝의 횡적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됐고, 후쿠시마현 에다이라 유적에서도 지공 6개로 추정되는 횡적이 출토됐다.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재현품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재현품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황 소장은 "이러한 일본의 실물 횡적 사례는 그보다 앞선 관북리 백제 횡적의 원형 복원에 좋은 비교 자료"라며 "문헌 기록과 다른 유물의 장식 문양으로만 묘사되던 백제 횡적이 이번에 실물로 확인됐고, 특히 사비 왕궁의 핵심 공간에서 발견돼 백제 궁중 음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백제의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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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9년만에 백제 왕궁에서 되살아난 가로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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